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OTT 서비스 옥수수를 내세운 SK텔레콤 산하 SK브로드밴드가 지상파 3사가 운영하는 푹과 연합전선을 꾸렸다. 두 회사는 3일 한국방송회관에서 통합 OTT 서비스 협력에 대한 MOU를 체결하며 새로운 가능성 타진에 나선다는 각오다. 방송 3사가 공동 출자해 푹 서비스를 운영하는 콘텐츠연합플랫폼과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 사업 조직을 통합해 신설 법인을 출범시킬 계획이며 통합법인은 국내 미디어 콘텐츠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해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공세 속에서 우리 문화와 국내 미디어 ∙ 콘텐츠의 다양성을 지키는 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지상파에서 푹을 주도하다 SK로 자리를 옮긴 김혁 브로드밴드 세그먼트 트라이브(Segment Tribe)장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 푹과 옥수수가 만났다. 출처=SKT

SKT 미친듯이 때리던 지상파, SKT 손 잡다
SK텔레콤은 4대 신사업에 미디어를 점지했으며,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SK브로드밴드 사장을 겸직하며 ICT 플랫폼과 미디어의 결합을 꾀하고 있다. 핵심에 옥수수가 있다. 가상현실과 인공지능까지 동원되며 막강한 사용자 경험을 창출하고 있으며, 지난 8월 B tv와의 연결성을 강화하기도 했다.

윤석암 SK브로드밴드 미디어부문장은 “이제 유료방송 서비스도 기존의 똑같은 서비스, 똑같은 콘텐츠 제공에서 벗어나 고객별로 미디어 소비성향 데이터를 분석해 취향에 맞는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번 개편이 진정한 고객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의 결합은 넷플릭스를 의식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콘텐츠 시장에 막강한 투자를 단행하는 넷플릭스는 글로벌 플랫폼 인프라까지 동원해 미디어 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통신사와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협력 관계도 타진하면서, 코드컷팅이 통하지 않는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옥수수와 푹의 결합을 두고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미디어 시장의 단면"이라는 평가도 내리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케이블 CJ헬로비전(현 CJ헬로) 인수를 추진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는 불발됐으나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두고 통신사의 케이블TV 인수는 처음있는 일이라는 점과, 통신 1위와 케이블 1위의 합병을 규모의 경제적 측면에서 의미있는 일로 평가했다.

문제는 시장 독과점에서 불거졌다. SK텔레콤이 7만 장에 달하는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인가신청서를 제출한 직후 KT와 LG유플러스는 시장 독과점 심화를 이유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SK텔레콤은 미디어 역량 강화와 글로벌 진출을 강조했다. SK텔레콤 당시 이형희 MNO총괄은 “새롭게 출범하는 합병법인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로 도약해, 문화·콘텐츠 산업을 진흥하고, 투자 활성화 및 생태계 발전을 선도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고객의 편익을 증대하고, 국가 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디어 생태계와의 공생을 약속했으며, 합병법인은 향후 5년간 5조 원 규모 투자를 집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통해 약 7조5000억 원의 생산유발 및 4만8000여 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 SK텔레콤의 설명이었다.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의 주장에 대해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평했다. KT는“동일 서비스 간 인수합병은 대표적인 양적 경쟁"이라라면서 고용생산 유발효과에 대해서는 “SK텔레콤이 공언한 7조5000억 원의 생산유발 및 4만8000여 명의 고용유발 효과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LG유플러스도 “방송통신 업계 전체가 SK텔레콤의 시장독점을 우려하며 이번 인수합병을 불허해야 한다고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SK텔레콤이 제출한 7만여 장의 인가 신청서 내용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데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지상파의 반응이다.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 낮은 직접수신율로 사실상 플랫폼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태에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는 용인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나아가 거대 기업이 미디어 공룡으로 활동하면 시장의 경직성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에 나서는 한편, 전방위적인 'SK텔레콤 때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지상파의 '때리기'는 비단 미디어 영역에서만 벌어지지 않았다.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지상파 방송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SK텔레콤의 재벌 대기업 비판에 나섰다. SK텔레콤의 영역 확장을 두고는 "음반사와 제작사 싹쓸이"라는 표현으로 지적했고 SK그룹의 사내 유보금이 천문학적인 부분이라는 점도 부각시켰다.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로 글로벌 전략에 나서겠다는 전략을 공개한 것을 두고는 SK텔레콤의 해외 자회사 11곳이 적자라는 점을 지적, 현실성이 없다고 폄하했으며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상식이하에 가깝다는 날선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심지어 SK브로드밴드의 성인 콘텐츠 문제와 SK텔레콤의 통신 요금제도 문제삼았다.

불과 3년 전, 지상파 방송사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두고 그 자체는 물론 SK그룹 전반에 맹공을 퍼부었다는 뜻이다. 일부 보도는 현실성도 없고 개연성도 낮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SK 저격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

지상파 방송사의 SK 저격 보도가 아직도 업계에서 회자되는 가운데, 지난 3일 푹과 SK텔레콤의 만남을 두고 업계에서는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으며, 그와 비례해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ICT 미디어 역량이 상당히 강해졌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연출된다. 푹은 지난 2015년 통신사 플랫폼에서 나오며 제휴관계를 종료하는 등, 결별의 역사까지 가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의 행태로 볼 때,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의 반 넷플릭스 주장도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의 연대를 두고 국내 미디어 시장의 외산 업체 침탈을 우려하고 있으나, 만약 넷플릭스가 어떤 방식으로든 지상파 방송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경우 이는 순식간에 '국내 미디어 업계의 쾌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가 만났다. 출처=LG유플러스

미디어 시장의 전투는 계속된다
넷플릭스가 디즈니와 결별하고, 디즈니는 새로운 스트리밍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으며 AT&T 등 다수의 플랫폼 업체는 물론 애플과 아마존 등 글로벌 ICT 기업까지 미디어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텔레콤과 푹의 연결처럼, 국내에서도 합종연횡과 전략의 충돌은 더 격해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충돌과 합종연횡은 과거에도 있었다. 유료방송 전체를 보면 결합상품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케이블과 IPTV 업체의 갈등이 극에 달한 바 있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DCS 논란 당시에도 두 진영의 대결국면은 격렬했다.

최근에는 통합 방송법 논란에 이어 유료방송 합산규제 일몰과 관련된 논란에서도 국내 미디어 업계의 충돌이 벌어진 바 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 당시 시장 독과점을 지적했던 IPTV 1위 사업자 KT와 관련된 문제다. IPTV와 위성방송의 점유율 합이 33%를 넘지 않도록 하는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일몰되며 KT는 막대한 마케팅을 단행해 '점유율 괴물'로 거듭나고 있으며,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의 연합도 마찬가지다. 딜라이브와 협력했던 넷플릭스가 지난해 LG유플러스의 손을 잡으며 지상파 방송사를 위시한 미디어 경쟁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가능성 등, 미디어 시장에서 추가 인수합병이나 합종연횡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상파와 푹이 만난 상태에서 약간의 진통이 있겠지만 소위 일반적인 피아식별을 넘어서는 전략의 충돌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