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말 타계한 미국의 부시(94) 전 대통령의 품위있는 장례 절차가
한 주 이어지며 많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 내 마음을 콕 찌르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와 오래 동안 알고 지내온 레빈슨 목사의 헌사입니다.
‘그는 바버라 여사와 1953년 세 살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딸 로빈을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같은 기독교인 입장에서 그가 소천해서 먼저 가있는 딸을 다시 만날 것을 믿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고, 소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65년 전에 잃은 딸에 대한 아픔은 평생 절절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며 나의 아픈 개인사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31년전 두 살 아래 남동생을 천국에 보낸 일입니다.
요즘도 가끔씩 아우 생각에 비통에 젖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마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모친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모친이 제일 아끼는 막내로서 집안에서 귀한 존재였고,
잘 성장해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여러 군데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덜컥 병에 걸렸고, 국내 최고 병원이라는 데서도 병명을 못 찾고,
결국 1년여 투병 끝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당시 모친을 뺀 모두가 직장과 생활에 매여 혼자 거의 간병에 매달렸습니다.
일을 치룬 후 모친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간병을 거의 혼자하게 두었던 것처럼 그일 후에 또다시 혼자로 남겨두고,
우리 모두는 바쁘다는 이유로 생활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해에 나도 결혼을 했습니다.
모친도 외형적으로는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또 그렇게 시간이 갔습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잘 버티신다 생각했고, 동생 얘기를 가급적 피했지요.
지금도 외형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부친이랑 이인삼각하며 조석을 책임지고 두 분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80대 중반이라는 나이로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상처가 몸과 마음에 스며
심장병, 불면증, 혈압, 당뇨에 위암과 친병(?)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돌아봅니다. 십대 후반에 양가 아버님의 결정으로 얼굴도 모르는 학생 남편과 결혼,
시골로 왔습니다. 나와 같이 컸던 육촌 형제에게 젖을 물리라는 호랑이 시아버지의 말을
따랐던 엄혹한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넘어온 인생였음에도,
아들을 잃은 그 순간 거기서 모친의 인생은 멈추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무엇보다 개인으로서 누리고, 성장하고, 즐거워 할
의욕을 잃은 듯 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아픔은 개인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 아픔이고 상처였습니다.
아프고도 죄송하지요. 더 애를 썼어야 하는데..
부시가 세 살 이쁜 딸을 그곳서 재회하듯이
모친도 훗날 28세의 사랑하는 아들과 재회하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날이 오기까지 이 세상에서도 조금은 마음 편하게 살며
남편과 자식들과, 또 며느리와 손자들과도 진정한 만남을 했으면 하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