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 반독점 규제 당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하는 불공정 거래 혐의 조사를 끝낸 가운데, 과징금 부과 여부를 두고 저울질을 계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빅3 회사가 중국 반도체 업체를 대상으로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을 중단할 경우 중국 반독점 규제 당국이 과징금을 면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중국의 외국 반도체 기업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끼워팔기 지적...실익 추구하는 중국
27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반독점 당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불공정 거래 혐의 조사를 마무리하고 D램 가격담합이 아닌 낸드플래시 끼워팔기를 정조준하고 있다. 가격담합 논란으로는 빅3 회사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어렵고, 중국도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중국 시장에서 가격담합을 통해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지적은 꽤 오래전부터 제기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현지 삼성전자 관계자를 불러 반도체 독과점 이슈로 면담을 하며 논란이 증폭됐다. 시장 독과점을 무기로 주요 업체들이 소위 '짬짜미'를 했다는 의혹이다.

중국 언론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가격 담합설을 흘리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중국 관영언론인 신화통신은 12월21일 "D램 가격이 199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IT 매체 전자공정세계도 비슷한 논리를 들어 가격담합 의혹을 제기했다. 글로벌 D램 가격이 치솟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독과점에 따른 가격담합이 있다는 주장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당시 벌어진 의혹이라 업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나 당시 가격담합 논란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수요를 책임지는 이들은 모바일용 D램 가격의 상승을 두고 '너무 올랐다'는 주장에 이어 '이렇게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담합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으나 D램은 시시각각 공급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닌, 월이나 분기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물량이 한정적인데 공급을 원하는 곳은 대량물량을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사정에 밝은 전문 IT 칼럼니스트는 "당시 D램은 타이트한 수급으로 공급이 부족해 난리였다"면서 "D램을 필요로 하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최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단말기를 출하했는지 확인하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 등의 가격은 하락일로를 멈추지 않고 있다. 만약 누군가 인위적으로 가격담합을 시도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동북아ICT연구소 박일용 부소장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누군가 가격을 담합한다고 가격이 조정되는 수준을 넘었다"면서 "수요보다는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는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규제 당국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규제 당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가격담합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낸드플래시 끼워팔기를 단행했다는 쪽으로 의혹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중국 당국은 빅3 기업에 대한 불공정 혐의 조사를 시작했을 때 D램 가격담합에 방점을 찍었으나, 지금은 낸드플래시 끼워팔기에 천착하고 있다. D램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업계의 시선이 낸드플래시와 특허 소송 관련 이슈로 몰렸기 때문이다.

중국 규제 당국이 빅3 기업의 불공정 행위 조사를 마무리하며, 과징금을 면제하는 조건으로 빅3 기업의 중국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특허 침해 소송을 중단하라고 압박한 행간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이 지식재산권 보호로 연결되는 상태에서 빅3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역풍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목적은 중국 반도체 굴기...'정중동' 대응
중국이 빅3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문제삼으며 과징금과 소송을 '거래'하려는 장면은, 결국 중국 반도체 굴기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의 중국 반도체 생태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팹 생산 능력은 글로벌 기준 16% 수준이다. 2020년이면 2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생산공장을 배치한 외국기업의 물량을 모두 더한 수치지만, 중국 반도체 굴기의 위협을 고려하면 심상치않다는 평가다. 중국은 현재 베이징과 시안 등 다양한 지역에서 합작법인을 불사하면서 반도체 팹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현실이다.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8월7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반도체 컨퍼런스를 통해 내년 32단 3D 낸드플래시 양산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국내 업체들의 기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YMTC가 내년 여세를 몰아 64단 양산까지 나서면 치킨게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며 자급률을 끌어 올린다는 복안이다. 국가IC산업 투자기금을 설립한 대목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정부 차원의 국부펀드며, 초기 자금규모만 1200억위안, 지방정부 기금 및 사모기금이 600억위안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중부지역 굴기를 위한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비중 있게 삽입된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는 범 중화권 기업인 대만 폭스콘도 샤프와 함께 중국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이 자국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는 상황에서 지식재산권 문제는 세밀한 핸들링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자국에 진출한 기업을 대상으로 강제로 기술을 이전받는 등 약탈적 전략을 구사했으나, 미중 무역전쟁의 후폭풍이 몰아치며 더는 비슷한 전략을 취하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24일 NHK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외국기업에 기술이전을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의 제정에 착수했다.

약탈적 지식재산권 탈취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중국은 자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빌미로 외국 기업과 정당한 거래에 나설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 대목에서 불공정 거래를 빌미로 외국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한 후, 이를 면제하는 조건으로 자국 기업에 대한 특허 소송을 중단시켜 '일단 지키고 보자'는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대책을 고민하고 있으나 대외적으로는 말을 아끼는 상황이다. 다만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이 버릴 수 없는 카드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수입액은 886억1700만달러며 전년과 비교해 38.8% 증가했다. 반도체 자급율을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외부 의존도가 계속 높아지는 분위기다. 한국 다음으로는 대만이 197억300만달러, 일본이 57억5800만달러를 기록했다.

중국도 한국 반도체 기업이 없으면 당장의 기술굴기는 커녕 시장 안정도 이룰 수 없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적당한 타협의 틀이 마련될 것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중국 반독점 당국은 퀄컴의 NXP 인수를 끝까지 승인하지 않았으나, 최근 G20 회의를 기점으로 두 수퍼파워 사이에 데땅트의 무드가 무르익자 일각에서는 전향적인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비록 여러 계약관계로 인해 현실이 되지는 못했지만 중국 당국도 유연하게 대응할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중국 반도체 시장에 투자를 계속하는 한편, 시스템 반도체 중심의 전략도 일종의 플랜B로 삼고 있다. 엑시노스로 대표되는 모바일 AP와 파운드리 영역에서 동력을 키우는 중이다. 결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중국 반격에 맞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외 영역에서 전반적인 반도체 체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