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캐롤과 쇼핑몰과 상점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그리고 온갖 기업에서 날아 들어오는 홍보물들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이메일이 의사소통의 기본 수단으로 바뀐 지 오래지만, 연말이 되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자동차 보험회사 직원이 보내는 연하장을 비롯해서, 월급통장을 개설한 은행에서 보내온 광고메일까지 하루에도 10여건의 우편물이 배달된다.

그중에서도 종종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자신들의 얼굴이 담긴 크리스마스 카드다.

세일즈맨들이야 홍보를 위해서 자신의 얼굴이 크게 들어간 이메일이나 홍보물 등을 보내는 것을 알겠지만, 크리스마스 카드에 온 가족의 사진이 들어있는 것을 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때는 처리가 참으로 난감하다.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은 부부와 앙증맞게 작은 나비넥타이를 맨 아이가 함께 있는 사진은 너무나 귀엽고 행복해보이기는 하지만, 내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사람들의 사진을 걸어놓을 수도 없고 버리자니 얼굴이 들어있어서 그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가족의 얼굴 대신 자신들의 애완견 얼굴을 담은 카드를 받은 적도 있는데, 이때는 그나마 고민하지 않고 새해가 되면서 카드를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족사진이 포함된 크리스마스 카드가 미국에서는 중요한 연말 행사로 자리 잡은 이유는, 많은 가족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이미지투데이

사진이 들어간 크리스마스 카드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유명했던 여성 권총사수 애니 오클 리가 1891년 영국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다가 찍은 사진으로 카드를 만든 것이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이후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풍경이나 크리스마스 장식 등이 인쇄된 카드에서 개인 인물사진이 들어간 크리스마스 카드가 등장했고 가족,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경우 사진 크리스마스 카드는 필수 품목이 됐다.

동부에서 서부까지 비행기로만 가더라도 6시간이 걸리는 넓은 국토에서, 형제자매들이 각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거나 자녀들이 모두 출가해서 외지로 나가게 되면, 연말에 받는 가족사진 크리스마스 카드로 그동안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는지, 가족들의 모습은 얼마나 변했는지를 카드를 통해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자동차가 일상생활로 들어오고 항공산업이 발전하면서 크리스마스 카드 사진이 아니더라도 직접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면서, 크리스마스 카드는 일종의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가족들이 사진을 찍는 배경이 집이 아니라 콜로라도의 아스펜 스키리조트에서 스키를 즐기는 모습, 하와이의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크리스마스 카드 사진으로 등장했다.

과거 가족들에게 우리 건강하고 잘 지낸다고 보내던 카드가 이제는 남들에게 우리 ‘잘 산다’라고 자랑하는 카드로 변모한 것이다.

매년 연말이면 어떻게 해야 남들에게 번듯하게 보일까 싶어서 고민하면서 더 특이하고 더 멋진 곳을 여행할 계획을 짜고 독특하게 사진을 찍는 것을 연간 계획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사진 크리스마스 카드가 크게 줄어들었다.

여러 해를 온 가족의 사진을 담아 카드를 보내던 가족들도 이제는 더 이상 사진 카드를 만들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갑작스레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던 허영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급속히 발달하면서 굳이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들의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데, 굳이 연하장으로 사진을 보여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