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미국 정크 본드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거래가 끊기는 것은 물론 하이일드 스프레드도 빠르게 확대되면서 불안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사실상 경기 둔화를 인정하면서 시장에도 부정적 전망이 주를 이룬다. 정크 본드에 취약한 환경을 조성하는 셈이다. 최근 기업부채 우려를 표명한 주요 인사들의 발언도 연관성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이달 들어 미국의 하이일드 회사채(정크 본드) 발행은 현재까지 ‘제로(0)’를 기록했다.

바클레이스, 도이치뱅크, UBS, 웰스파고 등 주요 투자은행(IB)들이 투자자 확보에 실패한 탓이다. 그만큼 투자자들의 하이일드 채권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월말까지 다소 시간은 남았지만 시장 불안을 떨치긴 어려운 상황이다. 월 기준 2008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정크 본드 발행이 전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레버리지론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레버리지론이란 투자적격 미만 혹은 대출이 있는 기업이 추가 대출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 기준 하이일드채권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 론 펀드 자금 유출입 추이 [출처:레버리지론닷컴]

지난주 미국 론 펀드(loan fund)에서는 25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자금흐름 집계가 시작된 2007년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기간 하이일드 채권형 펀드는 22억달러가 순유출됐다.

과거 레버리지론 수요 증가는 저금리 기조에 따른 고수익 추구가 일조했다. 이는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 시장 활성화로 이어졌다. CLO는 신용도가 다른 기업들의 대출채권을 묶어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구조화상품이다.

CLO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 주범으로 지목된 CDO(부채담보부증권) ‘재현’이다. 당시 CDO는 부실 모기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올해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3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음에도 미국 하이일드채권 스프레드는 좀처럼 상승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월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을 친 이후 지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하이일드 스프레드는 여전히 낮은(4%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발발 후 하이일드 스프레드는 2%대에서 4%대로 급격히 올랐다. 이후 등락을 반복하는 과정에서도 상승 추세는 견고했고 이듬해 글로벌 금융시장은 붕괴됐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 운용역은 “그간 하이일드채권, 레버리지론과 CLO 등에 수요가 몰린 것은 미국 경제성장이 견고했기 때문”이라며 “내년부터 미국 경기둔화를 예상했던 만큼 Fed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경기 후퇴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위험자산 기피 성향이 확대돼 시장 전반 변동성이 강해진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 미국 하이일드 스프레드 추이 [출처:FRED]

통상 금리인상 시기는 경기 호황이 동반된다. 고위험 채권이라도 경제 호조가 지속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경기 침체 시에는 반대의 상황(고위험 채권 수요 감소)이 벌어져야 한다. 그러나 내년 미국의 경기 둔화로 Fed의 금리인상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절대 금리가 높은 위험 채권 수요가 지속됐다. 문제는 경기 후퇴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투자자들의 선제적 포트폴리오 재편 등이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이 운용역은 “고위험 채권과 CLO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가 발발할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면서도 “경기 둔화가 지속된다면 하이일드채권 등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CLO에 대해 ‘괜찮다’고 주장하는 쪽은 글로벌 경기가 나아질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라며 “낮은 손실률을 앞세워 IB들이 세일즈를 하지만 과거 데이터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또 “금융위기 직후 CDO 여파로 CLO 투자를 꺼렸지만 최근까지 높은 수익률이 제공되면서 기관들이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고수익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상식’인 만큼 현재는 경계해야 하는 시기”라고 덧붙였다.

내년 상반기 장단기 금리차 제로(0) 근접 가능 

19일(현지시간) Fed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2.25~2.50%로 결정했다. 올해 들어 4번째 인상이다. 향후 금리인상에 대해서는 한발짝 물러난 모습이다.

이 소식에 미국 채권금리는 장기물을 중심으로 하락폭이 커졌다. 장단기 금리차가 좁혀지는 등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공개된 점도표를 보면 2019년 말 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2.875%다. 내년 2차례의 인상을 예고한 것이다. 기존에는 3차례로 전망됐다.

▲ FOMC 9월, 12월 점도표 [출처:한국투자증권]

올해와 내년성장률과 물가 전망치도 하향됐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중립금리 밴드 하단에 이미 도달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중립금리 바로 아래’ 발언 대비 한 단계 더 나간 것이다.

이날 시장이 의문을 가진 것은 증시하락이다. 도비시(dovish)한 발언이 위험자산 선호에 힘을 싣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둔화가 빨라질수록 하이일드채권, 레버리지론, CLO 등은 부실이 급격히 확대된다. 회사채 시장 전반을 흔들 수 있는 요인이다. 레버리지론 시장 전체 만기는 2022년 이후로 집중돼 있다. 단기 신용경색 등 우려는 낮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은 스프레드 확대요인이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점도표 하향으로 장단기 금리차 역전이 단기간에 나타나긴 어려워졌다”면서도 “낮은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 불확실성은 장기채 매수 수요를 자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장단기 스프레드는 완만한 약세를 보이다 내년 상반기 중 제로 수준까지 근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