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이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가격 하락은 물론 전세 대출 규제로 자금이 막히고 부동산 시장이 경색된 탓이다. 특히 서울 상승세를 견인했던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 강동구 등은 서울 전세 하락세를 이끌고 있는 모양새다.

10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초(-0.24%)·강동(-0.24%)·강남(-0.11%)·송파구(-0.11%) 등 강남 4구는 송파 헬리시티 등 대규모 신규단지 전세공급으로 하락세를 지속했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래미안파크팰리스’ 전용면적 84㎡는 이달 초 6억5000만원에 전세거래가 이뤄졌다. 같은 면적대의 같은 아파트가 지난 10월 전세거래된 가격은 7억원으로 두 달 사이 5000만원이 하락한 셈이다. 가락동 우성아파트 역시 이달에 전용면적 58㎡가 3억3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다. 이 아파트 역시 같은 면적 집이 무려 한 달 전에 3억6000만원에 전세거래가 이뤄졌지만 한 달 사이에 3000만원이 떨어졌다.

잠실동의 경우 1만여가구 규모의 헬리오시티 입주를 앞두고 아파트 전세가격 하락세가 이미 예견돼왔다. 결과는 시중의 우려대로 전세가격 급락으로 이어졌다. ‘레이크팰리스’ 전용면적 84㎡는 이달 8억6000만원에 전세가 계약됐다. 같은 면적의 아파트가 지난 10월 9억5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두 달 사이에 1억원 가까이 전세가격이 하락했다. 잠실동에 위치한 리센츠 역시 전용면적 84㎡아파트의 전세거래가격은 8억7000만원으로 지난 9월 9억3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6000만원이 떨어졌다.

강남구에서 오는 11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래미안 루체하임’은 개포지구에서 처음 이주한 재건축 아파트다. 이 단지는 전용면적 71㎡가 입주 초 7억~8억원에 형성됐지만 최근 6억원대로 가격이 낮아졌다. 입주 물량이 몰리면서 전세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명문학군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역시 전세 한파를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수능이 끝난 11월 말부터 2월까지는 학군 이사 성수기로 ‘명문학군’으로 불리는 지역에 아파트 전세 대기 수요가 꾸준히 있어 시세도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돼있다.

그러나 지난 10월 15일부터 전세자금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세금 마련이 쉽지 않아지자 전세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대치동 S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전세시장에서 거래가 하나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서 “전세금 마련이 쉽지 않다보니 상대적으로 집값이 높은 지역으로 들어오는 수요가 줄어들면서 지난해보다도 전세가 거래가 되고 있지 않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은 지난해 10월 184건, 11월 186건, 12월 238건, 올해 1월 264건, 올해 2월 294건이 거래됐다. 반면 올해 11월 대치동 내 전세거래물량은 150건, 12월은 10월 기준 52건이 전부다.

업계에서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하락이 당분간은 이어질 것이란 시각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는 데다 전세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규입주 물량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오는 2020년까지 강남구에 입주하는 아파트는 강남구 ▲삼성동센트럴아이파크(4월 입주 시작, 416가구) ▲래미안루체하임(11월 입주 시작, 850가구) ▲래미안 블레스티지(2019년 2월 입주 시작, 1957가구) ▲디에이치아너힐즈(2019년 8월 입주 시작, 1320가구) ▲래미안강남포레스트(2020년 9월 입주 시작, 2296가구) 등이다. 강동구에서는 내년부터 내후년까지 2년간 1만5149가구가 입주를 시작한다. 세부적으로 ▲래미안명인역솔베뉴(2019년 6월 입주 시작, 1900가구) ▲고덕그라시움(2019년 9월 입주 시작, 4932가구)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2019년 12월 입주 시작, 1859가구) ▲고덕센트럴아이파크(2019년 12월 입주 시작, 1745가구) ▲고덕아르테온(2020년 2월 입주 시작, 4057가구) ▲고덕센트럴푸르지오(2020년 9월 입주 시작, 656가구) 등이다. 양천구는 내년 목동파크자이(356가구)에 이어 2020년 무려 3045가구 규모의 신정뉴타운아이파크위브가 집들이를 시작한다. 특히 ‘고덕 그라시움’은 입주까지 10개월이 남아있지만 벌써부터 전세매물이 시장에 나왔다. 강동구 최대 재건축 단지로 불리는 이 단지는 입주가 몰릴 시점에 전세가격이 하락하거나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이 같이 전세매물이 미리 올라온 것이다. 강동구의 새 아파트 몰림 현상은 2022년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6000여가구 규모로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둔촌주공아파트’가 이달 조합원 분양신청을 변경한 후 2022년 6~7월에 준공 및 입주가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이 단지는 기존 세대수보다 2배가량 많은 1만2032가구의 미니신도시급 아파트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는 헬리오시티보다도 1000가구 이상 많은 규모다.

고덕동에 위치한 W공인중개사 관계자는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의 경우 전용면적 59㎡가 올 10월에만 해도 6억원 미만으로 거래가 됐었지만 현재는 최저 4억5000만원까지 가격이 떨어졌다”면서 “이곳은 학군 등이 나름 좋게 형성돼있어서 수요가 꾸준히 있기는 하지만 내년 2~3월에는 가격이 더 하락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오는 2020년 힐스테이트클래시안(1471가구), 신길센트럴자이(1008가구), 영등포뉴타운꿈에그린(144가구) 등이 입주를 시작한다.

서울의 전세가격 하락세가 짙어지면서 업계 전문가들은 서울 신규아파트뿐 아니라 경기도권 입주 물량이 증가하면서 세입자들이 빠져나간 영향이라는 풀이도 내놓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경기도의 올해 하반기 입주 물량은 8만907가구, 내년 상반기엔 8만1084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 팀장은 “전세가격 하락은 수급의 영향이 가장 크다”라면서 “그동안 경기도권에서 신규아파트 입주 물량이 증가하고 내년에도 상당한 입주 물량이 대기하고 있는 만큼 전세가격 하락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