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존 시대에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는 여전히 해마다 매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출처= The Investe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아마존의 등장으로 소매 시장이 격변하며 기존의 오프라인 소매점들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해마다 매출 신기록을 경신하며 새로운 매장을 수십 개씩 여는 소매 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고객들은 주말마다 마치 교회에 가듯이 이곳을 찾는다. 창고형 할인 매장 코스트코 얘기다. 코스트코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코스트코의 성공에는 코스트코를 창업하고 29년간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짐 시네갈이 있다. 마트의 하역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전 세계 유통시장을 석권한 짐 시네갈의 경영 철학, 그의 성공 이야기를 CNN이 최근 보도했다.

고아원 출신의 마트 알바생

1936년 태어난 짐 시네갈은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홀로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그를 고아원에 맡겼다가 11살이 되던 해에 다시 데려왔다.

18세에 샌디에이고 시립대에 진학한 시네갈은 1954년 미국 최초의 창고형 마트인 ‘페드 마트(Fed Mart)’에서 매트리스 하역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유통과 소매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가치를 창출하고 직원과 고객을 섬기며 납품 회사를 존중하라.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주주에게 보답하라’는 페드 마트의 창업자 ‘솔 프라이스’의 철학에 매료된 시네갈은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페드 마트의 정식 직원으로 취직하게 되고, 성실하게 일한 끝에 수석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1976년, 페드 마트의 사업주가 바뀌면서 시네갈은 솔 프라이스를 따라 회사를 떠나 프라이스와 함께 샌디에이고에서 최초의 회원제 마트인 프라이스클럽을 창업했다. 시네갈은 프라이스클럽의 부사장을 맡았다.

7년 후인 1983년, 그는 제프리 브로트먼과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애틀 인근 커클랜드에 코스트코 1호점을 열었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코스트코는 설립 6년 만에 매출이 30억달러에 이를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1993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프라이스클럽까지 인수하면서 코스트코는 미국 유통업계의 강자로 부상했다.

▲ 코스트코를 창업하고 29년간 최고 경영자(CEO)를 지낸 짐 시네갈.   출처= Worldkings

남들과 반대로 - “남에게는 최대 이익을, 자신에게는 최소 이익을”

시네갈은 처음부터 ‘경쟁자와 상반된 전략으로 승부한다’는 철학을 고수했다. 일반적인 소매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윤을 늘릴 수 있을지를 연구했지만, 시네갈은 어떻게 하면 물건을 더 싸게 팔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질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팔다 보면 이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시네갈은 “보통 소매업자들은 한 대에 49달러인 디지털 레코더를 52달러에 팔 방법을 고민하지만, 우리는 같은 물건을 그들보다 싼 40달러에 팔면서도 어떻게 하면 38달러로 더 낮출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원칙을 세운 시네갈은 코스트코의 매출 이익률을 15%에 고정하고, 영업 이익률은 2%로 유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는 다른 대형마트와는 다른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일반적으로 대형할인점은 25%에서 50%, 백화점은 50% 이상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 최대한 많은 종류의 상품을 구비하려는 일반 소매업체들의 전략과는 달리 ‘소품종 대량 판매’ 전략을 추구했다. 월마트에서 파는 상품은 10만가지가 넘지만 코스트코는 4000여개에 불과하다. 대신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질 좋은 상품만 취급한다. 상품 종류가 적은 만큼 관리비용이 절감돼 판매가격도 낮출 수 있다.

코스트코가 일반 업체와 다른 또 하나의 전략은 관대한 환불 제도다. 상품에 문제가 없더라도 고객이 만족하지 못한다면 일정 기간 안에 언제든 100% 환불해 준다. 심지어 먹다 남은 식료품을 가져가도 환불된다. 환불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고객 만족도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 짐 시네갈이 직원들과 똑같이 패용하는 명찰에는 직함 대신 ‘짐(JIM)’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출처= Brian Smale

스스로를 낮추는 리더십

2010년에 시네갈의 연봉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공개된 그의 연봉은 35만달러(3억9000만원). 매출이 코스트코의 절반에 불과한 코카콜라 CEO의 당시 연봉이 1447만달러(160억원)였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금액이었다. 시네갈은 CEO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보다 100배, 200배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그 뒤에도 연봉을 높이지 않았다.

시네갈은 CEO로 재직하던 당시 스스로를 낮추고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지내기로 유명했다. 아침이면 매장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인사하고 아침 식사로 푸드코트에서 판매하는 1.5달러짜리 핫도그를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패용하는 명찰에는 직함 대신 ‘짐(JIM)’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한평생 쓴 그의 명함에도 ‘CEO’가 아니라 ‘1983년부터 근무’(Since 1983)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는 개인 집무실 없이 열린 공간에서 일하며, 전화가 걸려오면 ‘시네갈입니다’라며 직접 받는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고 고객들이 직접 전화를 걸 수 있게 한다. 매주 평균 50여통씩 고객들과 통화하고, 매일 평균 6번 이상 매장을 직접 찾아 고객과 얼굴을 마주한다.

▲ 시네갈의 자리를 물려받은 현 크레이그 옐리네크 CEO도 창고 관리인부터 시작해 28년간 코스트코에서 근무했다.   출처= Google Site

직원과 고객을 만족시키다

코스트코는 ‘직원에 대한 남다른 처우’로도 유명하다. 코스트코 매장 직원의 평균 시급은 22달러다. 미국 유통업계 평균(11달러)의 두 배나 된다. 의료보험과 복지혜택도 월등히 좋다. 직원들은 정년이 없고, 건강보험료는 회사가 내준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직원들에게 가는 혜택을 줄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2009년 금융위기가 닥쳐 고용시장이 요동쳤을 때도 3년에 걸쳐 전 직원의 급여를 인상했다.

많은 기업이 외부 인사를 경영진으로 영입하는 데 비해 철저하게 내부 출신만 승진시키는 순혈주의도 코스트코가 임직원의 충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시네갈의 자리를 물려받은 현 크레이그 옐리네크 CEO도 창고 관리인에서부터 시작해 28년간 코스트코에서 근무했다.

시네갈은 2012년 76세에 CEO에서 물러났다. 이후 이사회 구성원으로서만 회사 일에 관여하고 있다. 그가 평생 강조한 코스트코의 3대 경영원칙인 ‘법을 준수하라, 회원들에게 최선을 다하라, 직원들에게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사내 윤리강령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의 경영철학은 코스트코의 임직원에게 훌륭한 행동 지침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