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는 여러 부류의 그룹을 만나서 ‘송년회’라는 또 다른 의미의 전쟁을 치르는 일이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부어라 마셔라’의 문화는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해를 넘기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서 회포를 푸느라 귀가 시간이 많이 늦어진다.

익숙한 이들을 만나는 자리면 불편하지 않다. 친구, 선후배 사이에서 딱히 자기소개를 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예전 추억을 안주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데 바쁘다. 당시의 행복하거나 지질했던 기억을 들추고 웃고 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모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낯선 이들을 만나는 경우도 많은데 낯선 이들과 만나는 각종 업계의 세미나 파티 등에 필자도 여러 번 초대를 받았고 간혹 나가곤 했다.

백수 시절에는 다소 곤혹스러웠다. 그런 자리에 경험이 없어 스스로를 소개하는 데 머뭇거리기도 했고, 특히 소속된 조직이 없으니 난처하다고 느꼈다. 명함을 따로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도 낯간지럽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기 PR이라고 하지만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초일류 기업이 아니면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회사에 다닌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관련 업계가 아니면 기억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자리에서 다시 만날 인연이 된다는 것은 극히 드물다.

내가 누구인지를 조직에 빗대어 기억하게 만들려면 적어도 만나는 이가 해당 기업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회사는 정말 손에 꼽는다. 결국, 그들은 내가 속한 조직이 아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OOOO에 다니고 있는 김아무개 (직함)입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결국 우리는 의미 없는 소속감에 젖어서 내가 아닌 소속된 조직을 홍보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수년 동안의 회사생활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면서 조직에 끊임없이 기댔던 지난 과거를 반성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다니지도 않을 조직을 회사 밖에서까지 충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결론 말이다.

그래서 독립한 이후에는 전략을 변경했다. 소속된 조직이 아닌, 내가 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위주로 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직스쿨 김영학’이라는 ‘호(號)’같은 것이 있었지만, 예전에는 ‘직장인들 성장에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 관련 글과 강의를 하는 김영학’이라고 소개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나를 사적이 아닌 상황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내 전문성을 어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브랜드 이론에 입각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이미지의 상관(인과)관계 속에서 기업은 고객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 한다.

브랜드의 고객 머릿속 연상 작용에 의해 기업이 제공하는 아이덴티티가 담긴 콘텐츠는 누군가에게 특정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이를 활용해 내가 특정한 자리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몸짓 등이 내 브랜드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제스처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머릿속에 연상작용으로 나타날 원하는 이미지는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핵심이 될 수 있는 단어들을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조직에 기대어 표현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또한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특정 조직 출신 또는 해당 기업을 다닌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전문가’로 인식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어느 정도의 후광 효과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이들의 교류에서 특권처럼 인식되었던 것들이 예전만큼의 명성을 뽐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짜가 들어가는 직업보다, 창업해 수십억의 매출을 올린 스타트업 대표 혹은 수십에서 수백만의 팔로워를 가진 다양한 채널 속 인플루언서들이 더 나은 인정과 대우를 받는 것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조직의 힘이 아닌 진짜 자신의 실력으로 일어선 이들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수년 수십년 전의 우리 아버지 삼촌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조금은 다른 삶의 목적과 목표를 지녔다면 우선 스스로를 소개할 때부터 조직의 꼬리표부터 떼고 보자.

일명 계급장 떼고 붙는 것이다. 언제가 되는 그 순간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자신이 가진 실력 중에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조직에서 쌓았던 것을 찾아보자. 그리고 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만, 조직 바깥 세상에서도 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일’은 실제로 할 때는 함께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또 다른 일(가치)을 만드는 것은 조직 또는 개인의 몫이 된다. 이를 물리적으로 분할해 계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조직을 떠나면서 자신의 과업 및 성과를 분리해 말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데이터로 활용 가능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직장인은 자신의 직무와 연관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관련 비즈니스 속에서 기회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소개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을 위주로 소개해보자. 그렇게 하면 주변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정말로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 일을 찾는 것부터 우선이다. 당연히 이는 내가 해왔던 일 가운데 있다. 어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경험 축적에 의해 발생하는 느낌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는 매우 단순한 동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