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2> 이학범 외 22인 지음, 부키 펴냄.

이 책은 수의사의 세계를 다룬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23인 수의사들의 일상과 생각이 담겼다. 해당 분야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특수동물, 야생동물, 검역, 방역, 수의 축산 정책, 기초과학, 중개의학 연구 등으로 다양하다.

◆동물병원=약 2만명 수의사 가운데 다수가 동물병원에서 일한다. 개·고양이 등 소(小)동물, 반려동물을 주로 진료한다. 이곳에 항상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24시간 문을 여는 곳도 적지 않고, 남들이 쉴 때 더 바쁘기도 하다. 틈틈이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 이외에도 거북, 햄스터, 고슴도치, 이구아나, 토끼, 기니피그, 카멜레온, 다람쥐, 새, 악어, 뱀 등이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의사로서 고통, 죽음, 이별과 함께 하기에 감정 소비와 스트레스도 심하다.

◆大동물·산업동물 수의사=소, 돼지, 닭과 같은 산업동물 수의사들은 국민의 식탁과 영양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육체적 근무 강도가 상당하다. 대개 지방에 위치한 농장들을 방문하기 때문에 이틀 동안 1000㎞ 이상 운전하는 경우도 다반사고, 근무지가 배 타고 2시간 30분은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외딴 섬일 때도 있다. 이들은 사양 관리, 영양 관리, 환경 관리, 목장 경영에 필요한 종합적 컨설팅까지 도맡고 있다.

◆공무원 수의사=주로 가축 방역과 검역, 식품 안전 등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이들은 책임과 부담이 매우 크고 업무강도도 혹독하다. 2010년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초기 방역 실패로 전국으로 확산되어 결국 347만여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되고 약 3조원 가까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말았다.

대형 가축을 채혈하면서 소 발굽에 차이거나 가축에 떠밀려 채혈하던 주삿바늘에 찔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여름에 숨도 쉬기 힘든 방역복을 입고 몇 시간씩 일하다 보면 땀으로 속옷까지 젖는다.

이 밖에도 동물연구를 통해 인간의 치매, 암, 특이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초과학분야 수의사, 세계동물보건기구와 같은 국제기구나 해외 동물 연구소처럼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수의사가 있다. 펫푸드 사업으로 동물의 건강과 복지에 도움을 주거나 인터넷 신문 발행, 사회적 기업 운영, 수의 전문 변호 등 활동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책에는 희귀종 부리고래를 응급진료한 수의사 이야기도 나온다.

“뭍으로 나온 아이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암초 지역 갯바위 틈에 끼여 복부가 많이 긁혔고 호흡도 몹시 힘들어했다. 살점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고름이 가득 차 있었다. 구조원들은 아이가 좀 더 편히 호흡할 수 있도록, 더 이상 암초에 다치지 않도록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그동안 나는 주사를 놓고 상처의 고름을 짜서 빼내고 소독하는 등 응급 처치를 진행했다.

(중략) 그러다 문득 ‘네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장소는 아마 뭍이 아니라 바다여야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응급 처치를 마쳤다는 신호를 했고, 구조원들은 고래를 안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고래는 다행히 스스로 유영할 수 있었다.

(중략) 다음 날 아침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힘겹게 바다로 돌아갔던 고래가 뭍에서 다시 발견됐다. 과연 더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자책감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홍원희-네가 떠난다면 그곳이 바다였으면)

처음에는 수의사라는 유망직종을 소개하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직업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16세기 종교개혁가 칼뱅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모든 노동이 다 거룩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이제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생명에 유익을 끼치는 노동은 다 거룩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