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아르헨티나 정상회 회담 이후, 중국이 합의 이행 조치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출처= Open Pape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외견상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확연히 자세를 낮추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애당초 중국이 불리한 전쟁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지난 1일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회담 이후, 미국이 추가 관세를 잠정 유보하고 90일 간의 휴전 협상을 갖기로 하면서, 중국이 자동차 관세 인하, 대두 수입 재개, 중국 제조 2025의 수정 등 후속 조치를 속속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 증시 혼조세

대다수 전문가들이 미중 무역 전쟁이 세계 경제의 최대 변수로 지적하고 있듯이, 미국 증시는 미중 무역 관련 소식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미중간 무역협상 진전 상황에 따라 울고 웃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3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중국이 50만톤의 미국산 대두를 구매했다는 반가운(?) 소식과, 양국이 마감시한인 내년 3월 1일까지 무역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월가의 비관적(?) 전망이 엇갈리면서 혼조세를 보였다.  

13일(현지시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일대비 70.11포인트(0.3%) 오른 2만4597.38로 거래를 마쳤다. S&P500지수는 전일대비 0.53포인트(0.02%) 내린 2650.54로 장을 끝냈다. 유틸리티(0.9%), 필수소비재(0.7%) 등은 올랐지만, 재료(-1.1%), 금융(-0.6%) 등은 떨어졌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전일대비 27.98포인트(0.4%) 떨어진 7070.33으로 마감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미중간 무역협상이 시장변동성을 확대하는 주요인이어서 무역합의가 도출될 때까지는 변동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칼리버파이낸셜파트너스(Caliber Financial Partners LLC)의 패트릭 할리 대표는 "미중간 무역긴장은 변동성을 일으키는 최대의 요인"이라며 "투자자들은 무역협상에 대한 최근 긍정적인 뉴스를 좋아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합의가 나올 때까지 변동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관세 인하

아르헨티나 정상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현행 40%인 자동차 관세를 없애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백악관 참모들은 이를 부인했고 중국도 인정하지 않아 혼선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무역 협상의 중국 쪽 대표인 류허 부총리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의 첫 화상회의에서 미국산 자동차 관세를 현행 40%에서 15%로 낮추는 안을 제시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익명을 요구하며, 관세 인하 시기 등 세부 사항이 담긴 공식 문건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와 무역대표부는 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中, 미국산 대두 수입 재개?

로이터통신, CNBC 등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중국 시노그레인(Sinograin) 등 국영기업들이 이날 미국산 대두 50만톤, 금액으로 약 1억 8000만 달러(2000억원)어치를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13일, 미국 대두수출협회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수입업체들이 지난 24시간 동안 미국산 대두 150만~200만t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미 대두수출협회는 "이는 미국 생산자들에게 분명히 긍정적인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콩 시장에 복귀했다"면서 "오늘 방금 중국 측이 엄청난 양의 콩을 사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중국은 대두 최대 수입국으로 미국이 수출하는 물량의 62%를 책임져왔다. 하지만 지난 7월 중국이 미국산 대두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대두 수출량은 현재 전년 대비 98%나 줄어들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측이 추가적으로 대두 수입을 늘릴 것"이라면서 "양국간 무역분쟁이 완화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전했다.

그러나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3일, "중국이 미국산 대두 구매를 재개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샤먼 중허산업(厦門 中核産業)의 익명의 관계자는 글로벌타임스에 “미국산 대두를 구매를 재개하기보다 좀 더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면서 “미국산 대두가 중국 항구에 도착하더라도 효율적으로 통관할 수 없다면(25% 관세)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CNN도 13일, 미 농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적어도 아르헨티나 정상회담 이후 12월 6일까지는 중국이 미국산 대두를 구입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 ‘중국제조 2025’는 로봇·우주항공·신재생에너지·의료·반도체 등 10대 첨단 기술 분야를 2025년까지 정부 주도로 집중 육성해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시진핑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출처= KINGSTAR

중국제조 2025 궤도 수정?

‘중국제조 2025’는 로봇·우주항공·신재생에너지·의료·반도체 등 10대 첨단 기술 분야를 2025년까지 정부 주도로 집중 육성해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시진핑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이를 통해 중국산 핵심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려 첨단산업의 자립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이 제조 2025를 위해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첨단 기술 이전을 강제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해 왔다.

WSJ은 지난 12일, 중국 정부가 ‘중국제조 2025’를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 계획을 10년가량 늦추고, 시장을 더 개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새 프로그램을 내년초 무역협상 때 내놓을 것이라는 것이다.

WSJ은 "중국의 새 프로그램이 미국이 불평하던 것들을 충분히 담고 있어야만 트럼프 행정부와 외국 기업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술 훔치기’, 반드시 이행 검증 필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아르헨티나 정상 회담 합의는 “무역 전쟁을 90일간 멈추는 대신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에너지·공산품 수입을 늘리고, 중국 쪽이 외국 기업들에 강요해온 ‘의무적 기술 이전’이나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협상 개시”로 요약된다. 사실상 물품 수입 증가보다는 지재권 침해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중국의 ‘중국제조 20205’ 수정 계획에는 '경쟁 중립' 개념에 기초해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국영기업과 사기업, 외국 기업 간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드는 정책도 마련하면서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면 포기’를 요구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를 수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우리는 중국이 첨단기술에 더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정말로 반대하는 것은 기술 기밀을 훔치거나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행태”라고 밝혔다. 중국의 기술 굴기가 아니라 기술 도둑질이 문제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로스 장관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중국이 최근 ‘중국제조 2025’라는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있지만 ‘중국제조 2025’를 많이 언급하지 않는 게 그것을 포기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해외 기업의 기술 이전 강제, 지식재산권 탈취, 중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행위를 근본적으로 시정하지 않고 문패만 바꿔 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로스 장관은 "중국과 무역협상이 타결되려면 검증(verification) 절차가 당연히 있을 것이고, 이행 가능한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하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저지른 실수는 중국이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 사용할 실질적인 강제이행 메커니즘을 도입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아르헨티나 정상 회담 합의는 사실상 중국의 미국 물품 수입 증가보다는 지재권 침해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출처= The Patriot Post

시주석의 딜레마

시진핑은 2012년 11월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중국 국가 주석에 올랐다. 이후 일대일로(一帶一路)등 중국몽을 내세우며 자신을 ‘21세기 마오쩌둥’임을 자처하더니, 지난 3월 전인대에서 ‘주석의 2연임’ 헌법 조항을 철폐해 3연임, 아니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런 시진핑이 집권 이후 최대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4일 보도했다. 미국에 대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국내 강경파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 양보는 ‘중국몽’으로 한껏 고양된 중국의 민족주의에 상처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은 최근 약해 보이지 않게 양보하는 법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아르헨티나 정상회담 직후 미국은 중국의 양보안을 일제히 발표했다. 중국이 대두 등 미국산 농산물을 대거 수입키로 했고 자동차 관세를 인하키로 했으며 지식재산권을 보호키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한동안 이를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자동차 관세 인하를 미국에 제안했다고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이를 두고 SCMP는 국내의 여론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1990대 후반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협상을 할 때 당시 총리였던 주룽지(朱镕基)는 WTO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이유로 ‘반역자’로 매도됐었다.

당시 주룽지 총리는 중국의 양보안을 국내에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국의 양보안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웹사이트에 게재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자, 중국내 강경파들은 주룽지 총리를 ‘반역자’ ‘매국노’로 매도했으며, 실제로 총리직을 내놓아야 할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데이비드 즈웨이그 홍콩 과기대 교수는 “중국 당국은 중국의 대미 양보안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이는 강경파들을 부추겨 내부분열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일대일로(一帶一路)등 중국몽을 내세우며 자신을 ‘21세기 마오쩌둥’임을 자처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이후 최대의 딜레마에 빠졌다.    출처= Lima Charlie News

골드만 삭스의 비관적 전망, 왜?

이런 상황에서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들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90일 휴전' 기한인 내년 3월 1일까지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고 CNBC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정상 회담의 합의에 따라 미국이 추가관세를 유보하고 중국이 후속 조치를 발표하는가운데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3월 1일까지 협상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며, 기한을 연장해야 할 수도 있는데, 긴박한 상황에 비추어볼 때 양측 협상이 기한 연장에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수입업자들은 추가 관세 인상 유예 마감일 3월 1일이 다가오기 전인 1월과 2월에 서둘러서 물품 주문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앞서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지난 7일,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좋은 진전이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90일간의 관세전쟁 휴전기간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90일 시한의 휴전에 들어간 가운데, 미국 측 무역협상단장이 골드만 삭스 출신인 온건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에서 강경파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교체되자,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중국에 대한 더 강한 압박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견됐다.  

정상 회담 이후 중국의 적극적인 합의 이행 조치 발표로 모처럼 맞은 해빙 분위기에 골드만삭스가 비관적 전망을 내놓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