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아빠와 등산을 다녀온 초등학생 3학년인 막내가 목욕, 일기 쓰기, 수학 및 영어 복습 예습까지 끝내고, 핸드폰을 들고 온갖 안간힘을 써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게임은 손으로 하는데 발도 구르고, 마치 운동장에서 축구라도 하듯이 패쓰, 슛 같은 괴성을 질렀고, 탄식이 이어졌다. 얼마나 게임에 열중을 했는지 한참 뒤에는 벌개진 얼굴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하소연을 했다.

레벨을 올려가며 축구 게임을 해 오고 있는데, 자신은 이제 겨우 레벨이 84인데 프로그램이 내세운 팀 전력은 90이 훨씬 넘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선택의 자유가 없어서 열세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깨야 그 다음 레벨로 갈 수 있단다. 아무리 해도 이길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이 너무 비겁한 거 아냐? 난 레벨이 84 밖에 안 되는데, 자기는 레벨이 90이 넘어. 2대 0으로 끌려가다가 겨우 2대 2로 전반전을 끝냈어. 걔들은 너무 쉽게 넣는데, 우리 팀 선수들은 시키는 대로 잘 움직이지도 못해.”

나도 알지 못하는 브라질과 유럽의 유명 축구 선수와 그들이 전매특허로 구사하는 기술 이름을 줄줄이 언급하면서 화면을 보여주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우리 나라 A매치 경기도 잘 챙겨보지 않는데,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기술을 알지도 못했고, 게임은 더더욱 관심도 없었다. ‘우리 팀은 레벨이 떨어져서 뛰는 속도도 느리고, 패스 연결도 잘 되지 않고, 슛도 잘 걸려’라는 하소연에 ‘과일을 좀 먹고 쉬었다가 다시 해보면 어떨까?’라는 말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한 시간 여가 지났을 때였다. “아빠, 깼어!” “그래? 잘했네.”

 

베트남 축구 대업의 역사도 사실상 기본 다지기에서 출발

사내 아이라 그렇지만 축구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매일 학교 운동장에서 얼마나 공을 차 대는지, 겨울에도 매번 옷이 땀에 절어 집에 오기 일쑤다. 마침 베트남이 아세안축구연맹 (AFF) 스즈키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림으로써, 2018년 베트남 축구 대업의 역사를 멋지게 장식했다. 역사의 뒤안길에 많은 굴곡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희망과 환호로 역사적인 해를 마감했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제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 달라”며 한국인들을 울컥하게 만들기도 했고, 상금을 베트남 사회를 위해 써달라고 쾌척한 모습에 베트남인들도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

2017년 10월 부임 이후 연초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 2018 아시안게임 4강에 이어 대망의 스즈키컵 우승에 이르기까지 박항서 감독이 쌓은 금자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인 A매치 16연속 무패라는 세계 기록을 세웠고, 스즈키컵 대회 이전에 이미 FIFA 순위 100위권에 포진하는 진기록을 낳기도 했다. 때문에 베트남인들의 박 감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신드롬을 넘어 열풍으로 확산 중이다.

프랑스 식민지, 미군과의 전쟁, 남북의 갈등이라는 힘든 근현대사를 거쳐오면서 베트남 국민 전체가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게 해준 최초의 외국인으로 박항서 감독이 꼽히고 있다. 사실 그 대업도 베트남 선수들의 기본기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부터 쌀국수 같은 것 먹지 말고 고른 영양의 섭취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음으로써 베트남 선수들은 자신들도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각성하며 동남아의 축구 강국으로 거듭났다.

베트남의 선전이 이어지지만 유럽의 화려한 축구에 길들여져 있는 아이들의 눈높이와는 격차가 많이 벌어진다. 때문인지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이 시작된 지 10분만에 “쟤들은 축구를 왜 이렇게 답답하게 하지? 하나도 재미가 없잖아” 하고 잠들어 버렸다. 베트남 축구를 보며 새삼 느끼는 게 있다. ‘우리나라 대표팀 수준이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도 베트남 선수들처럼 답답하게 축구를 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오죽 했으면 어렸을 때 축구 중계를 볼 때마다 들었던 말이 ‘시작 후 5분 안에 실점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였다. 늘 초긴장 상황에서 경기 시작 몇 분만에 실점해 버리고 끌려 다니는 경기만 했던 것 같다. 어렵사리 점수를 쫓아 가다가도 어이 없이 다시 실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농담처럼 ‘내가 안 봐야 이긴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많았고, 우리나라의 중요한 A매치일수록 일부러 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뭘 해서 실력이 늘었을까? 박항서 감독은 대체 어떤 마법을 부렸길래 베트남 선수들 실력이 그렇게 일취월장했을까 궁금하다. 패스가 향상된 것일까, 슈팅 능력이 보강된 걸까, 아니면 체력들이 좋아진 것인지. 사실은 어느 한 두 가지 능력이 좋아졌다고 해서 전체적인 경기 능력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선수들 멘탈부터 체력 그리고 기술까지 종합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데, 화려한 기술이 나올 수가

최근에 지인들과의 SNS에서 어느 기업에서 홍수환 씨가 강연한 내용 전체를 녹취해서 올린 장문의 글을 일독한 적이 있다. 해설도 하고 강연도 하면서 말 솜씨가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깊이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기억에 남는 문구는 ‘연습 때는 대충 안 보고 때려도 맞는다. 그런데 이런 연습을 게을리 하면, 시합 땐 보고 때려도 안 맞는다’는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업이나 커뮤니케이션 같은 외부를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나 인사, 총무, 재무, 기획 같이 내부 업무가 위주인 팀에서도 말이다. 어쩌다 벌어지는 큰 일이 고생도 크지만 결과도 돋보이는 법이어서 사람들은 작고 사소하고 매일 매일 지루하게 벌어지는 일들은 선호하지 않게 된다. 늘 벌어지는 일들은 재미도 없지만 잘 해도 티가 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고 화려하고 멋진 일을 찾아 다니게 된다. 사실은 매일 하는 일상적인 일들이 가장 중요한데도 말이다.

예전에 경력이 화려한 후배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부친의 도움으로 작지만 기획사까지 직접 운영해 본 경험이 있었다. 회사는 소송도 치르고, 언론의 관심도 지대했고, 매출도 급속도로 확대가 되고 있었다. 언론뿐만 아니라 국회, NGO 등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많은 기관 및 사람들을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던 터라 혼자서 모든 것을 커버 할 수가 없어,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았던 것이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두세 명의 후배가 경력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전혀 전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늘 자료집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수시로 접대도 해야 했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사람들과 술을 마셔야 했다. 후배는 그런 내가 부러웠던지 “저도 기획사 할 때 사람들을 많이 접대해 본 경험이 있는데, 접대 자리에 저도 데려가 주시면 잘 하겠습니다”며 주량 센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 했다.

“지난 주에 준 자료는 꼼꼼히 읽어봤나요?”

“대충 훑어 보긴 했습니다.”

“훑어 봐서는 안 되고, 기본적인 법조문, 규정, 성적서, 소송 쟁점 등은 외워야 해요.”

“그래도 접대는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술만 마신다면 그 접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일단 내용 숙지부터 하세요.”

정부 기관에서 주고 받은 공문서며 법조문 그리고 해외 사이트에서 어렵사리 찾아서 번역하고 요악했던 귀한 자료들을 주고 충분한 시간을 주었음에도 후배는 자료들을 잘 보지 않았다. 때문에 보도용은커녕 내부용 작은 자료 하나 만들 수도 없었다. 결국 그 후배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질문에 답변이나 다는 정도의 잔 일로 몇 개월 버티다가 그만 뒀다.

어렸을 때부터 난 운동이라면 젬병이었다. 싸움 같은 것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영화에서 주인공이 날라서 상대방을 발로 차서 일격에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 매료되어, 상대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이단 옆차기를 계속 연습을 했다. 거의 매일 약수터가 있는 뒷산에 올라가 연습을 했는데, 뛰어가서 바위 같은 디딤돌을 딛고 점프를 해서 차는 연습이었다. 하지만 그 연습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금방 깨쳤다. 일단 체력과 기본적인 차고 때리고 막는 법도 모르는 데 상대가 날라 차기 기회를 허용할 리가 없다. 기본적인 것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도 않는데, 이단 옆차기에 맞고 쓰러질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건 이단 옆차기가 아니라 지랄 옆차기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