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강수지 기자] 퇴직연금 상품 제안서에 실질 수익률을 직접 제시하면 가입자들이 보다 고수익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위험·중수익의 디폴트 옵션 상품 구성을 제시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형식적인 퇴직연금 온라인 교육을 제공하거나 상품별 상세 위험 지표인 수익률 표준편차를 추가 제시한 경우에는 선택에 유의미한 영향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은 금융 정보를 단기간 형식적으로 제공하는 금융 교육보다는 다양한 방식의 금융 교육을 꾸준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행태경제학적 연구 결과를 금융감독정책에 활용한 국내 최초 사례'를 7일 공개했다.

▲ 자료=금융감독원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172조1000억원이다.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지난 2017년 기준으로 운용 수익률은 연 1.88%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금감원은 한국 갤럽을 통해 선정한 총 630명(남자 333명, 여자 297명)의 DC형 퇴직연금 실제 가입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 관련 금융교육 제공이 연금 운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상품 선택의 변화를 유도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수익률 표준편차를 가입자들에게 추가로 제시할 경우에도 상품별 개별 위험을 구체적으로 알게 돼 상품 선택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비슷한 위험 지표인 상품별 위험 등급(1∼5등급)과 차별화 되지 못하고 위험에 대한 과도한 정보 제공이 상품 선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유사한 정보를 중복적으로 제공하는 등 과도한 정보 제공 보다는 의사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핵심 정보만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게 금감원의 분석이다.

금감원은 실질 수익률을 직접 제시할 경우 개별 상품으로부터 얻는 실질적인 수익을 정확하게 인식해 선택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를 실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상대로 보다 고수익 상품 중심으로 가입자들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실질 수익률을 제시한 경우와 명목 수익률을 제시한 경우는 사실상 동일한 정보를 제공 형식만 달리한 것인데도 유의미한 선택 변화가 관찰된 것이다.

이에 금감원은 실험 참여자에게 동일 정보를 제시하더라도 제시 형식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즉 정보 제공 형식에 따라 상품 선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가입자가 쉽게 활용 가능하도록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구성된 디폴트 옵션을 제시하는 경우, 운용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이를 선택한 뒤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이를 실험했다.

가입자들은 예상대로 디폴트 옵션의 상품 구성을 크게 바꾸지 않아 디폴트 옵션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보다 고수익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따라서 가입자의 무관심 등에 의한 불합리한 선택을 개선하기 위해 디폴트 옵션의 도입 등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실험 결과에 따라 금감원 연금금융실은 지난해 12월 '퇴직연금 상품 제안서 표준서식'을 제정하면서 행동 실험 결과를 반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금융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정책 수립을 위해 다양한 행태경제학적 연구 주제를 적극 발굴하고 지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