우리는 일을 관리하고 있을까, 통제하고 있을까, 또는 우리는 일을 할 때, 누군가로부터 관리 당하고 있을까, 통제당하고 있을까.

직장생활은 관리와 통제,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분명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그 노력과는 무색하게 누군가로부터 관리인지 모를 통제를 당하고 있거나, 혹은 노골적으로 통제를 당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꿈꾼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을 떠나 그냥 창업을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첫 직장을 B2B 비즈니스 구역에서 시작하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다. 일은 혼자 할 수 있지만, 그 일과 연결된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일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내 일을 묵묵하게 할 뿐이지만 그 일을 직무 단위에서 보는 것과 비즈니스로 확장하여 보는 것, 그 비즈니스와 연결된 특정 시장 및 산업으로 연계해서 보는 등의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산업 내 기업을 거치면서 알 수 있었다.

이는 조직 내 각각의 개인이 가지게 되는 일은 비즈니스 안팎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통해 연결되고, 그 연결은 곧 고객이 만든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부터, 절대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이전 여러 곳의 서로 다른 직장 생활에서도 느꼈지만 분명 내가 하는 일이고, 내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로부터 내 일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간혹 그들이 내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만큼의 실력을 갖췄는가에 의구심을 품은 적도 많았지만, 그 의구심을 들기가 무섭게 새로운 일이 닥치면서 그 일을 그냥 ‘닥치고’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직스쿨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일의 연결관계 속 다양한 군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그들의 뉘앙스를 읽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의 대전제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함이고, 완벽한 자유는 즐길 수 없지만, 적어도 일에 끌려가지 않는 나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로서 누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이 조직의 요구에 의한 것인지, 비즈니스적인 숙명인지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비즈니스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특성상 ‘꼭 해야 하는 무언가’가 내 일로 지정된 경우를 뜻한다. 조직에 속해서 비즈니스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마침 그 행위 없이는 해당 비즈니스가 잘 굴러가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한다.

당연히 내가 하는 일은 비즈니스 특성상 매우 중요한 일이고, 그 일로 인해 목표 달성 또는 성과 여부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조직의 강력한 관리 또는 통제에 놓이게 된다. 조직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최대한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컨설팅업의 경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들의 미션이자 비즈니스상 핵심이다. 그렇다면 어떤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지에 대해 그들 스스로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라기보다는 “IT 관련 부분 중에 UI 개선을 통한 고객과의 제대로 된 관계 창출 및 존속 등에 대한 것” 등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을 확보하고 그들에게 가치를 제고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 UI 관련된 충분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인력의 확보와 그들의 퍼포먼스를 보장하기 위한 관련 인프라를 회사에서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전면에 나서서 문제를 풀어낼 시니어 컨설턴트들과 뒤에서 밀어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조사 및 분석을 담당할 고객 분석관 또는 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이 백업을 해줘야 한다.

이는 비즈니스가 이미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이전에 해당 컨설팅업에서 쌓아온 다양한 레퍼런스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조직 내 여러 리더들에 의해 다져진 결과다. 당연히 좋은 성과를 계속해서 냈기 때문에 현재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위와 같이 자신의 직무상 전문성을 중간에 조율해줄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비즈니스 초기에는 뚜렷한 역할이 지정되어있기보다는 그들 모두가 암묵적으로 하나의 목적 및 목표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굴러간다고 볼 수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앞에서 이끌면서 고객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와 이를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해석해 줄 선배 컨설턴트 중에 프로젝트 리더(PL) 또는 프로젝트 매니저 등이 나오고, 이러한 구조를 통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는 문제가 없어 보일 때 나타난다.

둘째, 위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조직이 걸어왔던 길에 의해 꼭 따라야 하는 통제의 끈이 만들어진다. 같은 비즈니스라고 해도 우리만이 가지는 문제해결의 방식이 만들어지고, 이때 외부에서 보는 모습 또는 쓰는 용어 및 명칭은 비슷할 수 있지만 실제로 사용할 때는 조금은 다른 색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보이지 않는 통제의 끈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성공 방향 및 방법에 따라서 꼭 따라야 하는 관리의 경계가 발생하고, 그 선을 최대한 넘지 않도록 하면서 계속된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직무상 전문성을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조직이 가진 비즈니스 방향성과 정체성에 따라 결정된다. 그들이 맺고 있는 기존의 비즈니스상 관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당장은 우리가 더 많은 성과를 누려야 하기에 더 많은 배려보다는 그 반대 급부의 조직 내 욕구가 증가하는 것이다. 바로 우리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다.

조직이 바라본 비즈니스에서 특정 영역의 성공 경험과 이를 지속하려는 리더 및 구성원의 마음에 의해 곧 관리와 통제 사이의 미묘함을 드러내게 된다.

리딩을 하는 그룹은 끊임없이 관리라고 주장하지만 하위 그룹에서는 늘 통제라고 느끼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갈등이 시작되고,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이후에 새롭게 조직에 합류한 이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다.

이런 오류는 왜 발생하는가, 우리 모두의 착각 때문이다. 대부분 명확한 직무상 역할과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알고서 일을 하는 화이트컬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아버지는 돈을 벌어서 식구들을 봉양하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책임지는 가족의 형태가 사라지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작은 조직 단위로 겨우 둘 또는 셋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해야 하는 역할에 따른 행위가 정해져 있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그저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관리와 통제 그 미묘함 사이에서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자신이 갖춘 특정 전문영역에서 타인에게 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며, 이때 갖고 있는 역할과 책임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격차를 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인정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그저 나는 공장에서 늘 같은 물건을 찍어내듯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나도 달라져야 함을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도장만 찍던 O장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실무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닌, 현장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실무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전제로 한 적절한 권한위임을 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류의 경험을 못 하는 것은 실무자일 때 불행하게도 그런 류(?)의 리더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명확한 역할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에 따라 역할을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늘 솔선수범했던 이를 말이다.

일로 엮어진 관계는 곧 그들 간의 일정한 데이터의 교환을 불러오고, 이미 정해진 단계 또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 단계 성숙하거나 이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을 지니게 된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을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데이터를 주고 받는 대상이 그대로이거나 그들과 주고 받는 데이터의 변화가 거의 없다면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늘 같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가 존재한다면 나 또한 누군가로 쉽게 대체될 수 있음을 말이다. 지금의 기업들이 과거와는 다른 높은 수준의 직무 전문성을 요구하는 이유도 비슷할 수 있다. 한층 성숙된 시스템 안에는 어쩌면 기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안정성을 좇아 관리와 통제, 그 사이의 미묘함이 싫어 누군가의 지배에 가까운 조직으로 옮긴다면 스스로 숨 쉴 수 없는 물 속으로 들어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주는 산소에 의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바라던 삶이 그런 류의 삶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