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날은 온 몸에 작은 비늘이 돋는다.
강을 따라 길이 흐르듯 나도 비늘을 번뜩이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산에 닿고 싶었다.
그러나 무수히 떠나고 되돌아 사랑하여도
산은 경전(輕典)처럼 깊고 멀구나
때론 귀신처럼 눈떠지는 신 새벽이면
나도 마구 달려 검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산에 닿는다.
그러나 산은 물기어린 작은 이파리하나
보여주지 않은 채 비안개 속으로 지워져가고…
아! 존재는 부질없음이여.
이윽고 텅 빈 항아리처럼 되돌아온 아침
팽팽히 긴장된 캔버스는 화두처럼 나를 응시하고
내가 저 산을 그리는 것이 아니요.
저 산이 나를 그리듯
내림굿을 받은 무녀(巫女)처럼 떨리는 붓을 잡는다.
△글=최예태 작가(崔禮泰 作家,최예태 화백,CHOI YE TAE)/작가노트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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