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해 7월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회 치믈리에 자격시험 행사장. 배달의민족이 주최하는  치믈리에 시험은 치킨 미각 능력자를 뽑는 행사며 2017년 열린 1회 행사에서는 총 119명의 치믈리에가 탄생해 눈길을 끌었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나뉘어 진행되며 필기 시험은 듣기평가 5문제와 치킨에 대한 이론 문제 25개로 총 30문항이다. 듣기 평가는 치킨을 튀기는 소리만으로 몇 조각의 치킨을 튀겼는지를 알아맞히는 등 기발한 문제가 출제된다.

배달의민족 특유의 B급 정서를 살린 치믈리에 행사가 지난해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순조롭게 흘러가던 찰라, 갑자기 동물보호단체 소속 운동가 10여명이 무대를 점거하고 기습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배달의민족 광고 카피를 변형해 '치킨은 살 안 쪄요. 치킨은 죽어'와 '30년 사는 닭이 30일 만에 죽네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현장에서 고함을 질렀다.

일순간 혼란해진 현장에서 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를 향해 지근거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살인마!" 모든 생명은 존중을 받아야하며, 생명 자체로 고귀하다고 믿는(것으로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 사람은 국내 3대 동물보호단체 중 하나인 케어를 이끄는 박소연 대표다.

▲ 치믈리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출처=치믈리에

충격의 연속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자격시험 행사장에서의 소동이 끝난 후 약 반년이 흐른 지금, 당시 집회를 주도했던 케어는 최악의 위기에 몰렸다. 치킨이 되는 닭의 생명까지 소중하게 생각한다던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조직적이고 불법적인 유기견, 고양이 안락사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케어는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웹하드 카르텔 논란이 일어날 당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원장의 직원 폭행 영상 및 닭 살육 영상이 공개되자 그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본인들이 논란의 대상이 된 셈이다.

11일 <한겨레>와 <뉴스타파> 등 언론에 따르면 박소연 대표가 이끄는 케어는 '구조'한 유기견과 고양이들을 조직적이고 불법적으로 집단 안락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겨레>가 내부 공익 제보자의 발언과 증거물을 토대로 추산한 케어의 유기견 '학살'은 2015년 8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105마리, 지난해에는 101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라면 일부 유기견들에게 '거리를 배회하며 힘들게 살 것인지' 아니면 '죽을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 셈이다.

케어가 주도하는 안락사는 은밀하게 진행됐다는 말이 나온다. 사체 처리 비용을 치료비로 보이게 만들거나, 위탁 보호로 처리된 개들을 안락사한 정황도 포착된다. 더 놀라운 대목은 케어의 대규모 안락사 배경으로 대규모 구조가 꼽히는 지점이다. 내부 공익 제보자에 따르면 케어는 대규모 구조 활동을 통해 단체를 '홍보'했고, 이후 보호소 과밀 현상이 벌어지자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안락사를 단행했다. 실제로 박소연 대표는 지상파 방송사와 함께 유기견과 투견이 갇혀있는 현장을 함께 찾아가 '구조'를 했고 이 과정은 고스란히 언론을 통해 전달됐다. 홍보 효과다.

▲ 박 대표는 개, 고양이 도살을 막아달라는 법안의 지지를 호소하는 국민청원을 알리기도 했다. 출처=갈무리

조직적인 유기견 안락사 은폐 정황도 나온다. 언론에 따르면 박 대표는 취재가 시작되자 안락사한 유기견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비슷한 개를 구입해 염색을 하는 방안까지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입얀한 유기견 토리를 보호하던 단체로 이름을 알렸던 케어의 음울한 그림자다.

박소연 대표와 케어의 행적을 두고 국내 애견인 동호회 등 커뮤니티에서는 "충격이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박소연 대표가 직접 유기견 안락사를 추진한 장면은 놀랍다는 평가다. 박소연 대표는 지난해 2월 체급에 따라 반려동물로 키워지고 있는 개의 입마개를 채우는 등의 문제로 논란이 일었을 당시 한 토론회에 참석해 "가정에서 일어난 개물림 사고는 집안이 73%에 해당된다"면서 "(개의 입에 입마개를 채우는 것은)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날을 세운 바 있다. 그 정도로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 조직적인 안락사를 지시했다는 점은 놀랍다는 말이 나온다.

▲ 박소연 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이를 비판하는 이들이 박 대표의 SNS를 방문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치믈리에를 피믈리에로 부르더니...
케어와 박소연 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배달의민족은 씁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치믈리에 행사 당시 초유의 행사장 난입을 통해 생명존중의 가치를 강조하던 박 대표와 케어가 실상은 정반대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치믈리에를 피믈리에로 부르며 섬뜩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놀랍다. 물론 지난해 치믈리에 행사장에 등장한 동물보호단체는 케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케어의 회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으며 박 대표는 배달의민족 사옥 앞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면서 "치믈리에 행사 당시부터 내부적으로 할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려고 끝까지 노력을 했는데, 최근 논란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고 토로했다.

▲ 치믈리에 행사 직후 활동가들의 우아한형제들 사옥 앞 퍼포먼스. 출처=갈무리

배달의민족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케어가 주축인 동물보호단체는 지난해 치믈리에 행사장에 이어 배달의민족 사옥에서 규탄집회를 했고, 당시 배달의민족은 강경한 대응과 최소한의 여지를 동시에 남겼기 때문이다.

강경한 대응은 법적인 조치다. 실제로 당시 배달의민족은 "참가자들 얼굴 앞에 대고 닭을 먹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라고 말하고, 마치 그분들이 생명을 경시하는 것처럼 죄인 취급하며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어린 아이들은 겁에 질려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라면서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한 이들에는 본인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행사에 끼친 직간접적 피해, 나아가 행사 참가자 분들의 정신적, 정서적 피해를 초래한 부분 등에 대해 수사 기관을 통해 정식 조사를 진행하는 등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달의민족은 그러나 일주일간 고민한 후 실제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행사장에 난입해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합법적인 이벤트를 테러한 이들에게 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싶었으나 생명보호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고소를 아예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는 최소한의 여지다.

배달의민족은 피해를 입었으나, 자기들의 행위와 '업'이 가져오는 다양성을 고려해 상대방을 최대한 존중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케어는 무조건적인 비판과 지탄을 거듭하며 강공모드로만 일관하다 결국 이 마저도 진정성이 없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배달의민족이 이번 논란에 씁쓸한 반응을 보이는 진짜 이유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치믈리에 행사 자체가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나아가 이번 논란에 대해서도 뚜렷히 하고싶은 말은 없다"면서 "다만 동물보호단체가 케어만 있는 것은 아니며, 이번 일로 전체 동물보호단체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배달의민족 논란 당시 김봉진 대표를 비판하는 글이 보인다. 출처=갈무리

"약간의 가능성을 본다면"
박소연 대표와 케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배달의민족이 보여준 마지막 입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논란을 두고 동물보호단체 전체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운동가들의 주장은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따져봐야 할 것으로 가득하다.

박소연 대표와 케어의 생명에 대한 진정성은 현재까지의 보도와 박 대표 스스로의 해명을 볼 때 쉽게 믿어주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박소연 대표와 케어가 국내 동물보호업계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에 대한 명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며, 무분별한 마녀사냥은 지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박 대표 스스로가 언급했던 유기견 보호와 보호소 과밀화 현상에 따른 안락사 패턴은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이 역시 무조건적인 비판보다 이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정부 당국의 엄중한 관리감독 시스템도 확립해야 한다. 감정의 문제로 이 사안을 넘기지 말고,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측면의 해답을 시간이 걸려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안을 동물보호가 아닌 기업 브랜딩과 최근의 트렌드로 좁혀보면 브랜딩에 대한 고민도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배달의민족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치믈리에 행사를 통해 논란을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제기된 일부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지금까지 배달의민족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B급 브랜딩에 대한 고민도 이어져야 한다. 배민신춘문예 당시 '미투운동'을 폄하했던 일부의 논란을 걷어내는 문제와 맥락을 함께하며, 이제 3조원 기업이 된 배달의민족이 풀어야 할 과제다.

최근 페미니즘 논란이 불거지며 '미러링' 방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논의도 필요하다. 치믈리에 행사 당시 케어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는 배달의민족을 미러링하며 소위 '자극적인 효과'를 봤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이 양측 감정의 골을 필요이상으로 깊게 만든다는 점이다. 자기의 의견을 확실하게 공론의 장으로 올리며 명확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언로의 확보가 시급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