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최근 보건복지부는 국민 의견을 담은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과거와 같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 연금개혁이 아닌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수립했음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복지부는 지난 9~10월 주요 집단별 간담회, 지역별 대국민 토론회, 온라인 의견수렴·전화설문 등으로 ‘국민’에게 접근했다.

그 내용을 보면 참으로 허무하다. 주요 집단별 간담회 총 17회, 시도별 토론회 2500명, 온라인 의견수렴 2700여건, 전화설문 2000명이 전부다. 중복 인원이 없다고 가정해도 1만명을 넘기 어렵다.

5000만명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1만명의 의견을 듣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0.02%가 나머지 99.98%를 대변할 수 있나.

국민연금 개혁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세대 간 부양이 근본 취지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참여와 의견이 필요하다. 향후 사회에 진출해 본격적으로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부양의 짐’을 짊어질 후세대를 생각하면 이들의 생각을 더 반영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개혁 따윈 꿈도 꿔서는 안 된다. 형식만 갖췄다고 해서 근본이 변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의견수렴 과정 자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의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 사항을 주고 결정하라는 태도가 옳다고 생각하는가. 영국 등 선진국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우리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자랑하고 싶은가. 여론조사는 전형적인 ‘방패막’ 수단이자 ‘선진국병’이다.

선진국에서는 연금제도 개혁을 위해 국민들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고 고통 분담을 요청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통 분담’이다. 세대 간 부양이 국민연금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덜 내고 더 받는다’라고 자랑스레 홍보했던 만큼 고통분담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기 어렵다. 사적연금처럼 인식하게 만들었으니 국민이 동의할 수 있겠나.

이번 여론조사와 사적연금으로 혼돈하게 만든 홍보방식은 국민을 멍청하게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보를 통제하고 언론을 통해 선전하는 과거와 같은 방식이 여전히 먹힐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IT기술 발전은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지식도 한 층 높아졌다. 과거 뉴스가 ‘어른’의 전유물이었던 상황과 현재는 분명 다르다. 청소년들이 뉴스 등 특정 이슈를 놓고 토론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자신의 의견도 뚜렷하다.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눈’도 훨씬 더 많아졌고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복지부와 국민연금에 묻고 싶다. ‘1만명’이란 숫자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것인가. 국민연금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설명은 했는가. 국민연금 납입은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는 걸까.

왜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불신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이유는 단 하나다.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받진 못하더라도 더 내긴 싫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국민연금에 대한 고통분담과 책임 의식 고취는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연금에 대한 갈등과 논란은 미래에도 끊이질 않는다. 물론 지금 당장 충분히 납득을 시키더라도 언제든 문제는 재발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충돌과 대면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의식이 바뀌기 전과 후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연금개혁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국민연금 개혁을 단순 여론조사에 맡기는 성의 없는 태도부터 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