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visible Scape, Installation

단색적으로 올라온 화면, 나무판을 쌓아 올린 설치와 바닥의 검정거울에 투영되는 이미지, 창을 통해 스며드는 빛살, 이들을 포용하는 공간….

전시장은 디지털네트워크 생태계처럼 회화와 설치가 서로 연동되는 융합미학의 메타포로 밀려든다. 화면은 무언가 꿈틀거리며 부유할 것 같은 생동의 기운, 안개 자욱한 강물위로 물고기가 튀어 올라 잠수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오는 듯 한 어떤 청량감과 일렁임을 감지하게 된다.

붓질은 수십 수백 반복의 침잠과 비움 뒤에야 비로써 희미하게 올라온 그 무엇의 색채다. 보자기를 쌌다고 내용물이 없는 것이 아니듯, 삶의 행로에서 맞닥트린 무게가 묻혔거나 잊어지거나 먼지처럼 사라져간 후 비로써 복받치듯 우러나오는 것과 조우하게 된다.

그러니 고정된 것은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운동성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맥락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의미로서의 드로잉’이라고 말한다. 보는 방향, 각도에 따라 바닐라색이 완전한 파란색채로 드러나는 것은 간섭효과(Interference Effect)를 내는 물감을 운용한 때문이다.

블루, 연분홍, 연두빛깔 등 각양각색의 화면은 그래서 너와 내가 만나는 디지털플랫폼, 마치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코드기호처럼 마음의 통로가 되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전시장에서 인터뷰 한 김태호(KIM TAI-HO)작가는 “화면엔 구체적인 형상 등과 또 다른 여러 이미지가 덮여 쌓이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바람, 공기, 소리, 침묵에 이르기까지 이미지가 없는 것도 내재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 Scape Drawing, Acrylic on canvas.

한편 켜켜이 기억의 편린을 쌓아 놓은 듯 나무판집적을 바라보면 그 사이 한 줄기 뻗어 나오는 눈부신 자연 채광(Lighting)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갖게 된다. 다시 전시장을 천천히 돌아다본다.

유년의 흑백사진 가슴 속에만 묻어두었던 자아의 잔상(殘像)처럼 저쪽 벽 민트 색 그림이 심연의 비밀을 풀어놓듯 검정거울 속에서 짙푸른 파랑색으로 머뭇거린다. 따로 또 같은 약간의 낯섦, 조금씩 깨달아가는 생의 행보처럼 그렇게 소통하고 공유하는 열린 공간이다. 시간과 기억을 응축한 존재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지는 듯 한 놀라움과 환희를 품은 또 하나의 아름다움, ‘김태호의 모호함(obscurity)’이다.

▲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김태호(金台鎬, Kim Tai-ho)작가 <사진=권동철>

멀티미디어아티스트 김태호(1953~)는 춘천 중·고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파리8대학에서 석사를 마쳤다. 금호미술관, 학고재 갤러리, 리안갤러리, 갤러리서미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제19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작가 중 한사람으로 참가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현대미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6년, 제14회 김종영미술상 수상 후 2년 동안 전시를 준비하여 지난해 12월14일 오픈하여 2월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KIM CHONG YUNG MUSEUM) 신관 사미루 1~3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