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LG그룹이 2일 서울 마곡 사이언스 파크에서 구광모 회장을 비롯 주요 임직원이 모인 가운데 시무식을 열었다. 세 개의 키워드가 눈길을 끈다. 구 회장은 신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한편 고객 가치 증진을 여러차례 강조하며 올해 사업 방향의 윤곽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특유의 소탈함도 여운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 LG의 기해년 시무식이 열리고 있다. 출처=LG

고객만 30회 반복...구 회장 "감동을 주자"
구 회장은 지난해 6월 LG그룹의 회장으로 오르며 재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오랫동안 실무경험을 쌓았으며 평소 소탈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구성원들의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동안 전면에 나서지 않아 경영감각에는 이견이 갈렸다.

구 회장은 LG 4.0 시대를 열며 취임 초기 재무통인 권영수 당시 LG유플러스 부회장을 그룹으로 불러들였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저돌적인 업무 스타일로 유명한 권 부회장을 통해 어려운 경영환경을 정면돌파하는 한편, LG의 핵심 계열사를 거친 권 부회장의 능력을 십분 활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취임 직후 로보스타와 ZKW 지분 인수 등 연구개발, 인수합병 전반을 지휘하며 눈부시게 활약했으나 지난해 7월 중순부터는 다소 정중동의 행보를 보였다. 오너가 일원이 이사장을 맡아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LG복지재단, LG상록재단 등 LG 재단의 이사장에 비오너 일가인 이문호 전 연암대학교 총장을 영입하는 등 신선한 파격을 보여줬으나 그 뿐이었다. 인수합병도 구 회장이 직접 관여했다고 보기는 시기적으로 어려웠다는 말이 나오며 재계에서는 구 회장의 추후 행보에 촉각을 세웠다.

구 회장이 당시 정중동 행보를 보인 이유로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논란이 원인이라는 말이 나온 바 있다. LG그룹은 구 회장의 행보를 두고 "업무 파악을 위한 예고된 행보"라는 입장을 보였으나 재계에서는 다양한 소문이 나왔다. 그러나 구 회장은 지난해 9월 마곡 사이언스 파크로 향하며 대외행보를 강화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길에 오르며 활동반경을 넓혔다. 구 회장은 지난해 11월 고 구본무 회장의 (주)LG 지분 주식 11.3% 중 8.8%를 상속받아 지분율 15%을 확보, (주)LG의 최대주주가 됐다.

올해는 구 회장이 열어갈 LG 4.0 시대의 진정한 원년이다. 구 회장은 "1947년 창업한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LG는 매출 16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면서 "지난해 6월 LG 대표로 선임된 후, 지금껏 LG가 쌓아온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동시에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변화할 부분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답은 고객에 있다는 것이 구 회장의 생각이다. 구 회장은 "성과의 기반이 LG가 추구해왔던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두가 소비자라는 호칭에 익숙하던 시기에, 가장 먼저 고객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중요한 회의 석상에는 항상 고객의 자리를 두었고, 결재 서류에도 사장보다 높은 자리에 고객 결재란을 마련했다"면서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라고 자평했다.

새로운 시대에도 고객이 필요하다. 구 회장은 "(현재) 우리에게는 고객의 자리와 고객 결재란을 두었던 뜨거운 열정이 여전히 가슴 속에 있을까? 혹시 고객을 강조하면서도 마음과 행동은 고객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닐까?"라면서 "지금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의 기본 정신을 다시 깨우고, 더욱 발전시킬 때"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LG의 고객 가치는 고객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감동을 주는 것이라며 "고객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하는 LG만의 고객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고객으로부터의 배움을 더 나은 가치로 만들어, 고객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LG의 고객 가치는 남보다 앞서 주는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구 회장은 "아무리 좋은 제품과 서비스라도,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면 평범한 것이 된다"면서 "세상의 변화에 늘 깨어,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 과감히 도전하고, 익숙한 관성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혁신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자"고 말했다.

구 회장은 마지막으로 "LG의 고객 가치는 한두 차례가 아닌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고객을 위한 혁신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존중하고,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역동적인 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 구 회장이 지난해 9월 마곡 사이언스 파크를 방문하고 있다. 출처=LG

구 회장 신년 스타일 키워드 세 가지
올해 LG의 시무식은 기술, 소탈, 그리고 고객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된다.

LG의 시무식이 31년만에 여의도 트윈타워가 아니라 마곡 사이언스 파크에서 진행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LG 사이언스 파크는 LG의 연구개발과 신기술의 결정체다. 총 4조원이 투자됐으며 면적은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5만 3000평)부지에 연면적 111만㎡(약 33만 7000평)규모의 20개 연구동이 들어섰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하우시스,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LG CNS등 8개 계열사 연구인력 1만 7000명이 한데 모여 있다. 2020년까지는 연구인력은 2만 2000명까지 늘어난다. 주요 연구항목은 전자, 화학분야를 비롯해 OLED, 자동차부품, 에너지, 로봇, 자율주행, 인공지능, 5G, 차세대 소재·부품, 물·공기·바이오 등이다.

LG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곳이 바로 마곡 사이언스 파크다. 구 회장은 지난해 9월 권영수 ㈜LG 부회장을 비롯해 안승권 LG사이언스파크 사장, 박일평 LG전자 사장, 유진녕 LG화학 사장, 강인병 LG디스플레이 부사장 등 계열사 연구개발 책임 경영진과 LG 차원의 CVC(벤처 투자회사)인 LG 테크놀로지 벤처스의 김동수 대표와 함께 마곡 사이언스 파크를 찾아 LG전자의 ‘레이저 헤드램프’ 등 전장부품과 LG디스플레이의 ‘투명 플렉시블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품들을 살핀 바 있다.

▲ LG 마곡 사이언스 파크 전경이 보인다. 출처=LG

구 회장은 당시 “사이언스파크는 LG의 미래를 책임질 연구개발 메카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계속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LG의 미래가 담긴 마곡 사이언스 파크에서 시무식이 열렸다는 것은, 구 회장을 중심으로 LG 전체가 마곡 사이언스 파크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기술 중심 경영 로드맵이다.

시무식에서 LG전자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클로이와 사내방송 아나운서가 무대에서 진행을 함께한 대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클로이는 약 1년 전 미국에서 열린 CES 2018 프레스 현장에서 갑자기 먹통이 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으나, 생활가전 기술을 로봇과 연결하려는 LG의 야심작이다. 신기술에 집중하려는 LG의 행보를 잘 보여준다.

소탈함도 눈길을 끈다. 이번 시무식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소탈하게 대하는 구 회장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새해 모임 시작 전의 상황을 보면, 기존에는 행사장인 트윈타워 강당 앞에서 참석자 모두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이었고 회장단과 사장단이 임원진과 순차적으로 악수하며 새해 인사를 나누던 모습에서 이번에는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의 임직원들이 서로 자유롭게 새해인사를 나누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또 대형 LED 메시지 월을 통해 보여지는 동료들의 새해 희망과 의지를 담은 메시지를 보고, 포토월 앞에서는 기념 사진도 촬영했다.

LG는 "격식을 가능한 배제하고 진지하지만 활기찬 분위기로 진행됐다. 이는 소탈하고 실용주의적인 구 대표의 경영스타일과 맥을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구 회장은 스스로를 회장으로 부르지 않고, 핵심 경영인들을 만나면 깎듯한 예의를 보이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객 강조는 구 회장의 신년사에서 잘 드러난다. 무려 30회나 언급하며 LG의 올해 경영 방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