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의 사상 최대 실적에 제동이 걸렸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업황 악화가 예고되며 "축제는 끝났다"는 자조섞인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플랜B가 탄탄하기 때문에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섞인 반론도 나오고 있다.

"축제는 끝났다"
현재 삼성전자는 주력인 반도체 사업의 경우 사상 최대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는 올해 3분기 글로벌 D램 시장의 매출이 277억5000만달러를 기록, 전년 동기 197억8900만달러보다 40.2% 증가했으며 삼성전자는 43.4%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161억4100만달러의 점유율을 기록해 두 회사의 점유율 합은 72%를 넘겼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존재감은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문제는 확장성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지난 11월 27일 반도체 시장 전망을 통해 반도체 시장이 올해 4780억달러에서 내년에 4901억달러로 2.6%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는 15.9%가 성장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비슷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17일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내년 기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장비 지출액이 총 557억8000만달러를 기록, 올해와 비교해 약 7.8% 줄어들 것으로 봤다.SEMI는 불과 3개월 전 내년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장비 지출액이 올해와 비교해 7.5%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의 활력을 상징하는 장비 지출액 전망이 단 3개월 만에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돌변한 셈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가격 하락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10월 기준 D램 고정거래 가격은 7.31달러로 주저앉았고 낸드플래시도 3.25달러에 머물렀다. 삼성전자가 최근 공급 조절에 돌입하는 장면도 최근 데이터센터 물량 등이 줄어드는 한편, 업황 악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위기는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2018년 수출입 평가 및 2019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올해부터 10월까지 36%를 넘겼으나 내년은 이러한 수치를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해 57.4%를 기록한 국내 반도체 수출증가율은 내년 5.0%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 수출의 최대 효자인 반도체가 꺾이면 국가 경제도 실질적인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공세도 문제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정부 차원의 국부펀드인 국가IC산업 투자기금은 초기 자금규모만 약 21조원이다. 중국 정부는 현재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규정하고 정부 차원의 막강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향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최근 폭스콘도 반도체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22일 폭스콘이 중국 정부의 지원금을 밭아 폭스콘과 자회사 샤프가 중국 광둥성 주하이시에 직경 300㎜의 실리콘웨이퍼를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총 사업비만 10조원이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12월 국내 반도체 수출 잠정치는 11월과 비교해 다소 내려갈 것"이라면서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4분기는 전 분기 대비 20%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플랜B는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7일부터 18일까지 경기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글로벌전략회의를 열어 반도체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후퇴를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미국 CIA의 스파이 문건을 공부하며 조직의 나태함을 경계하는 한편, 반도체 전략의 틀을 다잡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가 사실상 비상경영에 돌입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플랜B의 존재에 집중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정도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것은 아니지만, 모바일 AP와 파운드리 영역에서 일발역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나, 모바일 AP에서는 엑시노스를 중심으로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AP는 엑시노스 9820이다. 엑시노스 9820은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4세대 CPU 코어를 적용하고 설계를 최적화해 성능과 전력효율이 동시에 향상됐으며 인공지능 연산 속도는 전작과 비교해 약 7배 늘어났다. 최신 그래픽 프로세서(Mali-G76)를 탑재해 전작 대비 그래픽 처리 성능을 약 40%, 동일 성능에서의 전력소모를 약 35% 개선했으며, 업계 최초 8CA(주파수 묶음) 기능과 초당 2기가비트(Gbps) 다운로드 속도의 통신이 가능하다. 갤럭시S10을 통해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할 전망이다.

모바일 AP 시장의 강자는 시장의 절반을 가진 퀄컴이지만, 스마트폰을 직접 출시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한 번 해볼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파운드리도 유력한 플랜B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주력 양산 공정인 14와 10나노 공정, EUV를 활용한 7, 5, 4나노 공정에서 새롭게 3나노 공정까지의 로드맵을 공개했으며, 향후 광범위한 첨단 공정 개발과 설계 인프라, SAFE(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의 지속 확장에 대해 발표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2위 업체인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가 7나노 설비 투자를 포기한 점도 중요하다. 당장은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의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면서 파운드리로 진격하려는 삼성전자에도 최대 호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장 정은승 사장은 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소자학회(IEDM, International Electronic Devices Meeting)'에 참석해 '4차 산업혁명과 파운드리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Foundry: Challenges and Opportunities)'를 주제로 기조 연설에 나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전략과 생태계 확대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정 사장은 현장에서 업계의 기술 트렌드와 더불어 GAA(Gate-All-Around) 트랜지스터 구조를 적용한 3나노 공정 등 삼성전자의 최근 연구 성과도 공개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삼성 파운드리 포럼'과 삼성전자 파운드리 에코시스템(SAFE, 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 등을 통해 글로벌 고객 및 파트너와 협력하며, 첨단 공정 생태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정 사장은 "최근 반도체 업계의 다양한 기술 성과는 장비와 재료 분야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앞으로도 업계, 연구소, 학계의 경계 없는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에 2억9100만달러를 투입, 파운드리 역량을 키울 전망이다. 최근에는 IBM과 협력하며 7나노 EUV의 존재감을 알리기도 했다. 주로 GF와 계약하던 IBM이기 때문에 GF의 7나노 포기 선언에 따른 후광효과지만,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 전략을 키워 반도체와 연결하면 독자 생태계를 중심으로 하는 전략 로드맵을 키울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초연결 생태계 자체가 막강한 반도체 인프라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흔들려도 삼성전자는 충분히 ‘리스크 테이킹’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시적인 수요 부진 현상이 내년 1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모바일에서 초연결 생태계로의 안정적인 흐름만 이어지면 의외의 반등이 가능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