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 칸은 인도 뉴델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인도의 델리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왔고, 23세 때 오하이오주의 켄트주립대학교에서 광고학을 공부했다. 이후 콜롬비아대학의 엔지니어링학과에 다시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그녀는 미래의 남편인 사카와트 칸을 만났다.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이름으로 30개 이상의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끌렸다. 칸과는 다르게 그는 무슬림이었지만 그녀는 그러한 것들을 무시했고, 특히 그녀의 부모가 단호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로 이사했고, 그녀는 인텔에서 근무하게 됐는데 이때 라자라트남을 만났다. 1995년경 그녀는 UC 버클리 경영대학원에 진학했고, 인텔은 그녀에게 인텔의 경쟁사인 AMD에 대해 조사하도록 과제를 주었다. 그녀는 리서치를 위해 당시 뉴욕에 근거를 둔 작은 투자은행인 ‘니드햄 앤 컴퍼니’에서 테크놀로지 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했던 라자라트남과 연락했고,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는 라자라트남의 첫 번째 타깃이 됐다. 그들은 모두 남아시아계 출신이었고, 특히 라자라트남의 부인이 칸과 같이 펀잡(Punjab)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곧 직업적인 대화를 넘어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칸은 월스트리트 진출에 대한 꿈이 있었고, 라자라트남은 칸에게 인텔의 내부정보를 요구했다. 처음에 칸은 당황했지만 바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거대한 테크놀로지 회사였던 인텔의 내부정보를 라자라트남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라자라트남이 갤리언 펀드를 확장할 때 인텔을 떠나 갤리언에 조인했지만 트레이더들의 개인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갤리언의 규정에 갑갑해 했다. 결국 그녀는 1999년 3월 갤리언을 나와 디지털 에이지 캐피탈이라는 이름의 독립적인 금융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그녀는 하루에 수도 없이 통화를 했다. 그녀의 사무실에는 전화 6개와 컴퓨터 스크린 5개가 있었다. 그녀는 2000년에 당시 하늘을 날았던 기술주 덕분에 4000만달러를 벌었다. 그녀의 투자 성공을 듣고 많은 친구들이 돈을 들고 그녀를 찾아왔다. 그중 한 사람이 수닐 발라였다.

발라는 폴리컴의 고위급 매니저였다. 폴리컴은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비디오 콘퍼런스 장비 지원 회사였다. 칸은 발라를 2002년에 처음 만났는데, 그가 그녀의 절친 중 한 사람과 데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데이트할 때 칸을 초대했고, 그들은 함께 캘리포니아의 차이나 식당에서 식사도 하면서 친해졌다. 그는 끔찍한 이혼을 마치고 보스턴에서 막 캘리포니아로 온 상태였고, 그는 서부 지역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쉬운 먹잇감이었다.

인터넷 버블이 꽃피는 동안 칸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자신의 놀라운 성공에 도취했다. 그리고 그것이 오래 갈 줄 알았다. 그러나 2005년경 칸의 승리는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기술주 버블의 붕괴는 참혹했다. 버블 붕괴의 파열음만큼이나 무섭게 그녀의 계좌도 무너졌다. 이러한 금융적인 우환은 그녀의 결혼 생활까지 위협했다.

칸 부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호사스럽게 살았다. 그들은 너무 많이 돈을 썼다. 그들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부유한 타운인 아세톤에 약 2700평 규모의 저택을 모기지 없이 현금 1050만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특히 그녀는 17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샀고 백화점은 그녀가 올린 매출이 100만달러를 넘자 그녀에게 BMW를 선물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빚까지 졌다. 거기에다 기술주 버블의 붕괴는 칸에 치명상을 입혔다.

칸은 궁지에 몰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정적인 고통에 직면한 칸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라자라트남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반갑게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칸은 지금 자기가 부딪혀 있는 현금 경색을 말하면서 갤리언에서의 잡(Job)을 요청했다.

그는 칸에게 어떤 회사에 중요한 컨택트를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이전에 라자라트남과 일했던 칸은 그 말이 어느 회사에 정보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녀는 폴리컴에 정보원이 있다고 말했다. 라자라트남은 그녀에게 갤리언에서의 자리를 약속했고, 그녀는 자신이 얻는 정보를 라자라트남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2005년 12월, 그녀는 발라와 그의 새로운 아내를 휴일 저녁에 초대했다. 칸은 그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파티가 끝나고 발라가 떠나려고 할 때에 칸은 이번 분기 실적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라가 칸에게 준 정보는 폴리컴의 4분기 실적은 월가의 예상치인 1억4500만달러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이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칸은 이 뜨거운 정보를 라자라트남을 포함해서 그녀의 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칸이 라자라트남에게 폴리컴의 내부정보를 전달하는 이 메시지가 SEC에 의해 잡힌 것이다. 칸은 발라로부터 빼낸 폴리컴의 2006년 1분기 실적 정보를 다시 라자라트남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유명한 힐튼호텔 거래 건이 다시 발생한 것이다.

2007년 11월 28일, FBI의 B. J. 강은 다른 수사관과 함께 실리콘밸리에 있는 칸의 대저택을 통보 없이 방문했다. 그들은 약간 살이 찐 50세가량의 여성과 마주앉았다. 당시 그녀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결혼 생활 또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B. J. 강과 다른 FBI 수사관은 칸과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이 폴리컴의 임원인 발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그를 잘 알고 있지만, 회사의 정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잡아떼었다. 그녀는 라자라트남에게 메신저나 이메일을 보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대화는 진전이 없었다.

B.J. 강은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강은 칸에게 그녀가 라자라트남에게 내부정보를 제공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은 그녀가 라자라트남에게 보낸 폴리컴 관련 메신저를 보여 주었다. 강은 오랜 기간 동안 SEC와 FBI가 그녀의 거래를 조사해 왔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내부자거래와 관련된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녀는 눈앞에 닥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강에게 “내가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감옥에 가겠지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FBI가 라자라트남을 잡는 데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먼저, 그녀는 그녀가 라자라트남과 통화하는 핸드폰의 녹음을 허용했다.

이제 FBI와 연방 검찰은 라자라트남에 대한 수사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칸의 협조는 라자라트남을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강이 칸의 집을 방문한 후 약 2년이 못 되어 FBI와 연방 검찰은 라자라트남과 그의 내부자거래에 가담한 거의 모든 관련자들을 체포하거나 기소했다.

라자라트남이 체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녀의 남편은 신문에서 이 사건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증인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는 칸을 보면서 “당신이지?”라고 말했다. 그 기사는 FBI의 말을 인용하면서 증인에 대해 “뉴욕에 근거를 둔, 헤지펀드에 자문을 해주는 독립적인 컨설턴트로서 일정 기간 캘리포니아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던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다른 언론은 증인을 가리켜 “갤리언을 격침시킨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SEC의 판단은 옳았다. 칸의 협조는 라자라트남과 그 일당을 소탕하는 데 결정적인 돌파구를 열어 주었다. 그러나 2009년 11월 9일, 라자라트남과 주요 일당들이 체포된 후 한 달이 못 되어 그녀 역시 FBI에 의해 체포됐다. 그녀 자신도 연방교도소를 피하지는 못했다. 2013년 1월 31일, 54세의 증권 트레이더인 칸은 증권사기, 공모, 그리고 정부에 대한 사법방해를 이유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