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상 백지화, 최저임금 인상, 초과 근무수당 비과세, 연금 추가부담 중단.”

2018년 12월 1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항복담화에서 밝힌 내용이다. 하지만 노란조끼 시위대는 닷새 뒤 15일 5차 집회를 강행했다. 참가인원은 4차 집회의 절반 6만 6천 명. 프랑스 정부는 시위인원이 줄었다고 자축했지만, 실상은 송년분위기 때문이었다. 시위대는 과오를 인정한 마크롱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마크롱 대통령의 개선사항이 세금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존하겠다는 ‘상석하대(上石下臺)’ 방식인데다, 중산층 붕괴에 대한 근본적 해결방안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마크롱 대통령이 하야해야 노란조끼 시위가 끝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해법제시에 실패할 경우, 2019년 춘투는 불 보듯 빤하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 최근 긴급현안이 발생했다. 노란조끼를 상대해온 프랑스 경찰이 근무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소위 파란조끼. 패션강국 프랑스 경찰이 파란조끼를 입은 이유도 하나. “못 살겠다. 갈아보자.”

프랑스 경찰노조는 19일을 블랙데이(black day)로 정하고, 긴급 상황 발생 신고 이외에는 어떤 호출도 대응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노란조끼 집회 방어에 대한 피로감에, 2019년 경찰 관련 예산삭감으로 근무여건이 악화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제 노란조끼가 시위를 벌여도, 파란조끼 경찰이 방치하는 극단적 사태도 가능하다.

 

유럽의 입구 프랑스의 지정학적 특수성

한국의 6배인 프랑스는 유럽에서 3번째로 면적이 넓다. 유럽 전체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프랑스는 위로는 독일, 아래로는 스페인, 오른쪽으로는 스위스, 왼쪽으로는 도버 해협 건너 영국과 접해있다. 따라서 프랑스는 유럽의 입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주변 국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다. 예를 들어, 1789년 7월 14일부터 28일까지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 민족주의와 자본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발휘된 사례이다.

2차례의 세계대전도 마찬가지이다.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하며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군이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이어, 프랑스로 진격하면서 본격화되었다. 1918년까지 4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 요인은 파리 직전까지 접근한 독일군을 막아낸 프랑스군이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개전된 제2차 세계대전은 반대였다. 리투아니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군은 1940년 5월 10일에 프랑스를 공략했다. 이후 독일은 여세를 몰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까지 진격해나갔다.

프랑스가 늘 승부처였다. 독일은 프랑스 마지노를 공략해서 승기를 잡았고, 반대로 연합군은 프랑스 노르망디를 탈환하며 반격의 빌미를 찾았다. 프랑스를 차지하는 쪽이 늘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는 전황의 향방을 감지하는 시금석이다.

 

노란조끼 시위와 마크롱 리더십

노란조끼 시위는 현재까지 4명의 사망자와 8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상황이 장기화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노란조끼 사태 수습 과정은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위기 극복에 실패하면, 프랑스는 대혼란이다.

그런 프랑스에서, 최근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프랑스 국민 지지도가 발표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중도성향 국민연합(RN)의 지지도가 2017년 대통령 선거의 경쟁자였던 극우 정당 마리 르펜이 이끄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을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내용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극적 전환기가 찾아온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보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 국민연합의 지지도는 21%, 레퓌블리크 앙마르슈는 19%에 불과하다. 지난 8월 조사에서, 레퓌블리크 앙마르슈가 20%, 국민연합이 17%였던 것과 비교하면 역전은 틀림없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도는 겨우 20% 수준에 불과하다. 이것마저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때보다 3%가 준 것이다.

다수 출마자로 인해, 항상 2차 투표를 하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 2017년 5월 7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 제2차 투표에서, 당선자 마크롱은 66.06%, 패배자 르펜은 33.94%였다. 마크롱의 당선은 압승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맹점이 숨어있다.

4월 23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은 24.01%, 르펜은 21.30% 득표였다. 3위 탈락자 극우 공산당 프랑스와 피용의 20.01%와 4위 탈락자 극좌 장뤽 멜랑숑의 19.58%를 감안하면, 의원 하나 없는 신생정당 국민연합의 마크롱의 당선은 이민자 출신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보다 더 나폴레옹적이었다. 르펜, 피용, 멜랑숑과 국민 3분의 2가 프렉시트를 원했지만, 당선자 마크롱은 프랑스의 반프렉시트를 결정했다.

 

노란조끼 시위가 유럽 공동체에 끼칠 파장

2017년 5월 7일의 대통령 선거 이후 정확히 1년 반 만에, 프랑스는 마크롱의 신비에서 깨어난 듯하다. 노란조끼 시위로 국정혼란을 겪고 있고, 그 혼란이 헝가리, 세르비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로까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노란조끼 시위가 마크롱 대통령 탓이라고 맹비난하며 확산을 막지만, 노란조끼 시위는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이집트까지 전달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노란조끼 시위는 왜 주변 국가로 전달될까? 노란조끼 시위는 EU 국가들이 한 결 같이 겪고 있는 공동의 문제 중산층 붕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EU 수장 메르켈 총리의 일방주의, 난민 할당제와 테러 위협,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최저생계비 문제, 유럽 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국가부채, 4차 산업혁명으로 양산된 실업자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란조끼 시위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란조끼 시위대의 요구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효과적인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럽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마크롱 대통령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노란조끼 시위는 프렉시트 요구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프렉시트는 경제 문제가 원인이 되어 제기된 방안이었다. 유럽 금융위기로 스페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EU 퇴출위기를 겪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가 동시에 탈EU를 외쳤던 것이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강행했지만, 프랑스의 프렉시트와 이탈리아의 이탈렉시트는 잠시 소강상태였다. 하지만 중산층 붕괴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유사 이래, 어떤 정부도 국민을 이긴 전례가 없다. 제정 러시아 붕괴도 경제 때문이었고, 그렇게 탄생한 소련 분열도 경제 문제가 원인이었다. EU의 탄생이 경제효과 기대에서 비롯됐다면, 반대로 EU의 붕괴는 경제효과 상실에서 비롯될 수 있다. 중산층 붕괴의 신호탄 노란조끼 시위는 그래서 무섭다. 노란조끼 시위가 파란조끼 시위와 합세해, 프렉시트로까지 확산될지 주목해야 한다. 프렉시트는 EU 붕괴의 교두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