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19가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되는 가운데 글로벌 전자 ICT 업계의 관심은 5G를 중심으로 하는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을 비롯해 로봇, 사물인터넷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기술이다. 많은 기업들이 CES 2019를 통해 새로운 신기술을 속속 공개하고 있지만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기술이 스며든 개인화된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에 집중되고 있다.

▲ 삼성전자 프레스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인공지능, 약방의 감초서 중심으로
CES는 하드웨어 가전제품 전시회지만 최근에는 ICT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참전이 많아지고 있다. 아마존과 구글 등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CES를 통해 하드웨어 제조사들과 만나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CES 2018에서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를 내세워 하드웨어 제조사들과 협력을 다졌고, 아마존의 알렉사가 탑재된 기기들도 다수 등장했다.

올해도 비슷한 흐름이다. 다만 그 방향성이 더욱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이제 CES는 단순히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스펙 싸움터가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얼마나 확실하게 담아내느냐가 관건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구글이 CES 2019에서 대규모 부스를 마련하고 국내의 네이버가 처음으로 라스베이거스에 나타난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능화된 초연결 사회를 내걸었다.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미래 비전과 2019년 주요 사업을 소개하는 프레스 컨퍼런스를 연 가운데 김현석 대표이사 사장은 "삼성전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진보를 누릴 수 있도록 기기간 연결성을 넘어 지능화된 서비스 (Intelligence of Things for Everyone)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삼성전자가 보유한 광범위한 제품군을 인텔리전스 플랫폼 '빅스비'와 연동해 기존에 없던 혁신과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가전의 왕 TV부터 심상치않다. 삼성전자의 QLED 8K TV 98형은 인공지능 기반 '퀀텀 프로세서 8K' 외에 업계 최초로 HDMI 8K 60P 규격을 탑재하고, 인공지능 코덱을 적용해 소비자가 8K콘텐츠를 더 완벽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단순한 화질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기본으로 탑재한다는 방침이다.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 2019년형 스마트 TV에 TV 제조사로는 최초로 아이튠즈(iTunes) 서비스를 탑재한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협력으로 삼성전자 스마트 TV 고객들은 2018년 상반기에 출시된 제품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포함해 새롭게 출시 될 TV까지 올해 상반기부터 아이튠즈와 에어플레이 기능을 별도의 기기 연결이 없어도 즐길 수 있게 된다. 아이튠즈가 애플 외 타사 기기에 탑재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아이튠즈 비디오 앱을 통해 아이튠즈 스토어(iTunes Store)가 보유하고 있는 4K HDR 영화 포함 수만 편에 이르는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으며, 아이튠즈는 유니버설 가이드(Universal Guide), 뉴 빅스비(New Bixby), 검색(Search) 등 삼성 스마트 TV의 자체 기능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사용자가 쉽고 빠르게 컨텐츠를 검색하고 시청할 수 있다. 삼성 스마트 TV는 에어플레이2도 지원한다.

▲ 삼성전자의 스마트 TV가 애플과 만났다. 출처=삼성전자

애플의 에디 큐(Eddy Cue) 인터넷 소프트웨어·서비스 총괄 부사장은 "전 세계의 삼성 스마트 TV 사용자에게 아이튠즈와 에어플레이2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다." 며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사용자들은 대형 스크린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아마존·구글의 인공지능 스피커와도 연동해 개방형 에코시템을 구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 데이브 다스(Dave Das) 상무는 "삼성 TV는 단순히 영상을 시청하는 스크린이 아니라 초고화질과 초대형 스크린, 인공지능과 연결성을 통해 소비자에게 궁극적인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선사하는 디스플레이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밀리허브도 마찬자기다. 뉴 빅스비를 지원하며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크게 키웠다는 평가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단순히 미러링 하는데 그치지 않고 패밀리허브 스크린에서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까지 조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 존 헤링턴(John Herrington) 상무는 "이제 빅스비가 우리의 일상에 상당히 깊숙이 들어 왔으며, 주방이나 세탁 공간에서 확실한 인공지능 비서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 노트북 펜S 등 모바일 생태계 강화와 함께 생활가전 외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전략도 빨라지고 있다. 디지털 콕핏 2019가 눈길을 끈다. 뉴 빅스비와의 연동으로 집 안의 스마트기기를 쉽게 조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갤럭시 홈을 통해 집에서도 차량의 주유 상태나 온도 등을 쉽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총 6개의 스크린을 장착해 개인별 최적화된 인포테인먼트 환경을 제공하고 삼성 덱스와도 연동이 가능하다.

삼성봇의 등장은 더욱 극적이다. 삼성전자 AI센터장 이근배 전무는 "삼성봇은 건강·환경 등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시대에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기 위해 개발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집안 공기가 오염된 곳을 감지해 직접 이동하면서 공기질을 관리해 주는 삼성봇 에어(Samsung Bot Air)와 쇼핑몰이나 음식점 등에서 결제와 서빙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삼성봇리테일(Samsung Bot Retail)을 비롯해 웨어러블 보조장치도 공개했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략을 짜는 분위기다. 세계 최초 롤러블 OLED TV인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이 하드웨어 기능의 정수를 보여줬다면, 강해진 LG씽큐는 인공지능 로드맵을 상징한다. 새로워진 LG 씽큐 제품은 고객이 꼭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객의 생활 패턴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얼마나 자주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하는지 등의 정보를 파악해 제품을 사용하는 각 상황에서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 제안한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LG씽큐의 인공지능 기능에 회의감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LG씽큐는 최근 데이터 확보에 따른 사용자 고도화 전략을 충실히 이행하며 나름의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알파9 2세대(α9 Gen 2)을 탑재해 최적의 화질과 음질을 구현한 88인치 8K 올레드 TV 등을 공개하며 역시 인공지능 전략을 강조했다.

지난해 클로이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로봇 전략을 강조한 LG전자는 올해 CES 2019에서 인공지능 그 자체를 강조했다. 박일평 LG전자 CTO는 7일 개막 지조연설에 나서 “지난 100여 년간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가전의 발전으로 집안일로 보내는 시간이 약 75% 줄었지만, IT 혁신으로 인해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인지노동(cognitive labor)의 양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박 CTO는 이어 “LG전자의 비전은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더 나은 삶을 도와주는 ‘라이프스타일 혁신가(lifestyle innovator)’가 되는 것"이라면서 맞춤형 진화(進化, Evolve), 폭넓은 접점(接點, Connect), 개방(開放, Open)이라는 3개의 화두를 제시했다.

박 CTO는  “인공지능은 고객의 명령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고객의 의도와 요구를 이해해야 한다”며, “단순히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말하지 않은 것조차 읽어내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LG전자는 로봇들이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을 클라우드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여러 로봇이 협업해 고객들에게 더욱 다양하고 지능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일평 CTO가 기조연설에 나서고 있다. 출처=LG전자

인공지능은 이제 기술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중심으로 공개된 CES 2019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들의 공통된 화두는 인공지능과 생활밀착형 플랫폼의 진화로 정리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되면서 생활밀착형 플랫폼과 서비스를 구축해 일종의 라이프스타일로 정착되는 순간이다. 인공지능, 즉 기술이 '인지할 수 없는' 공기가 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고도화되며 다양한 영역에 스며드는 장면도 중요하다. TV의 잡티를 제거하고 개인비서가 되어주는 장면은 곧 인공지능 활용법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중심으로 개인 맞춤형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제 기술이 아닌 '당연한 제품의 방식'이 되어 로봇과 같은 미래 디바이스를 지능형 생활가전으로 변신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