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그래서 그 사촌 따라서 옆 땅을 샀다. 그런데, 사촌 땅 값은 올랐는데, 내 땅 값은 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떨어졌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분명 ‘된다고’ 했는데, 나만 빼고 다 되는 것 같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있다. 친구, 나와 가까운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유명하거나 유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동안 어떤 활동을 보여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함께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대부분 함께 하지 않고, 따라간다.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 하기에 바쁘다. 태어나서는 부모를, 학교에 가서는 친구를, 이제 직장에 가서는 나보다 먼저 들어온 선배를 따라 한다. 그렇게 따라가다가 길을 잃는다. 나만의 길을 가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직은 이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일종의 ‘말을 잘 듣는 사람’ 말이다. 이들은 조직이 제시한 길 또는 매뉴얼에 따라서 일을 한다. 그리고 수년 동안 그 일을 하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저성장과 불황 등의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서, 조직은 철저하게 이런 이들을 배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따라서 하기에도 바쁜 이들이, 점차 정답으로부터 멀어지는, 또는 보통의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시대에서는 조직에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조직 안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는 그래서 누군가를 무작정 따라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당장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수년 또는 수십년에 걸쳐서 같은 일 또는 비즈니스를 했던 것이 앞으로도 계속 그와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누가 단정지을 수 있냐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조직에서는 멘토 또는 사수 부사수의 관계가 희미해졌다. 일은 분명 사람을 통해 경험하고, 그 사람을 통해 배우는 길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인데, 나보다 선배가 걸었던 길이 앞으로도 계속 후배들에게 답이 될 것이라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그들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이렇다 할 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그 위기는 오로지 조직이 겪는다. 개인은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기에 바쁘다.

최근 들어 그와 관련된 상담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상사의 무능력함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몰상식 또는 비합리적인 과정에 국한된 고치지 못하는 일종의 업무상 패턴 또는 습관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일 자체를 그르치거나 망쳐 결과적으로 내 목숨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나마 직장 상사면 다행이다. 가끔은 작은 기업 대표의 몰상식, 비합리성, 무능력함까지 겹쳐서 회사를 도저히 다니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맙소사. 그들은 그들이 다니는 직장의 대표 때문에 자기 밥줄을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는 비단 직장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 필자가 이사한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폐점 준비 중이다. 거기서 이미 50~200m 이내에 3개 브랜드의 편의점과 SSM이 있다. 참고로 그 SSM과 편의점과의 거리는 약 100m 이내다. 그 동네에 집을 보러 가서 그 생각을 했다. 여기에 편의점을 낸 이는 괜찮을까?

얼마나 그곳에서 영업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원가 판매로 마지막 정리 중인 사장의 얼굴을 보아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아마도 모두들 편의점으로 돈을 벌었고, 계속 벌고 있으며, 편의점 개설에 도움을 줬던 본사 수퍼바이저는 충분한 매출과 수익을 보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말이다.

직장인, 사업자, 예외는 없다. 모두들 누군가를 무작정 따라 하다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 결과로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과연 괜찮을까? 지금과 같이 살아도 괜찮을까 말이다.

그렇다면 원론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누군가를 따라 하지 않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나요?” 적어도 일 또는 특정 비즈니스, 여러 직장인이 하는 직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형태로 발전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미 많은 일들이 개발되어 충분히 발전되어 있는 상태이고, 그만큼 새로운 것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다.

오죽하면 지금의 세상 속 비즈니스를, 고객이 굳이 필요하지도 않을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말을 물가에 가까이 가게 만들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기 이전에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는 첫째로 지금 누군가를 따라 하려고 하면, 그 따라 하고 싶은 것이 ‘과정’인지, 그(녀)가 이뤄낸 ‘결과’인지를 구분해보는 것이다.

이미 해당 단계 이전에 그 일이 무엇(What)인지에 대한 충분한 탐색을 마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 왜(Why)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명분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때 대부분 한쪽에 치우친 생각을 한다. 막연하게 나도 저렇게 하면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문제는 과정과 결과 모두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으면서 나타난다. 나보다 먼저 그 결과를 이룬 이가 어떤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 속에 크고 작은 시행착오는 무엇이었고, 그 시행착오는 언제 어느 때 어떤 판단과 결정에 의해 나타난 변수였는지 가늠해 봐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엇보다 해당 분야에 대해 내가 얼마나 경험을 갖고 있으며, 객관적으로 검증된 결정을 내리고 추진할 만한 깜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당연히 생소한 분야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그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필요하다. 직장이든 창업이든 특정 업계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는 것인데, 관련된 경험이나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어떻게 수년에서 수십년 일을 했던 이들과 유사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냐는 말이다.

최근 방영 중인 <골목식당>을 보면 그들의 안일한 판단에 혀를 차곤 한다. 창업을 했고, 그 준비를 어떻게 했기에 자신이 만들어서 판매하는 음식의 레시피조차 손에 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말 그대로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데, 아무리 좋은 장비와 인프라를 갖춘다고 해도 당연히 같은 효과를 낼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성과를 기대한다면, 그거야말로 도둑놈 심보다. 무언가 쉽게 취해 이를 가지고 더욱 크게 키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무작정 따라 하면서, 그와 같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바보 같은 일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Why)을 갖췄는가 따져보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지만 각자가 다른 효과 및 성과를 가지는 것은 그 출발선상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가는 것에도 일부 영향을 받는다.

그 일이 단기적이면 큰 영향이 없을 수 있지만, 만약 지속해야 하거나 망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야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이런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많은 기업가들이 창업을 하거나 직장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여기서 내가 바라는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를 명분으로부터 가져와야 지속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비즈니스적으로 얼마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다. 기왕이면 남들이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앞으로도 참여하고 생산과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을 만한 영역이어야만 의미가 있다. 본래 비즈니스는 단독으로 성장이 불가하고, 적절한 파트너와 시장 규모 및 성장성이 바탕이 되어야 나도 너도 우리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 비즈니스와 필자가 마케팅을 공부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이다. 어떻게 사업을 한다는 이가 자신의 사업의 방향 중에 가장 요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고객을 정의’하는 행위를 간과하면서 잘되길 바란단 말인가.

기업의 목표는 고객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매출에만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직원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냐 말이다. 이런 조직에서 누가 대표를 포함 선배들을 믿고 자신의 인생을 빙자해 투자할 수 있냐는 말이다.

어쩌면 회사(공적 조직) 대신에 여러 부류의 커뮤니티(비공식 조직)가 성장한 이유도, 그 비공식 조직을 활용해 공식 조직으로 격상시켜 비즈니스를 하려는 움직임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떠안을 불확실성, 이를 함께 짊어질 수 있을 만한 ‘동료’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비즈니스는 그만큼 누군가를 책임지고, 그 책임을 나누고, 함께 더불어 일을 하는 과정을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작업이다. 물론 일을 배우기 위해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베껴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그 형태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언정 뜯어보면 모두들 각자 다른 나만의 무언가를 추진하고 있다. 단지, 확실하게 무엇이 다르다고 말하지 못하거나, 그럴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해서 일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재점검해보자. 내가 잘하고 있는가의 판단을 나는 누군가를 따라 하고 있고, 무엇을 다르게 하고 있는가를 가지고 판단해보자. 아마도 다르게 하고 있는 것 중에 누군가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면 분명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그 부분을 누구도 따라 할 수 없게 갈고 닦는 것이다.

그로부터 진짜 차별화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