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정살 구이는 씹히는 식감도 좋고, 육즙이나 기름기도 골고루 있어 고소해.”

초등학교 4학년으로 올라갈 막내가 저녁 식사로 올라온 항정살 구이를 연신 쌈 싸먹으면서 맛 평가가 이어졌다. TV도 잘 보지 않던 녀석인데, 유튜브에서 봤는지 요즘은 대하는 음식마다 제법 자세하고 그럴듯한 평가를 내놓는다.

되돌아보면 우리 세대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맛에 대한 평이 인색하기 그지 없었다. 맛을 평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맛있다’, ‘맛없다’ 정도로 제한된 표현 밖에 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요샌 웬만한 사람들은 맛 표현에 있어서도 상당히 진화했다. ‘색이나 향, 부드러움, 고소함, 풍미에 비유적인 표현까지’ 아마도 미디어에서 소위 전문가들로 불리는 사람들의 평을 많이 접해서 그런 모양이다.

직장인이 되면서 익숙한 집밥을 떠나서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처음에야 외식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이었지만, 매일 밖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엔 그것조차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시내에 유명한 음식점들이 즐비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지도 않고, 사실 그런 음식만으로 끼니를 계속 해결하는 것도 물린다.

손님 접대 같은 경우 괜찮은 음식점을 찾게 된다. 코스요리가 나오는 중식당이나 맛집으로 소문난 한식집 아니면 일식집을 찾는다. 평소라면 부담될 고급 요리와 술도 주문하게 되는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그 곳을 찾게 된 이유는 귀한 손님에게 불도장이나 불고기 또는 복어 요리 같은 고급 요리를 대접하고 싶기 때문이지만, 그 곳에 대한 평가는 메인 요리가 아니라 흔하디 흔한 것들에서 비롯된다.

중식당이라면 당연히 짜장면이 맛있어야 하고, 한식당의 경우엔 아무리 궁중요리의 대가로 소문난 집이라 하더라도 김치와 깍두기가 형편없는 식당은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때문에 처음 그 식당에 들어갔을 때 차려지는 기본적인 서너 가지의 찬에서 이미 평가는 대부분 끝난다.

 

강팀은 강한 공격력이 아니라 안정된 수비에서 비롯

프로배구단을 1년간을 운영했기 때문에 겨울철 배구 시즌을 대하는 생각이 좀 남다르다. 아주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각 팀 선수들, 감독이나 프론트, 연맹, 경기 감독관 등 관계자 대부분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때문에 그 판을 떠난 지 한참 되었지만, 맡았던 팀에는 자연히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창단 10년이 다 되도록 늘 최하위권을 맴돌던 팀이라, 지난해까지 경기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상위권 팀들에겐 승점 자판기에 지나지 않았고, 하위권 팀들에게도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경기를 보는 내내 마음 졸이고 분노하고 애닯게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3세트를 따 내야 끝이 나는 경기라 어쩌다 초반 1, 2 세트에 잘 하다가도 분위기 반전되면 후반에 가서는 다 이긴 경기를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맘 편했다.

다행이 2018-2019시즌에는 중위권에 포진해 있어, 리그를 대하는 마음이 흐뭇하다. 승점도 생각보다 많이 챙겼기 때문에 어쩌면 소망하는 ‘봄 배구’도 가능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팀이 상당히 기형적으로 독특한 것은 사실이다. 총 6라운드에서 3라운드까지 18경기를 치르는 동안 리시브 시도는 총 1,368회였는데, 겨우 509개만 정확하게 받았다. 겨우 3분의 1정도만 제대로 리시브 했다. 때문에 리시브 정확도, 효율 측면에서는 7개 팀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득점, 공격, 서브, 블로킹 같은 것들은 중위권이다. 범실이 가장 적긴하지만 팀이 중위권성적을 그나마 유지하는 것은 강한 외국인 선수가 버텨주는 덕분이다.

흔히 배구는 강한 공격 즉, 멋지고 강력한 스파이크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강한 공격은 허둥대는 수비에서는 결코 제대로 나올 수가 없다. 상위권 팀들은 안정된 수비에 잘 짜인 조직력을 보유한다. 그런 조직력에서 강한 공격이 나온다. 공격력 하나만 떼 놓고 본다면 하위권 팀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밀리지 않는다. 결국, 상대가 허를 찌르는 서브를 넣었을 때 허둥지둥 받아 올린 리스브는 강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이 요구했던 것은 하나(받고) 둘(올리고) 셋(때리고) 중에서 ‘하나’였다. 그게 리시브다. 리시브는 리베로 아니면 수비형 레프트 담당이다. 당시 팀에서 우수한 레프트 자원은 넘쳤다. 거듭된 리그 최하위 성적 때문에 먼저 선발할 권리가 주어졌는데, 그때마다 보강한 레프트 공격수들로, 액면가로 봤을 때 팀 공격력은 최강이었다. 하지만 그런 공격수들이 제대로 된 공격력을 보여준 적은 기억이 없다.

그 선수들은 대학교에서 주포를 담당하면서 모두가 한가락씩 했었다. 때문에 굳이 수비에 가담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프로 무대에 올라와선 갑작스럽게 수비를 담당하게 되니 쉽지 않은 것이었다. 때문에 최고의 공격 선수진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늘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패전이 반복되자 조직력과 경쟁력은 어느새 다 사라지고, 다른 팀들의 승점이나 올려주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우등생은 미/적분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더하기 빼기부터 잘해

반면에 오랜 팬으로 응원하고 있는 ‘화수분 야구’의 주인공, 두산 베어스 같은 팀도 있다. 트레이드나 FA를 통해 특별히 외부 영입을 하지 않아도 2군에서 끊임없이 알토란 같은 선수들이 올라온다. 2018년에도 리그 정규 우승을 그것도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5년간 외부에서 영입한 FA 선수라고 해봐야 2015 시즌을 앞두고 데려온 장원준 1명에 불과하다.

반면에 2013 시즌 종료 직후 이종욱, 손시헌, 최준석 같은 팀 내 주축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어서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프랜차이즈 간판 스타인 김현수도 메이저리그로 갔다가 LG 트윈스로 옮겼다. 2016 시즌이 끝난 뒤에는 이원석, 2017 시즌 후에는 민병헌이 떠났다. 그리고 2018년에는 국내 최고의 안방마님인 양의지 마저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그런데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 2번에 준우승 2번을 차지하는 최강 전력을 자랑한다.

부산에 살면서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OB 베어스의 팬이 되었다. 1982년 원년 우승보다 이후 12년 동안 최하위권을 전전하면서도 끈끈하던 그 모습에 더 애정이 생겼다. 그러다가 1995년 한국시리즈 정상을 탈환한 팀 DNA에 더 매료됐다.

일 잘하는 회사는 흔히들 아주 고난이도의 하이테크 기업만 일컫는 말이 아니다. 일 잘하는 회사는 어려운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일 잘하는 회사는 기본적인 일들과 원칙적인 일들에서 막힘이 없이 잘 해 나가는 기업들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시험 준비를 할 때면 자기는 이해도 못하는 어려운 문제만 들고 끙끙대다가 대세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자기가 시험 점수가 낮은 이유는 시험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탓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삼차 방정식이나 미분 적분의 고차원적인 어려운 문제만 잘 푼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시험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난이도가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골고루 섞여 있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문제 출제자는 난이도의 상중하를 적절한 비율이 되도록 균형을 맞춘다. 착실하게 공부해온 우등생은 미분 적분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기본에서부터 골고루 그 실력이 깔려있다.

갑작스런 큰 일이나 이벤트의 경우엔 웬만한 회사들도 전문가에게 외주를 맡긴다. 일 잘하는 회사는 자기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자신들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은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서 제대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일을 못하는 조직일수록 비용이나 능력 향상을 핑계로 내부에서 끙끙댄다.

어떤 회사든지 그 회사에 대한 평가는, 그 회사가 어쩌다 보이는 최고의 능력치로 평가되지 않는다. 마주치는 임직원들이 본체만체 하거나,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는 사무환경, 말라 죽어 있는 화분들에서 평가는 이미 끝이 난다. 각 임직원들이 자신이 늘 해오던 업무에서 물 흐르듯 막힘 없이 처리해 나가는 것에서 결론이 난다. 매월 이루어지는 월 결산 자료를 찾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불려가며 이 자료 저 자료를 뒤지는 모습에서 잠재력이 우수하고 일 잘한다는 평가를 결코 받을 수 없다. 기본과 원칙적인 업무에서도 허둥지둥 댄다면 큰 일 맡아 잘 하리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결론은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