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그 실체는 아직도 논쟁 중이지만, 핀테크와 블록체인을 비롯해 카풀 등 다양한 신기술들은 현재 국내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핀테크와 블록체인, 카풀이 엄청난 혁신의 IT 기술이라고 말하기에는 증명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최소한 이들이 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느냐에 대한 고민은 따로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편함이 진보를 만든다...그런데 우리는?

영화 <킹스맨>에서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ICT 업계에서는 이 대목에서 ‘불편함이 진보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이는 아주 오래된 논쟁인 기술이 먼저냐, 시대가 먼저냐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기술의 발전이 먼저 일어나 시대를 이끄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가 기술의 발전을 끌어오는 것일까.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전자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불편함을 느낀 혁신가, 혹은 무언가가 기술로 시대의 발전을 끌어낸다’입니다.

핀테크 보겠습니다. 토스의 비바리퍼블리카, 데일리금융그룹 등 훌륭한 기업이 있고 간편결제 순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내재화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아니, 내재화되겠지만 속도가 좀 더디죠. 그런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를 보면 핀테크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많이 알려졌듯이, 두 사례의 차이는 불편함에서 시작됐습니다. 신용카드. 성인 되면 신용카드 먼저 만드는 나라 아닙니까. 그러니 굳이 핀테크로 이어갈 동력이 약해요. 신용카드면 다 되니까! 반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는 신용카드 보급률도 낮고 위조지폐 문제도 심각해요. 이러한 불편함과 상황의 특수성에서 핀테크의 속도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탈 중앙화, 세밀한 기록, 여기에 토큰 이코노미…. 이런 건 중앙 집중형 플랫폼이 잘 구축된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는 당장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기득권들이 보기에 별 문제가 없는데 도대체 왜?

마지막으로 카풀. 우리는 택시업계의 질 낮은 서비스 이야기를 하면서 카카오 카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데, 정말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택시비. 경제 수준에 맞춰서 다른 나라와 생각하면 국내 택시비는 엄청나게 저렴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중앙집중형 대중교통 시스템도 잘 구비됐습니다. 택시 타고 다니면서 지하철과 버스 연동하면 어디든 다녀요. 택시 서비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분명히 있지만 그 불편함은 절대 전혀 새로운 파격이 자연스럽게 대안으로 등장할 정도는 아닙니다.

▲ 카카오 카풀에 반대하는 택시기사가 물병을 던지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그들은 강하다

정리하자면 핀테크, 블록체인, 카풀 등 대부분의 혁신 ICT 기술이 국내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기존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껴도 크게 느끼지 못하니까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기존 시스템에 불만이 나오고 새로운 기술의 강점이 뚜렷해도, 그 크기가 작으면 사람은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즉 기존 체제가 잘 잡혀 있어서 핀테크나 블록체인, 카풀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가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정착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핀테크를 보면 신용카드는 굳이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현재 신용카드 도입률은 정상이 아닙니다. 2014년 발급수가 살짝 줄었으나 2015년부터 다시 올라 정점을 향해 갑니다. 연 1억장 발급이 평균입니다. 성인 중 신용카드 없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수준입니다. 즉 신용카드 대한민국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셈이고, 우리는 그림자에 대해 잘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를 불편함, 혹은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즉 신용카드 대한민국이 너무 편하고 좋은 나머지 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어도 체감을 못합니다. 진짜 부작용, 불편함이 보여도 핀테크가 이를 해결한다고 외쳐도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신용카드라는 기존 체제가 너무 강력하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고, 그 대안을 파고들 여지가 없어지는 대목이 국내 핀테크의 진짜 어려움입니다. 신용카드 시스템이 잘 정착되어서가 아니라, 신용카드 시스템이 너무 강력해서 그림자가 깊어지는데도 그 대안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블록체인도 비슷합니다. 대한민국 중앙집중형 플랫폼 강하지만 문제가 많습니다.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좋은 것이 아니라 강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좋은 것이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그림자도 있고, 우리는 그 그림자를 덜어낼 분산형 플랫폼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 2018년 10월 방한했던 케르스티 칼률라이드(Kersti Kalijulaid) 에스토니아 대통령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저력은 정부가 ICT 기술의 활용에 적극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부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이용 가능하고, 모든 시민과 주민들에게 디지털 아이디가 발행됩니다. 에스토니아는 최초로 전자영주권을 발행한 곳으로도 명성이 높습니다. ICT 중앙집중형이 잘 구비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블록체인에 대한 접근법입니다.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글로벌 블록체인 정책 컨퍼런스 GBPC 2018(Global Blockchain Policy Conference)에서 암호화폐를 두고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꼭 사용될 필요는 없다”는 회의적인 발언을 하면서도 분산형 플랫폼의 가치도 강조했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간격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고, 중앙집중형 플랫폼을 가졌음에도 분산권력의 가능성에 집중해 최선의 가치를 찾는 뉘앙스입니다.

‘우리는 에스토니아처럼 하지 못할까?’가 모든 질문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ICT 코리아를 외치던 김대중 정부 이후로 전자정부와 같은 강력한 중앙 플랫폼 전략을 끌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큽니다. 무엇보다 기득권 입장에서는 아주 간편하지만 생태계 하단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일종의 구속입니다. 그런데 너무 강력하고 익숙하다 보니 중앙집중형 플랫폼에서 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분산형이 최선의 가치는 아니지만, 우리는 생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겁니다. 에스토니아는, 지금 그걸 하고 있습니다.

카풀. 전체 교통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대중교통 시스템 강합니다. 강해서 우리는 그 강함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도시 선정의 주요 고려사항이 버스와 지하철 노선일 정도로, 땅값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대중교통의 강력한 중앙 플랫폼을 무작정 따라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카풀을 위시한 모빌리티가 발전한다면? 굳이 신도시를 수도권 중심으로 구축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위에서 정해준 선대로 도시를 계획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중교통 노선, 택시 접근에 따라 신도시를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생깁니다. 그러나 기존 체제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카풀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강하기 때문에 반동이 생기고, 강하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의 문제점 일부를 고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 암호화폐 블록체인 생태계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출처=플리커

ICT 기술도 갈 길 멀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핀테크나 블록체인, 카풀이 무지막지한 능력을 보여준다면 상황은 또 달라집니다. 모두에게 확신을 심어줄 정도로 믿음직한 존재감을 보여준다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그렇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논쟁이 시작됩니다.

다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핀테크나 블록체인, 카풀 자체는 혁신이 아니더라도 이들을 통해 구축되는 생태계는 또 다릅니다. 즉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로 펼쳐질 전혀 새로운 미래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결론은, ICT 업계가 이런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 기술이 미래야’가 아니라 ‘우리 기술로 새롭게 바뀔 세상이 바로 미래야’로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