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교보생명의 주요 재무적투자자(FI)들이 신창재 회장에게 풋옵션을 행사했다. 사측은 해결방안으로 기업공개(IPO)를 선택했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 쓸 수 있는 여타 카드도 마땅치 않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는 신 회장의 낮은 지분율이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끌어들인 백기사로부터 압박을 받는 이유다. 불안한 지배력에 또 다른 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교보생명은 지난 11일 개최한 정기이사회에서 자본확충을 위한 IPO 추진을 결의했다. 그 배경에는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따른 자본 확충 문제도 있지만 FI의 풋옵션 행사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프라이빗에쿼티, 베어링PE, 싱가포르 투자청(GIC) 등 교보생명 FI들은 지난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24%를 인수했다. 거래금액은 1조2054억원이다. 기업가치를 약 5조원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FI들은 지난 10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상대로 2조원 가치의 풋옵션을 행사했다. 해당 지분을 인수가격의 2배에 사들이라는 것이다. 기업가치 기준으로 보면 교보생명은 10조원의 가치를 부여 받아야 한다.

국내 증시는 생보사들의 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장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흥행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공모가를 상회해 승승장구 하는 사례는 드물다.

지난 2017년 상장한 오렌지라이프(구 ING생명)는 해외IR에 주력해 외국인투자자들을 사로잡았다. 상장 직후 주가가 공모가를 상회해 지속 상승한 것은 업계에서 이례적이자 유일한 사례였다. 높은 RBC비율에 힘입어 업계 전반 가치를 높이는 데도 일조했다. 그러나 현재는 오렌지라이프 마저도 공모가를 하회하고 있다. ‘생보사 징크스’는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IPO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가 주를 이룬다. 통상 생명보험사는 PBR(주당순자산), P/EV(주당내재가치) 지표를 통해 기업가치를 산정한다.

PBR 기준 생보사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은 오렌지라이프로 0.65배다. 교보생명의 자기자본이 9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5조8500억원 수준에 그친다.

P/EV를 통한 평가도 안심할 수 없다. EV는 순자산액에 보험계약가치를 더한 것이다. 최근 국내 주요 상장 생보사들의 보험계약가치는 전년대비 2~3배 증가했다. 그럼에도 관련주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한화생명은 신저가를 지속 갱신하고 있다. 교보생명에 P/EV를 적용하면 예상 가치는 더욱 낮아질 수 있다.

사모펀드 풋옵션 행사, 교보생명에 ‘외통수’인 이유

일각에서는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풋옵션 행사가 교보생명의 ‘액션’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교보생명이 기업가치 제고에 적극적이라면 철회도 가능할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생보사 징크스’는 차치하더라도 보험업 전망 자체가 부정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통상 금리상승은 보험사 수익에도 긍정적이다. 운용자산이익률이 개선되면서 이차이익(이율차에 따른 이익)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만기가 긴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관련 이익이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반면, 자산 평가손실과 자본감소는 빠르게 나타난다. 이는 지급여력비율(RBC)을 낮추는 요인이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이익개선 기대감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국내 경제성장률 둔화와 함께 생보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수입보험료 성장률(2014년 7.4%, 2017년 –4.9%)도 낮아졌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경기부진과 시장 포화로 보험산업 성장이 쉽지 않다”며 “그간 투자이익으로 보완했지만 향후에는 이 조차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업 전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질적으로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풋옵션 행사 철회 가능성은 낮다. 리파이낸싱을 통해 조달금리(약 4%대, 배당수익 1~2%)는 소폭 낮췄지만 비용 발생은 지속되고 있다. 보험업 전망이 부정적인 것은 물론 생보사에 대한 국내 시장 평가가 높지 않아 IPO를 통한 자금회수도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창재 회장 입장에서 IPO를 기대할 수 없다면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또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여 경영권을 유지하거나 교보생명 자체를 매각하는 것이다. 매각은 최후의 수단인 만큼 새로운 ‘백기사’를 구하는 것이 경영권 확보 차원에서는 다소 유리하다. 실제로 작년 3월 온타리오교직원연금이 코세어(교보생명 주주)에 지분 2.35%를 넘겼다.

문제는 또 다른 투자주체가 뛰어들어도 교보생명의 가치를 10조원 수준으로 평가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규모가 만만치 않은 만큼 ‘풋옵션’ 재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안정한 경영권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IB관계자는 “롯데손보, MG손보, KDB생명 등 보험사 매물이 시장에 상당수 나와 있다”며 “인수자 입장에서 느긋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보생명이 우량한 것은 사실이지만 회계이슈 등으로 추가 매물이 나올 수 있다”며 “당장 보험업계 딜(deal)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