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기아차 및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사장단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차그룹은 주로 매해 성탄절 전후로 정기 인사를 진행해왔지만 올해는 시기를 앞당겼다. 지난 9월 그룹 경영을 총괄하게 된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 체제에 힘을 실어 서둘러 내년 경영계획 등을 서둘러 준비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몽구 회장을 보좌하던 그룹의 핵심 임원들이 2선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짐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안정 속에 경영 혁신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앞서 현대·기아차는 올해 북미, 유럽, 인도, 러시아 등에 권역본부를 설립하고 현장 중심의 자율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날 인사로 전문성이 검증된 경영진들이 주요 계열사에 전진 배치되면서 자율경영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2선으로 물러난 부회장단

현대차그룹이 12일 단행한 그룹 사장단 인사로 의사결정 체계가 정의선 수석부회장 중심으로 재편됐다.

▲ 김용환(金容煥) 현대제철 부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눈에 띄는 인사는 먼저 김용환(62)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현대제철 부회장 보직 이동이다. 김용환 부회장은 영업통으로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통한다.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정 수석부회장 대신 현대차그룹을 대표해 북한에 다녀오기도 했다.

김용환 부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 석사와 동국대 무역학 학사를 나왔다. 현대자동차 기획조정실장부터 구매·감사실·전략기획담당·법무실·글로벌경영연구소·인재개발원 담당 등에서 사장과 부회장 직책을 역임했다.

김용환 부회장은 입사 이후 영업 일선에 나서면서 회사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만,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8년 넘게 부회장만 맡아와 세대교체를 위한 인사라는 평도 있다. 현대차그룹에는 정 수석부회장을 제외하고 6명의 부회장이 있다. 현대차에는 윤여철(66·국내생산), 김용환(62·전략기획), 양웅철(64·연구개발), 권문식(64·연구개발·인사) 등 부회장 4명이 있다. 또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과 현대제철 우유철(61) 부회장이 있다. 주요 계열사 사장단은 20여명 수준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정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을 제외하면 전문경영인 부회장은 김용환, 양웅철, 권문식,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과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등 5명으로 좁혀진다. 이들 가운데 내연기관 R&D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담당 양웅철 부회장과 연구개발본부장 권문식 부회장은 고문으로 위축됐다. 현대제철을 9년간 맡아온 우유철 부회장은 현대로템 부회장직으로 옮기면서, 현대제철은 김용환 부회장 체제로 돌입한다. 우유철 부회장은 과거 현대로템에서 기술연구소장으로 근무했다.

다만 현대차그룹 부회장 중 최고령자인 윤여철 부회장은 자리를 지켰다. 윤여철 부회장은 국내생산 담당 부회장으로 노조 관련 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전략기획과 홍보, 법무총괄 등의 업무를 두루 거친 인물이다.

이외에 생산품질담당 여승동 사장, 현대모비스 임영득 사장, 현대다이모스 조원장 사장, 현대제철 강학서 사장, 현대로템 김승탁 사장 등은 고문에 위촉됐다. 현대엔지비 오창익 전무는 자문에 위촉됐다.

R&D 수뇌부 교체, 현대차그룹 방향성 확인

연구개발(R&D) 부문 인사도 핵심이다. 그룹의 ICT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부와의 협업을 지속 강조해 온 정 부회장 의지가 반영됐다. 또 모빌리티와 친환경차, 고성능차 사업에 전념하겠다는 인사로도 해석된다.

▲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 현대자동차 사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먼저 알버트 비어만 사장(61)의 보직 이동이다. 비어만 사장은 신임 연구개발본부장을 맡았다. 연구개발 총책임자 자리에 외국인 임원을 앉힌 것은 현대차그룹 역사상 처음이다. 신임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은 앞으로 자율주행차, 커넥티드 카 등 혁신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은 고성능차 R&D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BMW에서 고성능차 개발을 담당했다. 특히 BMW의 고성능 자동차 브랜드인 M의 부사장을 지냈다. 현대차그룹에서 알버트 부사장은 자사 고성능차 브랜드인 N 시리즈 개발에 참여했다. 알버트 부사장은 현대차그룹에 2015년 4월 합류했다. 합류 후 고성능차 사업의 성공적 시장 진입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외국인 임원을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한 것은 실력 위주 글로벌 핵심 인재 중용을 통한 미래 핵심 경쟁력 강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최근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을 디자인최고책임자(CDO)에,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을 상품전략본부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이밖에 모밀리티 사업분야를 담당해온 현대오트론 조성환 부사장이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본부장으로 발령됐다.

▲ 지영조(池永朝) 현대자동차 사장. 사진=현대자동차 그룹

현대차그룹의 최근 인사를 보면 R&D와 기술 부문 인사를 대거 들이면서 승진자 비중이 늘려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전략기술본부장 지영조(59)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영조 부사장이 승진한 것은 외부개방을 강화하려는 사전포석으로 해석된다. 지영조 사장은 삼성전자 출신으로 지난해 현대차그룹에 합류했다. 지영조 부사장의 사장 승진으로 전략기술본부 위상도 한층 강화됐다. 정 부회장이 강조한 스마트 모빌리트 솔루션 제공 업체로의 전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로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로봇, AI 등 미래기술에 대한 핵심과제 수행에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계열사 사장단들이 50대로 구성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신임 현대로템 대표이사에 내정된 이건용 부사장을 비롯해 현대다이모스-현대파워텍 합병 법인의 여수동(57) 사장, 신임 현대오트론 문대흥(58) 사장, 현대케피코의 방창섭(58)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 등은 모두 50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최근 중국 및 해외사업 부문의 대규모 임원 인사에 이어 그룹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그룹 차원의 인적 쇄신을 추진하기 위한 인사”라며 “특히 전문성과 리더십이 검증된 경영진들을 주요 계열사에 전진 배치함으로써 대대적인 인적 쇄신 속에서도 안정감과 균형감을 유지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