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기해년 새해가 밝아오던 1월 1일 새벽, 강풍이 몰아치는 동해 망상해변에서 해돋이 행사를 지켜보며 문득 여기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취재를 시작하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새해 소망을 듣던 중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경기도에서 자영업을 한다던 그는 대뜸, 지난해가 너무 지옥 같아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년에도 장사를 하려다 심기일전을 제안한 가족들과 함께 해돋이 행사를 보러 왔다던 그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올해는 큰 꿈 없다. 그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서울로 올라온 후, 문재인 대통령의 2일 신년사를 들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수출 6000억달러를 달성하고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다”면서 “매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성공”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금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선도하는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를 키우는 경제가 아니라 경제성장의 혜택을 온 국민이 함께 누리는 경제라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러한 일은) 경제 정책의 기조와 큰 틀을 바꾸는 일이며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가보지 못한 길이어서 불안할 수 있다”면서 “이 길은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신년행사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연 장면은 올해 경제성장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등 주요 경제정책에 대한 믿음을 재차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자체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든든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문제는 속도다. 해돋이 행사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는, 아니 전국의 모든 자영업자들과 국민들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국가경제에 깊은 우려를 보이고 있으며 이미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갈 길은 멀지만 지금 가려는 길을 포기할 수 없다’는 선언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국가경제에 대한 큰 틀은 강단 있게 추진하고, 정교한 계산을 세워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맞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지향하며 큰 꿈을 키우는 것도 옳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신년사 내용과는 달리 현재는 어떤가. 많은 국민들은 희대의 국정농단 후 세워진 새로운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최소한 경제에 있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 정책에 실망하고 있다.

국가경제의 문제는 구조적인,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된 문제가 집약되어 터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이유로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국가경제의 모든 책임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묻는 것은 가혹하다. 다만 ICT 기술로 혁신을 담아내겠다고 하면서 거대 이익집단에 무릎을 꿇고, 온갖 폭로전이 터져나오는 작금의 상황은 심히 걱정스럽다.

이제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어떤 정책이든 결정했다면 늦어도 단기간에 최소한의 성과가 나와야 한다. 굳이 대통령 지지율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최소한 변화의 징조라도 나와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그럴 준비가 되었나. 그럴 준비가 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