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수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그 문제를 하나둘씩 해결하면서, 역량의 상승을 경험한다. 물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많다. 그 문제들을 마주하고서는 좌절을 경험한다. 이는 문제를 풀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는가에 따라 갖고 있는 경험과 실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늘 문제를 푸는 방식과 방법에 의해 스스로의 경험과 실력을 갈고 닦으려고 애쓴다. 점점 어려운 문제가 주어지고, 이를 하나둘씩 해결하면서 스스로가 성장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스스로를 옥죄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바로 “그 문제를 누가 내는가”이다. 문제를 푸는가 못 푸는가보다 오히려 이 명제가 더 큰 문제이다. 직면하는 문제를 스스로 선택했는가, 혹은 타인에 의해 주어졌는가에 따라 성장했는가 하지 못했는가를 설명 가능하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전자보다는 후자를 경험한다. 그리고 ‘왜’ 이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당장은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의외의 곳에서 문제가 터진다.

우선 이들은 불행하다.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은 생략한 채, 늘 문제를 풀어내는 것에만 숙련되어 간다. 그 결과로 다른 경험 없이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원되기 일쑤다. 그렇게 만성이 되면 이제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문제해결력이 늘었다고 착각하여, 계속 열심히 임하게 되고, 결국 해당 영역에 대해 조직의 논리에 의해 심화된 것이다. 그러나 나와서는 도무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특히 요즘 같은 멀티태스킹, 융복합, 연결 등의 세상에서는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최고의 케이스도 있다. 다행히도 해당 영역이 앞으로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호황을 불러올 수 있는 부문이고, 그 결과로 누구도 쉽게 가지 못할 커리어를 갖는 과정에 있다면 말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억세게 좋은 운뿐이다.

하지만 이런 영역은 앞으로 나타나기 어려울 뿐더러, 십수년 동안 그런 운을 타고난 이도 보질 못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이직스쿨에서는 가급적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어보라고 권유한다. 적어도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말이다. 그 일에 스스로 문제를 내면서부터 의문을 갖게 되고, 그렇게 갖게 된 의문이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와 과정을 마련하는 데 스스로를 돕는 단초를 제공한다.

보통의 일은 주도하는 이가 존재한다. 누가 주도하는가는 공적인 영역이라면, 우리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이 암묵적으로 각각의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조직에서 바라는 실적과 성과를 만들어내면 된다.

그 실적과 성과는 분명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연히 논리와 합리성은 있겠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과정을 채우는 것이 개인의 몫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해결하는 방향과 방법, 나름의 기준도 늘 존재한다. 당연히 과정상의 꼭 거쳐야 하는 나름의 불문율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부터 의심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직장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속의 문제는 달성 이후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그 문제를 받을 때부터 솔루션을 내놓고, 이를 함께 문제에 맞서야 하는 이들과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를 도출하는지 단계별로 말이다.

이때 내가 취하는 제스처에 따라 ‘문제를 내는 사람과 푸는 사람’이 구분된다. 그 제스처가 그 문제를 그대로 받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문제에 대하여 ‘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진짜 문제일까, 만약 아니라면 다른 문제가 있지 않을까 등의 질문이 이어져야 이전보다 문제에 대한 적극성이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를 받을 때부터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정의한 내용으로 다시 한 번 함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들에게 공유한다. 다음으로 문제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새롭게 문제를 정의하고, 그에 대해 효과적인 솔루션을 내놓는 것이다.

지금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장 금일, 금주, 해당 월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있다면 그 문제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진짜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지 말이다.

만약 문제를 그대로 받는 경우가 더 많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다. 스스로가 수동적 직장인이라고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성이 되는 일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스스로 언제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이라고 여겼지만, 사실 조직 밖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만성이 되면, 조직이 쳐놓은 울타리로부터 빠져나갈 길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또 다른 의미의 무능력을 낳는다. 직장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수없이 받아왔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대부분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 스스로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어 보지도, 되려고도 노력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높고 무거운 직책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희박해진다. 동시에 현 직장이든 다음 직장이든 마찬가지로 연차만 쌓은 월급 루팡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나를 받아줄 곳은 거의 없게 되고, 스스로 자괴감만 쌓여간다.

지금 만약 그렇다면 빨리 ‘스스로가 문제를 재정의하려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문제를 받고, 그 문제에 대해 호기심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그 결과를 스스로 정의한 ‘새로운 문제’로 함께 풀어야 할 동료들과 나눠야 한다.

그리고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다시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는지, 당장은 그것이 어렵다면 축소 또는 완화시킬 수 있는지를 논의해봐야 한다. 그것이 곧 문제를 정의하고,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한 상태에서 어떤 문제든지 접근하는 기본 원칙이다.

그래야만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유사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조직에 국한된 문제 해결하는 역량이 성장하는 것이 아닌, 유사 문제 또는 인접 문제에도 동일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지를 실전을 통해 연습하려는 태도이다.

지난 4년간 이직스쿨을 운영하고 수많은 사람을 상담하면서 위와 같은 성향에서 나타나는 부분을 자주 발견했다. 문제의 주체가 늘 내가 아닌 문제를 낸 사람이고, 이 사람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일을 대했던 방식이 직장 속에서 상사로부터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하달받고, 이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 속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성장을 하는 방식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것이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사를 받고, 그 일을 사사를 해준 이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일을 배운다. 그렇게 하나둘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솔루션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거나,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공적을 쌓게 되면서 덩달아 상사로부터 인정이라도 받으면 스스로 일을 잘한다고 믿게 된다.

커리어상의 발생 가능한 문제는 위와 같은 경험이 잘못된 방향으로 누적되면서 시작된다. 이런 경험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경험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가에 따라 스스로의 커리어를 통해 우수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 혹은 없다가 구분될 수 있다.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나에게든지, 타인에게든지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닌, 문제를 내는 쪽에서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인생도 회사 일도 역할 놀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