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6월 현대로템이 수주한 대만 철도관리국 교외선 전동차 실외 조감도. 출처=현대로템

[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일명 ‘대북주’로 불리는 현대로템은 미 금리인상에 몸살을 앓고 있다. 터키, 브라질 등 주요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현대로템의 수익성도 덩달아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의 경쟁강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신흥국 불확실성도 높아지면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로템은 지난 1999년 정부의 국내 철도산업 경쟁력 제고의 일환으로 현대모비스,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사업 부문이 합병돼 출범한 업체다. 현재 철도차량, K2 전차 등 지상기동무기류 방산산업, 자동차설비 등 플랜트산업이 주요 포트폴리오다. 매출의 절반가량이 철도산업에서 창출된다.

최근 몇 년 간 현대로템의 실적은 좋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영업이익은 66억원에 불과했고, 2015년에는 192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1062억원으로 반등했지만, 다시 2017년에는 454억원에 그쳤다.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67억원이다. 전년 동기대비 무려 75% 이상 감소한 수치다. 3분기로만 한정하면 64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 현대로템 최근 5년간의 영업이익. 출처=DART

업계 내에서는 현대로템의 손실 이유로 신흥국 통화 약세 영향을 꼽는다. 현대로템은 그간 신흥국 철도시장 진출에 집중했다. 국내 철도산업은 연평균 2500억원 규모로 작은 편이다. 그마저도 사실상 포화상태다.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철도산업은 국가 핵심 인프라 산업인 만큼 보수적 성향이 강해 선진국 시장 진출이 힘들다. 대개 자국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입찰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흥국들의 인프라 확장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업체로서는 이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형성된 것이다. 물론 신흥국은 경제력 전반이 좋지 않아 대체로 위험이 크다. 수주금을 받기 위해 보증을 서야하는 일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만큼 발전 가능성도 높다.

현대로템은 지난 2016년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터키, 튀니지 등에서 수주를 성공했다. 2017년에도 이란, 터키,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에 전동차를 수출했다. 올해도 대만, 브라질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등 신흥국 중심의 수주가 이어졌다. 특히 올해는 대만 철도청에서 9098억원 규모의 전동차 사업을, 대만 도원시에서 5425억의 무인경전철 사업을 수주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로 신흥국 통화는 약세를 보였다. 현대로템의 수주 대비 수익성이 크게 저하된 이유다 

현대로템의 최근 주요 거래국인 터키의 리라화는 지난해 말 1리라 당 280원 전후였지만 올해 9월에는 1리라 당 164원으로까지 하락했다. 지난 12월 거래액 1565억원을 현재 환율로 단순 환산하면 대략 374억원 손해를 보는 셈이다.

▲ 최근 1년간의 터키 리라화 환율 변동상황. 1년 내 최저는 8월 30일 1리라당 164.72원이다. 12월 10일 오후 7시 기준 1리라 당 213.64원이다. 출처=네이버금융

다른 신흥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브라질 헤알화의 경우 대통령 선거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 고조와 유가 하락 등에 따라 약세가 이어졌고 말레이시아 링깃화의 경우 지난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간 약세 지속중이다. 게다가, 통화 약세의 경우 통상 해당 국가의 수입 능력이 감소한다는 점에서 현대로템의 수출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올해 이어진 무역전쟁 촉발로 인해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흔들리면서 중국 등 대외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의 타격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는 점도 좋지 않은 소식이다.

정동익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터키 리라화, 브라질 헤알화 등 신흥국 통화의 환율 하락이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 원/리라 환율의 하락으로 인해 매출채권 등 리라화 자산 평가손실 260억원이 발생했다. 원/헤알화 환율 하락도 3분기 영업외수지에 80억원의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라고 분석했다.

내수시장 경쟁력 저하도 수익성 저하의 문제로 지적됐다. 

그동안 현대로템은 사실상 국내 독점적 위치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우진산전, 다원시스 등 중소기업 경쟁업체가 등장하면서 그 지위를 잃었다.

현대로템의 경쟁업체인 다원시스는 지난 2015년 2096억원 규모의 서울지하철 2호선 전동차 200량을 낙찰받았다. 지난 10월에도 서울교통공사 전동차 입찰에서 1549억원에 낙찰했다. 또 다른 경쟁업체인 우진산전은 지난 8월 한국철도공사가 발주한 간선형전기동차(EMU-150)를 2665억원에 낙찰받았다.

이 과정에서 출혈경쟁이 발생해 수익성은 더욱 악화됐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진접선(4호선 당고개~진접 연장구간) 전동차 수주 계약을 낙찰률 63.2%인 439억원에 체결했다. 과거 현대로템의 평균 수주율이 90% 후반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만큼 낮은 수치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철도산업 비중이 국내와 해외가 대략 6:4정도 된다”면서도 “국내 산업은 낙찰률이 낮아 크게 이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손해 규모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보다 이번 3분기 실적하락은 브라질, 터키 등 신흥국의 환율 하락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신흥국 환율 약세 등의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중에 현대로템의 수익성은 안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주잔고가 많으며, 최근 수주 역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5881억원에 불과했던 신규 수주는 급격히 늘었고, 올해 3분기 기준으로 철도사업 수주잔고는 6조5755억원에 이른다.

▲ 현대로템 최근 5년간의 철도사업 수주잔고. 출처=DART

최재헌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외사업 비중에 따른 환율 영향 등으로 중단기적 실적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양호한 수주경쟁력 및 매출규모 확대를 기반으로 점진적인 영업수익성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경제협력에 따른 북한 교통 인프라 개선 추진은 긍정적 요인이다. 내년 예산안에 북한 철도 등 인프라 확장에 사용될 경협기반 기금이 전년 대비 60% 늘어난 4290억(융자 포함)으로 책정됐고, 현재 경의선, 동해선 등의 현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 철도 현대화 비용이 많게는 38조원까지 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중에, 어느 면으로든 현대로템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단기간 내에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기엔 성급하다”면서도 “글로벌 상황개선과 함께 국내에서도 철도를 둘러싼 환경은 명백히 개선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대로템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중국에게 해외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재 중국의 철도사업 경쟁력은 의외로 높지 않다는 평가다. 가격 등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철도 사업 경력이 적어 해외 실적 포트폴리오가 부족하기 때문에 신뢰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015년 정부 주도의 합병으로 철도차량 제조업체 중궈중처(中國中車, CRRC)를 탄생시켰고, 자국 수주를 바탕으로 세계 철도 시장의 30%를 점유할 만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 경우 중국의 해외 실적이 쌓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영업이익이 크게 나지 않아도 해외수주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며 “자국으로부터 확실한 지원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해외실적이 쌓이면서 신뢰도를 확보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업체들의 해외 경쟁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