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의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는 저서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통해 1000년 도시 베네치아의 몰락을 두고 "내가 이성적이기 때문에 상대방도 이성적일 것이라 믿었던 것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패착"이라고 말했다.

석호의 어부 집단에서 십자군 전쟁의 여파도 영리하게 돌파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이 대국 병립의 시대를 맞아 터키의 공세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나폴레옹 시대에 멸망에 이른 과정을 보면 그의 말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모두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간단한 길을 제시하면 상대방도 당연히 동의할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 애초에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를 두고 어떻게든 '이성적인 대화'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베네치아 공화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2018년 잔인했던 시기를 보냈던 네이버와 카카오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 한성숙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이제는 드루킹만 생각나" 네이버의 잔인했던 나날들
최근 네이버는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에 소상공인을 둘러싼 스몰 비즈니스 전략을 강하게 구동하고 있다. 내년 미국에서 열리는 CES 2019에 퀄컴과 협력해 출사표도 던질 예정이며 그 외 다양한 ICT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네이버랩스의 존재감과, 스타트업과의 연결고리도 고무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네이버의 행보는 그 자체로 의미있지만, 사실 올해 네이버의 가장 큰 이벤트는 모바일 첫화면 개편이다. 모바일 첫화면의 콘텐츠를 대부분 비워내고 그린닷이라는 인터랙티브 버튼을 만들어 자체 생태계로의 유입을 끌어내는 전략을 보여줬다. 네이버의 개편은 검색 인터페이스를 터치로, 콘텐츠는 스와이핑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볼 수 있다.

네이버의 모바일 첫화면 개편이 순수하게 네이버의 사업적 의지로만 단행됐다면 모두가 즐거운 해피엔딩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있다. 네이버 모바일 첫화면 개편의 근원은 올해 ICT 업계를 뜨겁게 달군 드루킹 사태에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콘텐츠 임의 배치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구글 등 글로벌 ICT 기업과의 역차별 논란을 제기하며 진짜 고민도 털어내는 한편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전략을 가동했으나, 결과적으로 반쪽 성공으로 끝났다. 네이버가 플랫폼 공공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비판이 여전한 가운데, 올해 초 드루킹 사태까지 발목을 잡았다.

드루킹은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대규모 댓글 공작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 네이버만의 문제는 아니고 다음과 네이트 모두 해당되지만 국내 1위 포털인 네이버가 가장 큰 논란에 휘말린 것이 사실이다.

드루킹의 '매크로 신공'에 네이버가 뻥뻥 뚫린 대목은 분명 논란이다. 이는 네이버 입장에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매크로에 힘없이 뚫리는 네이버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 네이버 관계자가 "매크로는 원래 불법이니까, 그걸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점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한 대목은 지금도 신선하다. 매크로가 불법인 것은 맞지만, 이 지점은 분명 네이버의 잘못이다.

네이버는 결국 뉴스 댓글 정책을 바꾸고, 콘텐츠 노출도 조절하는 초강수에 돌입했다. 그 연장선에서 모바일 첫화면 개편이 단행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이번 개편이 꼭 드루킹 논란 때문에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으나, 진실은 모두가 알고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안을 흐리는 이들이 본격 개입, 오히려 진짜 현안을 흐리게 만든 대목이다. 드루킹 사태가 터지자 야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네이버 분당 정자동 사옥에 우루루 몰려갔다. 그들이 언제부터 포털 플랫폼 공공성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르겠으나, 야당은 분당 정자동 사옥에서 긴급 의원총회까지 열고 드루킹 사태로 촉발된 네이버의 책임을 강조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심각한 대목은 이 사안을 무리하게 정치적 분쟁으로 엮으려는 행보다. 실제로 야당은 지난 4월 네이버 분당 정자동 사옥으로 달려가 네이버 출신인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과 관련된 음모론을 제기했다. 윤 수석과 네이버가 드루킹 댓글공작을 묵인하고, 그 대가로 윤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논리다.

이러한 논리의 행진은 국회 정식 토론회에서도 이어졌다. 5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포털 사이트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당시 강지연 자유한국당 수석전문위원은 “포털 뉴스 아웃링크는 물론, 네이버 랭킹뉴스 전체를 재고해야 한다”면서 “뉴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기며 여론 왜곡 현상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 모바일 화면의 추천 채널 43개 중 미디어오늘, 프레시안 등 좌편향 매체가 무려 4개가 있다. 보수 매체는 데일리안만 유일하게 있고, 강력한 보수 매체인 뉴데일리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확한 내막은 확인되지 않지만, 이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끌고가려는 야당의 행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포털 사이트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네이버가 드루킹 사태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타당하며, 책임을 지는 것도 옳지만 이를 무리하게 정치적 이해득실로 재단할 경우 오히려 진짜 논의하고 고민해야할 현안은 묻히고 만다. 당장 네이버 문을 닫게 만들면 우리에게 이득이 있을까? 드루킹 사태를 계기로 네이버의 기술적 오류를 바로잡고 확실하게 달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한편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난데없는 이들의 등장으로, ICT적 관점에서 토론에 토론을 거듭해야할 이성의 담론은 순식간에 감성의 영역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네이버는 사실상 체념하는 분위기가 읽히기도 했다. 어떤 정책을 발표해도, 보완책을 고민해도 묻지마 공세가 이어지며 고통을 겪었다. 물론 네이버의 잘못이 분명하고 개선해야 하며 책임을 져야 하지만, 최소한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시시비비를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는 분노를 패스트푸드처럼 나열해 소비시킨 언론의 책임도 크다. 올해의 네이버.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이제는 드루킹만 생각이 난다.

"카풀 논란, 한유총 생각이 나네" 카카오의 잔인했던 나날들
네이버의 드루킹 이슈가 그나마 시간이 지나며 흐려졌다면, 카카오의 카풀 논란은 지금도 찬반이 거센 상황이다.

지난해 풀러스가 유연 출퇴근에 맞는 카풀 운행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위험한 도박을 감행한 후 '우버까지 밀어낸 우리 택시업계가 무엇을 못 하겠는가'라는 일성을 시작으로 택시업계의 반발이 시작됐다. 이후 풀러스의 경쟁사로 활동하며 풀러스의 독단적인 출사표에 덩달아 타격을 받은 럭시는 올해 2월 카카오의 품에 안겼다. 최바다 럭시 전 대표는 합병발표 후 <이코노믹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으로 활동하며 거대한 새력과 맞서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면서 "카카오와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올해 초부터 카풀 서비스 선언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후 차분히 로드맵을 밟아왔다. 그러나 택시업계는 공적인 논의의 장은 모조리 무시하며 심지어 토론회 난입 등 극약처방만 반복했다. 최근 카카오 모빌리티는 카풀 서비스 베타 서비스에 돌입했으나 이 마저도 10일 택시기사 최 모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택시업계는 공세의 수위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다.

택시업계는 최초 카풀앱 반대를 외치며 교통질서 교란, 승객 안전 등 다소 공공적 가치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승차거부 및 여성 승객 성희롱 등 택시 서비스 전반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이런 문제를 가진 택시업계가 무슨 공공적 가치를 논하는가'라는 역풍을 맞았다. 그러자 꺼내든 카드가 생존권 보장이다. 교통질서 교란이나 승객 안전 등 공공적 프레임과 비교하면 다소 '폼'은 나지 않지만 헌법적 가치에 매달리면 방법이 있다고 본 셈이다.

문제는 택시업계의 논리가 대부분 과장됐거나, 사실관계가 틀렸다는 점이다. 하루 2회 출퇴근 시간에만 운행되는 카풀이 택시사업을 고사시킬까? 만약 이 정도로 업계가 고사되면 그 업계에 문제가 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고질적인 사납금, 살인적인 노동강도다. 택시기사들이 업계의 비전을 논하고자 하려면 카카오 카풀이 아니라 택시회사를 찾아가야 한다. '여러개의 택시회사를 거느리면서 사납금이나 팍팍 올리는 분'에게 가야 한다.

정부여당이 택시기사의 처우개선을 골자로 만든 중재안을 택시업계가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카풀은 대단한 ICT 혁명은 아니고, 그 파급력은 당장 택시업계를 흔들 가능성이 낮다. 흔들린다면 사납금 등의 문제가 크다. 이 부분을 바로잡고 최소한의 ICT 플랫폼 기술 적용을 거부한다면 모두가 윈윈이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국민적인 지탄을 받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택시 4단체의 교집합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는 제안에 상대가 묻지마 투쟁만 거듭한다. 베네치아 공화국 외교 담당자의 고민은 남 일이 아니다.

▲ 분신해 숨진 택시기사 최 모씨의 분향소가 보인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내년은 나아지려나"
네이버와 카카오가 직면한 문제들은 쉽게 풀 수 없다. 신뢰의 문제며, 또 뚜렷한 신의 한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문제가 많은데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는 풍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여당과 택시업계는 자기들의 상황에서 자기들의 일을 하는 중이다. 이들은 적폐가 아니며,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결국 내년에도 비슷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힘겨운 싸움이 예상되며, 또 스스로 고치고 비판받아야 할 부분도 많다. 극적인 대타협은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내년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지원은 아니더라도 쓸데없이 발목은 잡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