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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갈아입을 옷보다, 다음에 읽을 책을 걱정해야
   

처음으로 구입했던 집을 팔고 난 뒤 전세로 쭉 살면서 이사를 참 많이도 했다. 길면 2년 짧을 땐 해마다 이사한 적도 있는데, 이사 다닌 지역이라고 해봐야 북한산 남쪽에서 서쪽을 거쳐 북쪽으로 간 게 전부다. 대출금, 학교나 주위 환경 등등 괜한 욕심에 길바닥에 돈을 다 흘리고 다녔던 듯 하다.

이사할 때마다 두어 리어카 분량씩 버렸지만, 그래도 이사 견적은 예상치를 늘 웃돌았다. 큰 TV도, 김치냉장고나 침대도 없지만 견적을 내러 사전 방문한 직원은 늘 혀를 내 둘렀다. 책장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사비용이 늘 다른 집보다 1~2십만원은 비쌌다. 이사 당일 입이 툭 튀어 나오는 이삿짐센터 직원들 대하는 맘이 불편해서 따로 목욕비 봉투도 준비한다. 전엔 노골적으로 요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집이 좁아서 책장에 책을 앞뒤 이중으로 꽂아뒀는데, 직원들이 이삿짐 싸면서 분명히 다 들어냈는데도 그만큼의 책이 더 있는 것을 보고 짜증낸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맘에 부담으로 남았다. 사실 책이라는 것이 서가에 꽂혀있을 땐 모르지만, 낱권을 묶어서 나르기에는 영 귀찮고 무거운 것이다. 손떼 묻은 책을 버리지 못한다. 가끔 이 책 저 책 뒤적뒤적 하기만 해도 좋다.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막내가 친구 집에서 놀다 와서는 물었다.

“오늘 친구 집에서 놀았는데, 그 집에는 책이 하나도 없던데 그래도 괜찮은 거야?”

“아빠처럼 책을 읽고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누구 주거나 하는 사람도 있어.”

“사람이 사는 집에 어떻게 책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

“우리 집이 책이 좀 많은 것일 뿐이야. 그렇다고 책을 전혀 안 보지는 않겠지.”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집에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TV나 냉장고가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궁금함도 없다. 관심 있는 분야가 어떤 것이고 어떤 책들을 가지고 있는 지가 그 사람을 아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번지르르한 실내 인테리어에 비싼 가구며, 각종 첨단 전자기기들이 즐비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들 학습지 외엔 이렇다 할 책 한 권 없으면 허탈해진다.

 

문화는 인류의 생존과 발전 방식.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역사는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의 고대사를 가지고 있다. 이즁텐의 삼국사를 보면 중국의 이념적 기틀이 마련된 시대는 번영을 이루었던 상나라가 아니라 농사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국력이 떨어졌던 주나라가 그 주인공이다. 상나라는 상인(商人)이라는 말이 시작된 시기로 상업에 능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상인이라는 말이 물건 파는 사람으로 당연히 인식이 되지만, 사실은 ‘물건 파는 데에 능한 상나라 사람’에서 비롯됐다.

상나라 왕은 ‘신의 아들’이었고, 주나라 왕은 ‘하늘의 아들’이었다. 신이 아니라 하늘이 군권을 부여한다고 했다. 신수는 종교적이고 천수는 윤리적이다. 때문에 주나라인이 중국 문명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하늘이 군주에게 권한을 주었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보호해야 했는데, 이것이 통치의 근간이라고 이즁텐은 강조한다.

덕치(德治)를 하면서 예악(禮樂)을 수단으로 삼았다. 예의 기능은 질서 유지였고 악의 기능은 민심 안정이었다. 민심이 안정되면 질서가 유지되고, 질서가 유지되면 사회가 안정되며, 사회가 안정되면 정권이 공고해진다. 이것이 시스템이고, 문화의 개념에 비출 수 있다. ‘문화’란 바로 ‘인류의 생존과 발전 방식’에 다름 아니다. 생존과 발전은 껍데기가 아니라 담겨 있는 정신이요 콘텐츠다. 결국 돈 많은 상나라 사람이 아닌 가난하지만 예와 악으로 마음을 담은 주나라 사람에서 중국이라는 커다란 나라도 출발했다는 것이다.

연초 대통령 기자회견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지난 2018년 사상 최초로 수출 6,000억 달러를 달성해 국민소득 3만불의 시대에 입성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계 6위 수출국이 되었고, 경제 강국인 ’30-50 클럽’에 일곱 번째로 가입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것이 ‘국민소득 몇 만불’이었다. 국민소득이 선진국처럼 올라가면 누구나가 영화에서 보던 그런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남의 얘기였다. 국민소득이 얼마나 되건 간에 피곤한 삶은 펴질 줄을 몰랐다.

회견에 대해 여기 저기서 비수 같은 논평과 차가운 여론이 끓어올랐다. 같은 시각, 몰던 택시에서 분신 자살한 운전기사의 비보를 접했고, 쇼트 트랙의 간판급 국가대표 선수가 17살 때부터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왔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오버랩 됐다. 남해안에서는 낚시하던 배가 뒤집혀 사망하고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75미터 높은 굴뚝에서 무려 426일간의 장기 농성을 벌여온 노동자들의 귀환 소식도 전해졌다.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는 연일 한국 기업들의 선전이 보도됐다. 걸어 다니는 자동차가 소개되고, 통 속에서 대화면으로 펼쳐지는 첨단 TV에 박수가 쏟아졌다. 세계에서 가장 두터운 마니아 층을 보유하고 있는 애플의 소식은 잦아든 지 오래다.

 

기업문화, 뭐든지 하다 말면 진짜 아니 한 만 못해

갈수록 틀은 화려해진다. 미디어는 온통 어지럽고 복잡하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종일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그럴싸한 의견과 평가를 내놓는다. TV나 유튜브에서는 온통 뭘 먹어대는 사람들뿐이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현란한 몸동작과 목 놓아 부르는 고성이 점령했고, 드라마는 현실성 부족한 악다구니들의 뒤섞임이다.

발전은 했지만, 뭔가 모르게 마음은 갈수록 공허해진다. 온갖 산해진미를 찾아 다니며 배가 터질 지경인줄도 모르고 더 먹으려는 프로그램들의 홍수에서 유일하게 피난처가 되는 곳은 ‘자연인들의 삶’인줄도 모르겠다. 한 끼를 먹기 위해서 산을 한번 오르내려야 하고, 찬 한 가지를 만들기 위해 숲을 뒤지고 밭을 파 헤치는 그들의 삶이 오히려 더 여유가 있고, 알차 보이는 것은 왜일까?

시대환경을 구성하는 인프라의 발전은 응당 이루어져야 한다. 4G 통신환경 하에서는 완벽한 자율주행차량 시스템을 지원할 수 없다. 5G로 승격된 통신환경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돌돌 말아 둔 화면을 넓게 펼쳐서, 뭘 봐야 할 지가 고민스럽다. 5G로 빨라진 통신환경에서 어떤 것을 주고 받아야 할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강산이 몇 번 변했다. 그나마 경기가 좀 나았을 때 회사는 직원들의 자기계발과 교육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체력단련비며 도서비도 지원하고 수시로 유명한 전문 강사들을 불러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과 글을 전하기도 했다. 마치 그런 과정에 소홀하면 일의 성과도 부족한 것인 양, 승진에 제한도 두었다. 하지만 경기가 가라앉자 교육에 들어갈 비용을 탓하며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돌변했다.

독서경영이 붐을 이루던 때가 있었다. 회사들마다 책을 사들이고 눈에 띄게 진열했었다. 책 많이 읽었다는 얘기는 없었다. 펀 경영이 한 때 유행이었다. 일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 했는데, 별별 희한한 것들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잘 해봐야 ‘갑분싸’다. 집중근무제를 한다고 오전 오후 두 시간씩 회의는 물론 전화 통화나 화장실도 제한했다. 효율이 올라가기는커녕 남의 간섭 없는 휴식 시간일 뿐이었다.

창의적 인재와 글로벌 시각을 요구한다. 모든 사고를 현장에서 시작하라고 한다. 나이 직급을 불문하고 평등하게 일하고 주도적으로 이끌라고도 한다. 때문에 괜찮지만 밋밋한 아이디어는 살해된다. 생산 기계가 없는 곳은 현장이 아닌 것으로 착각하게 됐다. 옆 사무실 팀장에게는 고개 숙일 줄도 모르는 시절이 되었다. 어른이 수저를 들기 전에 먼저 먹지 않는 것에서, 사진 찍기 전에 수저를 드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세상이 됐다. 옆에 앉아있어도 카톡으로 대화한다. 워라벨 시대라 해질녘에 번개 치면 왕따되기 십상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나 십여 분 맨손 체조 같은 습관도 두어 달은 꾸준히 해야 몸이 기억한다. 남과 더불어 만들어가는 직장도 사회다. 사소한 것이라도 몇 달은 서로 맘을 써야 자리를 잡는다. 시간 들이지 않고, 사람 맘 움직이지 않고 되는 일이란 없다. 일일신 우일신 (日日新 又日新), 중국 은나라 탕임금이 욕조에 새긴 글귀다. 매일 이랬다가 저랬다 새롭게 하는 것으로 착각하겠지만, 처음 품었던 원대한 마음이 변질될까 두려워 매일 새로운 싹을 틔워 보존하려는 굳은 마음의 발로다.

일주일에 한 권 정도는 꼭 읽고자 노력 중이다. 때문에 다 읽어 가면 그 다음에 읽을 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것도 평소에 늘 생각해둬야 가능하다. 옷은 한 벌 밖에 몸에 걸치지 못하지만, 좋은 말과 글은 여러 겹으로 맘에 담아둘 수 있다. 내일 뭐 입을까 고민보다, 내일은 뭘 읽을까 하는 고민을 더 듣고 싶다. 강요할 순 없고, 아재의 넋두리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1.29  19: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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