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상파 3사가 운영하고 있는 OTT 서비스 푹과 SK텔레콤의 옥수수가 연합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3일 제기되고 있다.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를 통해 푹 유상증자에 참여, 지분을 확보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며 업계에서는 토종 OTT 콘텐츠 플랫폼의 연합 전선이 보여줄 행보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 SKB의 IPTV는 옥수수와 함께 발전하고 있다. 출처=SKB

SK텔레콤 미디어 전략 ‘가동’

SK텔레콤은 미디어를 4대 사업부 중 하나로 선정하는 한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SK브로드밴드 사장을 겸직하며 관련 동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CJ헬로비전 인수 실패 후 미디어 시장에 재도전하는 SK텔레콤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SK텔레콤과 푹의 결합은 국내 미디어 시장의 격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국내 미디어 시장은 전통적인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축되는 과도기로 평가된다. 지상파 방송사는 낮은 직접수신율 등 플랫폼 장악력을 사실상 잃어버렸고, 콘텐츠 제작 측면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가 무료 보편의 미디어 서비스라는 고정관념을 털어내고 푹이라는 OTT 플랫폼을 통해 N-스크린 개념까지 확장, 과금 플랫폼 비즈니스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료방송 업계에서는 IPTV가 득세하며 외연을 넓히고 있다. KT가 업계 1위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유료방송 합산규제까지 일몰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 연합해 새로운 진영을 꾸렸으며, SK브로드밴드는 SK텔레콤과의 시너지를 목표로 내 걸었다.

MPP 업계에서는 아직 케이블의 입김이 강하지만, MSO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케이블은 쇠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IPTV 3사가 케이블 MSO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가능성이다. 그 외 다른 IPTV가 케이블을 인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미디어 시장이 혼돈속으로 빠져든 가운데 넷플릭스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넷플릭스는 국내에 진출하며 딜라이브와 협력, 플랫폼 확장 가능성을 타진한 후 최근 LG유플러스와 콘텐츠 수급 계약을 맺으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단순 가입자 비중으로 보면 큰 영향력을 보이지 못하는 데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서 코드커팅 등의 후폭풍도 없었지만,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자들을 대거 확보하며 글로벌 플랫폼의 위용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대목에서 박정호 사장의 겸직으로 SK텔레콤과 더욱 가까워진 SK브로드밴드는 새로운 미디어 전략을 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평가다. SK텔레콤을 중심으로 그룹의 ICT 역량을 결집하는 한편 SK브로드밴드의 미디어 인프라를 통해 일종의 융합 시너지를 노리기 시작했다.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는 최강의 무기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8월 고객 중심으로 미디어 서비스 시스템과 홈화면을 개편하고 콘텐츠를 대폭 강화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윤석암 SK브로드밴드 미디어부문장은 “이제 유료방송 서비스도 기존의 똑같은 서비스, 똑같은 콘텐츠 제공에서 벗어나 고객별로 미디어 소비성향 데이터를 분석해 취향에 맞는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번 개편이 진정한 고객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PTV인 B tv를 넷플릭스와 같은 OTT처럼 홈화면을 맞춤형으로 바꿨다. 일종의 큐레이션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천편일률적 홈화면에 익숙한 국내 고객들에게는 생소한 변화다. 새로운 홈화면은 고객의 가입, 이용 행태를 반영해 고객의 시청이력을 데이터로 분석해 메뉴와 이벤트, 추천 콘텐츠 등 집집마다 취향에 맞춰 IPTV 최초로 각기 다른 홈화면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단순나열식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넷플릭스를 비롯한 차세대 미디어 플랫폼의 가능성을 일깨운다는 전략이다. SK브로드밴드는 궁극적으로 B tv의 460만 고객마다 모두 다른 460만개의 홈화면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SK브로드밴드 김혁 미디어지원본부장은 “프로그램의 메인 이미지 등 그림을 중심으로 화면이 구성되면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면서 “B tv는 어떤 화면을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개인의 취향에 맞게 데이터로 분석해 제공한다”고 말했다.

옥수수는 넷플릭스 등 외부 플랫폼에 대항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지만, 명확한 한계도 가지고 있다. 콘텐츠의 다양성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부 시너지만으로는 영역 확장에 어려움이 있다. 푹의 손을 잡은 이유다.

지상파도 아쉬울 것 없는 선택이다. 푹은 지상파 콘텐츠를 중심으로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구축됐으나 지금까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시장의 OTT 사업자와 연계하는 등 글로벌 전략을 일부 구사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상파 콘텐츠의 저력이 여전하다는 전제로, 푹은 SK텔레콤과 연결해 옥수수와 시너지를 노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평가다.

▲ 옥수수는 인공지능 역량과도 연결된다. 출처=SKB

넷플릭스 대항마? 아니면 단말마?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하며 가입자 확보는 물론, 콘텐츠 제작 시장을 정조준해 전체 미디어 시장을 흔드는 상황에서 옥수수와 푹의 결합은 충분한 대항마라는 평가가 나온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 시장을 흔들면서도 통신사와의 대립이 아닌 협력을 전제로 움직이며, 궁극적으로 가입자 확보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SK텔레콤과 푹의 연합은 넷플릭스에게 충분한 위협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시장에 집중하며 이들에게 글로벌 진출을 위한 플랫폼이 되어주는 것처럼, SK텔레콤과 푹의 만남도 비슷한 제안을 할 수 있는 발판이라는 점도 의미있다. 업계에서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넷플릭스는 물론 SK텔레콤과 푹을 통해서도 글로벌 시장을 노릴 수 있게 되면, 시장의 다양성이 더 확실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내부와 시너지의 역량이다. 옥수수는 약 9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는 IPTV 가입과 함께 발생되는 일종의 번들 효과에 기댄 측면이 크다. 여기에 미디어 시장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푹과 연합해도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있는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시장 공략도 궁극적으로 가입자 수 확보에 방점이 찍혔다는 점과, 최근 넷플릭스가 결제 인프라를 가진 통신사와의 협력을 원하는 한편 SK브로드밴드도 굳이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이 지점에서 내부와 시너지의 역량이 발휘되지 못한다면 이번 결합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