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브랜드로 불려온 구찌가 최근 '명품계 아이돌'로 부활했다. 출처= 구찌

[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구찌의 부활은 최근 수년간 명품 업계의 최고 뉴스다. 구찌의 모기업 케링(Kering)의 주가는 18년만에 최고가를 찍으며 매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중이다. 5년 전만 해도 매년 매출이 20% 줄어드는 등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린 구찌는 어떻게 ‘명품계 아이돌’이 될 수 있었을까.

고속 성장을 이어오고 있는 케어링그룹의 3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5% 늘어난 34억유로(약 4조3736억원)를 기록했다. 그룹 대표 브랜드 구찌 매출도 같은 기간 35.1% 증가했다. 가히 ‘광란의 질주’라 할만하다. 이처럼 놀라운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견인하고 있는 구찌 덕분이다.

한물간 브랜드로 여겨져 온 구찌는 최근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성공적으로 공략한 결과다. 2015년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마르코 비자르(Marco Bizzarri)와 무명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는 구찌를 파격적으로 바꿨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당시 ‘구찌가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

지난해 기준 구찌는 전년 보다 무려 80% 늘어난 62억유로(약 7조99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비자르가 부임하기 전인 2014년(35억유로) 보다 2배 가까이 성장한 수준이다.

마르크 비자리가 부임한 2015년 이후 구찌와 케어링그룹의 매출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출처= 구찌

파격의 파격

구찌의 부활의 비결로 업계 전문가들은 ‘파격’을 꼽는다. 무명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한 파격적인 인사, 절제된 이미지에 새나 잠자리, 꽃 등의 파격적인 디자인 도입 등이다. 더불어 온라인 판매 채널 강화와 고객 맞춤 서비스 라인 확대도 꼽을 수 있다.

비자르는 부임 후 제일 먼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올 사람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로마에 출장을 간 비자르는 우연히 구찌 액세서리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미켈라를 만났다. 그리곤 자사에서 13년 간 묵묵히 일해온 무명 디자이너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파격 인사였다.

미켈레는 임명되자마자 패션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꽃, 나비, 잠자리 등 옷과 가방에 구찌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옛날 옷처럼 촌스러웠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사람들은 미켈레가 만들어낸 킥시크(geek chic·컴퓨터와 기술 마니아들의 괴짜 패션) 룩에 열광했다. 덕분에 한동안 정체 상태인 매출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12%, 17% 늘었다.

마르크 비자리(오른쪽)는 자사의 무명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라를 수석 디자이너에 임명하고, 과감한 디자인, 밀레니얼 겨냥 등 파격적인 전략으로 구찌를 심폐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출처= 구찌

밀레니얼이 사랑하는 브랜드

누군가에게 “오늘 컨디션 어떠냐”고 물었는데 “구찌(GUCCI)”라고 답하더라도 명품 브랜드를 떠올려선 안된다. 구찌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좋다’, ‘멋지다’의 뜻으로 통한다.

명품업계는 그동안 밀레니얼 세대를 반기지 않았다. 소유보다 경험, 브랜드보다 개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때문이다. 비자리는 위기의 구찌를 심폐소생하기 ‘밀레니얼’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우선 임원 회의 대신 ‘리버스 멘토링’이라는 새로운 회의를 도입했다. 35세 이하 직원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그들은 이전에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모피 사용 금지, 구찌와 함께하는 여행 앱(응용프로그램) 제작, 중성적인 디자인 적용 등 이다. 친환경, 경험, 재미와개성 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구찌(GUCCI) 로고를 GUCCY, CUCCIFY 등으로 변형하기도 했다. 남성복에 리본과 레이스를, 여성복에 투박한 장식을 달았다. 온라인 한정판을 강화하고 DIY 코너도 선보였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고 인스타그램(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어울리도록 매장을 꾸몄다.

그 결과 지난해 구찌 전채 매출의 55%는 35세 이하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왔다. 스텔라 매카트니, 보테가 베네타 등에서 실력을 인정을 받은 비자리의 전략은 이번에도 통했다.

지난해 구찌는 밀레니얼세대의 구매율이 눈에 두드러지게 늘어났다. 출처= 히트와이즈

패션 업계 관계자는 “명품업계가 구찌 따라하기 나섰다”면서 “발렌시아가와 생로랑은 구찌처럼 밀레니얼을 겨냥해 매출을 견인했고 버버리는 20년 만에 로고를 바꾸고 루이비통은 뉴욕 출신 젊은 흑인 디자이너를 남성복 수장에 앉히는 등 구찌 벤치마킹이 한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