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G20 회의를 기점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참호전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수퍼파워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협상 국면을 확보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압박이 단적인 사례다.

지난 1일(현지시간) 캐나다에 체류하고 있던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전격 체포되며 두 수퍼파워의 화해무드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9일 언론을 통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체포는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이번 사태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꺾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멍 부회장은 보석으로 석방됐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정부가 우방국을 대상으로 중국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중이라고 보도하며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의 돈줄을 차단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WSJ는 20일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가 화웨이에게 은행 서비스나 자금을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화웨이에 자금을 제공하려던 계획을 철회했고 그 외 JP모건 등 ‘큰 손’들도 화웨이와의 거래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압박 논리는 ‘백도어 설’에 기인한다. 백도어 설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의 강자인 화웨이의 제품이 한 국가의 기간 통신 인프라 시스템을 통째로 중국 정부에 ‘바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뿌리를 둔다.

화웨이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화웨이 순환회장 켄 후(Ken Hu)는 최근 간담회에서 5G 사업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한편, 30년 동안 사이버 보안 사고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5G 정국에서 지금까지 모든 ICT 장비 업체 중에서 가장 많은 25 건의 상용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1만 개 이상의 기지국을 출하했다는 점도 내세웠다. “우리는 문제가 없다”는 위력시위인 셈이다.

▲ 켄 후 화웨이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일부 국가에서 5G 이슈를 정파적, 이데올로기적 고려사항에 기반해 근거없는 추측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하는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국이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켄 후 회장은 "경쟁을 차단하기 위한 구실로 제기된 비합리적인 보안 이슈는 새로운 기술 도입을 지연시켜 네트워크 구축 비용 증가와 이에 따른 소비자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당사국은 사실상 미국과 그 동맹국이다. 화웨이는 "일부 경제학자들은 만약 화웨이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에서 5G 구축 경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선 인프라에서의 비용 지출이 200억 달러 정도 절감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보안 이슈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화웨이는 미국 및 호주 등의 국가에서 사이버 보안 평가 센터를 구축하는 것에 관한 질문에 대해 영국 및 캐나다, 독일에 설립된 센터들을 언급했다. 또 지금까지 화웨이 장비가 보안 위협을 일으킨다 증거가 제시된 바는 없으며, 이와 관련해 대화할 준비가 됐음을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5G 정국에서 화웨이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도 비슷한 입장이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19일 간담회에서 “화웨이 보안 이슈는 없다”고 단언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압박, 그에 따른 화웨이의 재반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도 보복카드를 빼들었다. 최근 미국 사업부가 중국 해커 2명을 기소하는 등 공세의 강도를 올리자 중국도 서서히 반격에 나서는 분위기다.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한 캐나다를 겨냥한 보복조치가 눈길을 끈다. 캐나다구스 불매운동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아닌 민간이라는 우회적인 경로로 미국의 동맹국을 압박하는 흐름이 보인다. 공식적인 제재가 아닌 민간을 통해 미국의 동맹국을 우회압박하는 것은 중국이 즐겨 사용하는 카드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보복과 비슷한 패턴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가열되며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가 강해지는 한편, 화웨이와 중국도 호흡을 맞추며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이 대목에서 사태해결의 ‘키’를 쥔 곳은 제3영역이다.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로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화웨이가 유럽의 손을 잡고 새로운 활로를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화웨이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시행사를 주기적으로 영국에서 여는 한편, 통신장비 시장에서도 유럽 장악력이 상당한 편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제3영역으로 분류되는 진영이 미국과 중국의 구애를 동시에 받으며 더 매력적인 카드를 뽑는다면, 화웨이는 최소한의 회생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ZTE의 사례처럼 ‘얻어낼 것은 얻어내고’ 문제를 마무리짓는 경우의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이란 제재법을 어긴 혐의로 ZTE와 미국 기업의 거래를 금지, ZTE를 벼랑까지 밀어낸 전적이 있다. 그러나 ZTE와 거래를 하는 미국 기업의 피해도 컸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스파이 행위 원천 금지 등 ZTE의 팔다리를 묶은 후 제재를 풀어준 사례가 있다. 화웨이는 매출 기준 ZTE와 비교해 8배나 큰 기업이며, 미국 기업과의 반도체 거래액이 상당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중 무역전쟁의 큰 흐름을 살피며 화웨이를 협상카드로 활용한다면, 의외의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미 법무부의 멍 부회장 수사에 개입할지 묻는 질문에 "필요하다면 분명히 개입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멍 부회장 사태를 일종의 협상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의 행보와는 별도로 화웨이가 가능성은 낮지만 백기투항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집중 견제를 받는 상태에서 다른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반사이익을 받는 경쟁사는 삼성전자다. 실제로 블룸버그를 비롯한 일부 외신은 13일 화웨이의 위기가 삼성전자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이 주력이지만 스마트폰과 통신 네트워크, 백색가전 시장을 키우고 있으며, 이는 화웨이의 영역과 정확하게 겹치는 지점이다. 화웨이가 트럼프 행정부의 견제를 받는 시간이 길어지면 미중 무역전쟁의 유탄을 맞아 한국 경제와 삼성전자도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최소한 삼성전자는 직접적인 사업 영역에서 화웨이를 확실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과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