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포브스>는 라자라트남이 미국에서 262번째 부자이며 재산은 15억달러라고 발표했다. 갤리언 펀드는 세계 10대 헤지펀드에 들었으며 운용 자산은 70억달러에 달했다. 갤리언 펀드는 기술주에 주력하면서도 2000년의 기술주 버블에서도 살아남았고, 이후 오히려 더 크게 발전했다. 1999년부터 2002년 동안 미국의 S&P 500 지수가 37.6% 하락한 반면, 갤리언 펀드는 43.7% 상승했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갤리언 펀드는 매년 평균 21.5% 상승을 기록한 반면, S&P 500 지수는 7.6% 상승에 그쳤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뒤흔들고 있었을 때였던 2009년조차 연평균 수익률이 20%를 상회했다. 그렇다면 갤리언이 그렇게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오래 전부터 라자라트남에게는 기업 내부자들로부터 내부정보를 얻는 대가로 돈을 제공한다는 루머가 따라 다녔다.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를 만들겠다는 그의 거대한 야심은 출발 시부터 법을 우습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가 펀드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인텔의 내부자로부터 실적 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그는 갤리언 펀드를 시작했을 때부터 불법 정보를 통해 커다란 돈을 벌려고 작심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중요한 투자 전략 중 하나는 조심스럽게 핵심 기업마다 내부자를 개발해 회사 내부에 깊숙이 심어 놓는 것이었다. 그들로부터 얻은 비밀 정보를 중심으로 투자 종목과 거래 타이밍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월가에서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가 선호했던 정보원들은 그와 같은 남아시아계 출신들이었다. 라자라트남은 그들이 월가에서 매우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금융계에서 일하는 많은 인도 출신들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 최고의 명문인 인도과학기술대학(IIT,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들은 미국에 입국하기 전에 이미 하버드대학보다 훨씬 더 뚫기 어려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인종적으로 결합된 정보망을 통해 라자라트남은 갤리언 펀드의 수익률을 높이 끌어올렸고, 이러한 놀라운 수익률은 투자자들의 펀드 이탈을 방지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투자자들의 펀드 가입을 유인했다. 그 결과 갤리언 펀드는 2009년 10월 기준으로 운용 자산이 70억달러에 달하면서 헤지펀드 세계에서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라자라트남은 어떻게 연방 정부에 덜미가 잡히게 되었는가? 많은 대형 금융 스캔들이 그렇듯이 갤리언 사건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출발했다.

2006년 8월, 스위스 투자은행인 UBS의 뉴욕 지점 사내 변호사인 존 문(John Moon)이 SEC를 방문했다. UBS는 헤지펀드인 세드나의 프라임 브로커로서 주문 처리 등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세드나 펀드는 라지 라자라트남의 친동생인 당시 35세의 렌간 라자라트남이 운영하는 작은 펀드였다. 주로 가족들이 투자했고 투자 규모도 200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세드나 펀드는 출범하자마다 한 달 만에 200만달러로 400만달러를 만들었다. 불과 30일 만에 100%의 투자 수익률을 올린 것이다.

UBS가 세드나의 거래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6년 6월 26일에 있었던 애리스 그룹(Arris Group)에 대한 공매도였다. 세드나는 140만달러를 공매도하면서 펀드의 거의 모든 돈을 다 쏟아 부었다. 다음 날인 27일, 애리스 그룹은 부진한 2/4분기 실적을 공시했고 주가는 20% 하락했다.

세드나는 바로 숏 커버링(숏 커버링은 공매도를 한 후 주가가 하락했을 때 공매도를 위해 빌려온 주식을 반환하기 위해 공매도한 주식을 시장에서 매수하는 행위를 말한다)을 통해 하루 만에 27만달러를 벌었다. UBS가 볼 때 이러한 거래는 불법적인 내부정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거래였다. 렌간은 이 정보를 형인 라지 라자라트남에게도 전달한 것으로 보였다. 갤리언 펀드도 렌간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애리스 그룹 주식을 100만달러 이상 공매도 했기 때문이었다.

SEC의 책임자인 산제이 와드와(Sanjay Wadwha)는 UBS와의 미팅을 끝낸 후 약간 고민했다. 세드나 펀드를 조사했지만, 사실 세드나는 별 볼 일 없는 펀드였다. 그러나 세드나의 설립자인 렌간 라자라트남의 형이 당시 50억달러 규모의 대형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라지 라자라트남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갤리언 펀드는 당시 놀라운 수익률을 자랑하며 월가에서 제일 잘나가는 펀드 중 하나였다.

와드와는 라자라트남과 갤리언 펀드를 검색해 보았다. 그는 언론에서 라자라트남의 놀라운 수익률을 높이 평가하는 글을 발견했다. 이쪽 분야에 남다른 감각을 가진 와드와는 라자라트남의 놀라운 수익률과 언론의 칭찬 일변도의 기사에서 무언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와드와는 라자라트남이 언론의 기사처럼 탁월한 헤지펀드 매니저인지, 아니면 냄새를 풍기는 범죄자인지 헷갈렸다. 대형 펀드인 갤리언이 세드나의 의혹 있는 거래를 따라 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인가? 존 문 변호사의 제보처럼 어딘가 구린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때가 라자라트남과 갤리언 펀드가 SEC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서 SEC의 기나긴 추적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2007년 6월 7일, SEC는 라자라트남에게 로우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에 위치한 SEC 뉴욕 본부로 출두해 줄 것을 요청했다. 라자라트남은 SEC 사건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로펌인 셔만 앤 스털링의 변호사 2명과 함께 SEC를 방문했다. SEC의 조사책임자는 그와 같은 인도계 출신인 산제이 와드와(Sanjay Wadwha)였고 SEC 변호사 2명이 동석했다.

조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와드와는 라자라트남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SEC에 소환되어 온 사람 중에서 그렇게 확신에 차서 떠드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SEC 조사관들이 라자라트남의 의혹 있는 거래를 조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라자라트남이 어떻게 자신이 월가에서 성공적인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었는지 장광설을 늘어놓는 자리가 된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내부자거래 의혹에 대해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그의 펀드가 돈을 번 이유는 그가 똑똑했고, 스마트한 사람들을 고용했고, 그들에게 아주 좋은 보수를 지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갤리언 펀드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헤지펀드로 발전하게 된 배경으로 ‘모자이크 이론(Mosaic Theory)’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모자이크 이론이란 명성 높은 투자자인 필립 피셔(Phillip Fisher)에 의해서 개발된 것으로 1958년에 출간된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보통주와 보통이 아닌 이익>(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에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피셔는 이 책에서 주식 투자를 모자이크 작업과 비교하면서, 실제 투자 과정을 산업이나 주식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여러 소문들을 모은 결과를 토대로 주식을 살 것인지 팔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와드와를 비롯한 SEC 조사관들이 볼 때 라자라트남이 떠드는 모자이크 이론은 그의 불법거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수단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만약 모자이크 이론이 그렇게 현실적으로 강력한 투자 이론이라면, 왜 다른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비롯해서 투자 전문가들은 돈을 못 벌고 있단 말인가? 그들은 모자이크 이론도 모르고 월가에서 트레이딩하고 있다는 말인가?

사실, 와드와를 비롯한 SEC의 조사관들이 라자라트남을 소환해서 조사를 벌일 때만 해도 이 사건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내부자거래 스캔들로 발전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