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겨울인가 후배가 일한다는 영월에 간 적이 있다. 후배는 서울에서 음식점을 크게 하다가 좀 더 생산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끝으로 2년간 연락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내려간 영월에서 나를 맞은 건 아직 공사중인 작은 흙집 앞에서 웃고 있는 그였다. 우리는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하고 나는 그가 준 작업복을 입고 공사중인 흙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오후까지 나는 그와 함께 벽에 진흙을 넣는 일과 벽과 천정 사이에 생긴 틈을 진흙으로 메우는 작업을 했다.

일을 마친 후 우리는 흙집이 위치한 농장주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농장주인과 함께 외국인 할머니 한 분이 마당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시골 농장에 서양 외국인 할머니가 계시는게 좀 황당해서 말을 걸었더니 우프(WWOOF)라고 하는 단체를 통해 스페인에서 이 농장으로 여행을 온 것 이라고 하셨다. 우프는(WWOOF,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된 체험 운동으로 신뢰와 지속가능한 글로벌 커뮤니티 구축을 목표로 비화폐 교환에 따른 문화 및 교육 경험을 제공하는 글로벌 NGO 다. 이들은 유기농가 및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농장과 자원봉사자를 연결시켜주는 네트워크로, 우퍼라고 불리우는 자원봉사자들이 하루 4-6시간 농장의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현재 세계 143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http://wwoofkorea.org/home 에서 발췌).

그날 저녁, 우리는 한가지씩 일을 맡아 음식을 하고 식탁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모두가 다 다른 이유로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추구하는 것은 동일했다는 것 이다. 그것은 바로 대안적인 삶에 대한 열망 이였다. 답은 없지만 지금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불안 해서다. 지금의 나 조차도 잃어버리게 될 까봐. 당연한 이야기지만 근본을 바꾸지 못한 상태에서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바꾸는 순간 남보다 더 뒤쳐질 것 같은 걱정들이, 나의 결정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앞길을 조금만이라도 먼저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후배는 앞길을 볼 수 없었음에도 그런 용기를 낸 사람이다. 주위에 있는 그의 친구들도 그렇다. 나는 궁금해 졌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들어보면 그 답변이 참 명쾌하다. 그냥 하고 싶어서 했단다. 저지르고 났더니, 경쟁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고 많이 웃게 되어서 기뻤다고 말한다. 이들의 삶에서 빠진 것은 돈 하나 밖에 없는데 그래서 더 즐겁다고 한다. 물론 공동체내에서 작은 갈등도 있지만 더 큰 즐거움이 있기에 살만하다고 이야기 하는 그들을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저성장의 출발점을 지나고 있는 지금 나도 곧 어떤 식으로든지 그런 결정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지금의 내 직업에서 졸업해야 하고 성장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삶의 방법과 태도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다.

24년차 광고인으로 살고 있는 나는 그래서 이제부터 내 직업을 광고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존재이유찾기’ 였다. 복잡한 현상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을 찾고, 사람들의 행동 데이터와 그 원인을 매칭시켜 심플하고 흥미있는 언어로 그 브랜드의 존재가치를 재정리 해 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한 일이었다. 다만 그것들이 광고라는 직업적인 포맷으로 나타난 것 이였을 뿐이다. 그럼 광고가 아닌 다른 포맷으로 내 일을 풀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려고 한다.  

겨우 한나절이지만 내게 흙 집 노동을 유도했던 그 후배는 지금 유기농 빵을 만드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그 예비 모임을 12월 16일에 경기도 포천에서 한다고 한다. 그 곳에는 그의 귀농학교 동기들과 우퍼 회원들 그리고 나와 같은 선후배 몇명이 동참한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이들의 활동을 알릴 수 있는 소셜매체를 운영해 주기를 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는 그들이 만든 공동체의 존재이유인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이라는 관점과, 일반인인 우리가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요소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삶의 형태에 대한 답을 같이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서 이 공동체의 역할을 확장 시키려고 한다. 내가 해보지 않은,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을, 먼저 해본 사람들에게 현장에서 직접 듣는 일. 이 만남을 통해서 2-3년뒤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