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월 예고한 대로 이달 말로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하기로 했다.  출처= InfoHub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13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예고한 대로 이달 말로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하기로 했다.

ECB는 지난 6월, 매달 300억 유로의 자산매입 규모를 10월부터 150억 유로로 줄인 뒤 연말에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ECB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장기적인 경제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3월부터 매달 600억 유로 규모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실시해 오다, 올해 1월부터 매입 규모를 300억 유로로 축소했다.

그동안 ECB가 자산매입 프로그램에 투입한 자금은 2조 6000억 유로(3320조원)에 달한다. ECB는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하더라도 만기도래하는 모든 보유자산의 재투자는 첫 금리 인상을 시작한 이후에도 상당기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ECB는 또 기준금리를 현행 0%로 유지하고,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현행 -0.40%와 0.25%로 동결했다. 또 적어도 2019년 여름까지 현행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ECB의 양적완화가 남긴 것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회의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믿지만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약하다"고 인정했다. 그는 무역긴장, 지정학적 혼란, 금융시장 변동성을 꼽으며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고도 언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각), 지난 4년 동안 ECB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론 국가 간 성장 격차를 낳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ECB는 2015년 3월부터 2조 6천억 유로 규모의 자산을 매입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목표는 다른 주요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마찬가지로 디플레이션 리스크를 낮추고 물가상승률을 2% 수준으로 회복시켜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WSJ은 "그런 점에서 ECB 자산매입의 성과는 혼재됐다"며 "물가가 안정적으로 상승했고, 유로존 경제도 더 탄탄한 발판을 마련했지만, 독일은 평균 이상으로 성장한 반면 이탈리아는 뒤처졌다"고 진단했다.

실업률도 지난 몇 년간 낮아졌지만 유로존 회원국 간 실업률 편차는 더 벌어졌다. 미국과 비교하면 유로존 전반적인 실업률 또한 여전히 높은 상태다.

인플레이션 면에선 ECB의 자산매입 정책이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015년 초 하락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ECB의 연율 목표치인 2% 근방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회원국 전반에 걸쳐 오르고 있다.

물가와 경제성장률 외에 ECB의 양적완화 정책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영역은 유로화 환율이다. ECB가 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유로화를 대규모로 신규 발행하면서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게 됐고 독일 등 수출주도형 국가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최근 ECB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매입 프로그램으로 유로-달러 환율이 1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WSJ은 "ECB의 자산매입 정책으로 유로존 국채 스프레드(금리 격차)도 좁혀졌지만 최근 독일과 이탈리아 등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스프레드는 다시 확대됐다"며 "ECB가 2조6천억유로 규모로 자산을 매입했더라도 정치적 민감도는 여전히 수익률 곡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 미국은 2014년 11월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종료했고, 2017년 10월에 이를 축소하는 이른 바 테이퍼링(tapering)에 들어갔다.    출처= Money Channel

미국은 2014년에 양적 완화 종료

양적완화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충격에 빠진 미국은 2009년부터 3차례에 걸쳐 4조 달러가 넘는 돈을 시장에 풀었다. 실업률이 치솟는 등 모든 경제지표가 극도로 악화되자 내린 결단이었다.

금융위기가 무분별한 주택담보 대출이 원인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양적 완화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추가로 내려가는 상황을 겨냥했다. 돈을 무제한으로 풀면 은행이 대출할 수 있는 자금이 풍부해지고 그 결과 낮은 금리에 주택담보대출을 해줄 수 있다. 이는 주택 수요를 늘리고, 결과적으로는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주택 가격 상승은 민간 소비를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고용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됐고 그 덕에 신흥국도 수출 증가라는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계속될 수 없다. 경제가 회복된 후 시장에 풀린 달러가 인플레이션이라는 독(毒)으로 돌아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2014년 11월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종료했고, 2017년 10월에는 이를 축소하는 이른 바 테이퍼링(tapering)에 들어갔다. 여기에 2015년 12월 금리 인상에 돌입하면서 제로 금리 시대를 마감했다. 위기에 대응하느라 지나치게 낮췄던 금리를 정상화시키는 작업이다.

이후 미국은 2016년에 다시 한 차례, 2017년에 세 차례, 2018년 9월까지만 세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미국의 기준금리는 2.0~2.25%까지 올라 금융 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건 아무래도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올해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2.8%로 보고 있다. 또 실업률 전망치는 3.6%로 ‘완전고용’에 가깝다.

연준이 올해 4차례 인상을 예고했기 때문에 오는 18~1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25~2.50%로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그러나 연말 들어 미중 무역전쟁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점차 확대되면서 연준이 12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수 있다는 전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 일본 은행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자산 매입 속도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출처= Nikkei Asian Review 캡처

일본도 자산매입 속도 줄이고 있어

미국과 유럽 등이 경기회복에 따라 금융정책을 정상화하는 가운데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6일, 일본의 경제 상황에서 당장 출구전략을 논의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재차 강조했다.  

구로다 총재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에 벗어나는 문제를 당장 의논할 때가 아니라면서 2% 물가안정 목표 달성을 위해 현행 완화정책을 착실히 견지할 방침을 거듭 밝혔다.

구로다 총재는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5년 동안 디플레가 이어진 사실을 들어 "물가안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금융완화 실시가 불가피했다"며 단기금리 인하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양적 질적 금융완화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구로다 총재는 "일본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2% 물가안정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 이를 실현하려면 현재의 강력한 금융완화를 끈질기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자산 매입 속도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연간 90조엔에 달하던 자산 매입 규모는 지난 7월 이후 40조엔 대로 줄어들었다. 연준의 긴축 기조가 이어진다면 일본은행은 내년에 양적완화를 종료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전문가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