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90일의 휴전을 맞았지만 여전히 물밑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9일(현지시간) 언론을 통해 “멍완저우 화웨이 CFO 체포는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중국 현지에서는 미국 기업 불매운동이 거세게 벌어지는 등 전장의 전선이 복잡하게 얽히는 분위기다.

미국과 중국의 유리공 던지기 놀이

미국과 중국이 지난 1일 G20 정상회담에서 만나 90일의 휴전을 선언할 당시만 해도, 글로벌 경제를 불확실성에 몰아넣었던 두 슈퍼파워의 격돌은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듯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G20 회의가 열렸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명을 발표해 “미국과 중국은 90일 동안 지식재산권 보호와 비관세장벽, 사이버 침입, 절도 등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 지난 9월 24일부터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고 있던 관세율 10%를 내년 1월 1일 25%로 인상하려던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당시 G20 지도자들은 미국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는 등 각별한 신경을 썼다. 보호무역과 지구 온난화 등 문제를 두고 미국이 민감해하는 이슈는 공동성명에 담지 않는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는 후문이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할 가능성은 여전하기 때문에 이번에 합의된 90일 휴전은 소위 ‘유리공 던지기 놀이’처럼 불안한 것이 사실이지만, 두 나라가 서로를 향한 공격을 한시적으로 멈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시간은 벌었다는 말이 나왔다.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며 일각에서는 퀄컴의 NXP 재인수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ZTE 제재에 나서는 한편 9부능선을 넘었던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까지 막아서자 중국은 퀄컴의 NXP 인수를 차일피일 미루는 전략을 구사했고, 결국 퀄컴은 NXP와 지분을 나누는 선에서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어도 퀄컴이 다시 NXP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러한 가능성이 제기된 것 자체가 미국과 중국의 화해 분위기를 상징한다는 말이 나왔다.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잦아들며 글로벌 경제가 모처럼 기지개를 켰으나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CFO를 체포하며 두 슈퍼파워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돌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 멍 부회장이 지난 1일 캐나다에서 체포됐으며, 멍 부회장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현재 화웨이 장비가 이란에 제공되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중이며, 만약 위반혐의가 확인될 경우 상당한 수준의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기술증시는 화웨이 쇼크로 크게 휘청였다.

멍 부회장은 런청페이 회장의 딸이면서 후계 0순위로 꼽히는 데다 내부에서 재무담당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의 미국행은 화웨이는 물론 중국 정부의 불만을 사고 있다. 당장 중국 정부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6일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은 “캐나다 경찰 당국은 미국 측의 요구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 법을 전혀 위반하지 않는 중국 공민을 체포했다”면서 “심각한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멍 부회장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지만, 중국이 화웨이 최고위 임원을 체포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화웨이 잔혹사

화웨이는 오랫동안 미중 무역전쟁의 파도에서 휘청거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화웨이의 백도어 논란이다. 5G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외연을 넓힌 화웨이가 사실상 중국 정부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이 골자다.

화웨이 잔혹사를 조명하려면 ZTE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ZTE는 지난 2017년 3월 이란과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은 4월 16일 ZTE를 대상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하며 압박했고, 그 여파로 ZTE는 크게 휘청였다. 지난 5월 9일 홍콩증권거래소에 ‘회사의 영업활동이 중단됐다’는 자료를 보낼 정도로 존립을 위협받았다. 중국 상무부가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방식은 자기의 발등을 찍는 행위”라면서 “부디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하는 한편 시진핑 국가 주석은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며 “자유무역을 수호해야 한다”며 호소했으나 미국의 제재는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ZTE 사태는 다행히 해결국면에 접어들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5월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제재 조치가 일부 해제됐기 때문이다. 대신 화웨이가 미국의 사정권에 걸려들었다.

화웨이는 글로벌 통신장비시장의 최강자이자, 단말기까지 제조하는 기업이다. 2020년 5G 상용화 시대를 맞아 중국 ICT 대국굴기의 최전선에 섰다. 그와 비례해 미국의 강력한 견제도 받고 있다. 미국 하원은 2012년 10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들 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한편, 미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화웨이 미국 시장 퇴출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미국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국가 보안에 균열이 간다는 논리다.

미국의 화웨이 견제는 치밀하다. <WSJ>는 지난 11월 23일 미국 정부가 우방국을 대상으로 중국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WSJ>는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동맹국가 관계자들과 통신사 경영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며 “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들에서 통신 개발 지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반박하고 있다. 화웨이는 “현재 전 세계 주요이동통신사, 포춘(Fortune) 500대 기업 및 170여 개 이상 국가의 고객과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화웨이는 철저한 사이버 보안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문제 제기 받은 사안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이버 보안 인프라를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 기지국 장비에 대해 스페인의 인증기관인 ENAC로부터 국제 CC인증을 받아 백도어 없음을 확인했으며 지난 4월 20일 안전규격 공식 인증기관인 ‘티유브이슈드(TUV SUD)’의 검증 요구조건을 모두 통과해 CE-TEC 인증을 받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이 올해 초 펀치를 주고받은 후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지난달 5일,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추가 미중 무역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화웨이는 퀄컴으로부터 5000만개의 반도체를 구입했다”면서 “(미국과 중국은) 적이 아닌, 친구다”고 말했다. 런청페이 회장의 오판이라기보다, 간절한 염원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는 계속됐고, 이러한 전략의 충돌이 엇갈리는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이 찾아왔음에도 멍 화웨이 CFO 체포가 이뤄진 셈이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미중 ‘치고 받는다’

멍 화웨이 CFO 체포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 90일의 휴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관련 후폭풍은 거세지고 있다.

<WSJ>는 7일 미국 연방검찰이 조만간 중국 정부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해커들을 처벌할 가능성을 보도했다. 미국 연방검찰에 따르면 일부 중국 해커들은 미국의 기술서비스 업체에 침투해 핵심 기술력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WSJ>는 “미국 기업은 물론 미국 정부 기관도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불거졌던 중국 스파이칩 의혹과도 연결되고 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는 지난 10월 4일 글로벌 서버용 마더보드 공급처 중 하나인 엘리멘털의 제품에서 소형 마이크로 칩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2015년부터 진행한 칩 감시 활동을 통해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칩은 육안으로 살펴볼 수 없을 정도로 작았으며, 중국 정부가 심어둔 것으로 추정됐다.

논란이 사실이라면 중국의 서플라이 체인 전반에 대한 업계의 의혹도 커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문제가 된 엘리멘털의 칩 부착은 중국에서 이뤄졌다. 생산 하청기지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진 상태에서, ‘언제까지 중국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해당 보도가 지나치게 진실을 ‘부풀렸다’는 비판이 나오며 중국의 스파이 칩 논란도 수습국면에 돌입하고 있으나, 미국이 무역전쟁을 일으키며 지식재산권 보호를 최일선에 내세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심장한 지점이다. 중국의 불법적인 지식재산권 논란은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29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의 해킹 의혹도 정조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중국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면서 “다수의 기밀정보가 중국의 손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대선 당시 ‘개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해 기밀문서를 주고 받았다’는 논란에 휘말린 적 있다. 화충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월 29일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며 “인터넷 안전은 전 세계의 문제”라고 반박했으나, 중국 정부의 해킹 시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주장은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에 사이버 전쟁을 수행할 부대원이 10만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이버 산업 스파이 역할을 수행하는 인민해방군 산하 사이버 부대원의 최고 지휘자는 류샤오베이 소장이며, 부대는 광저우에 있다.

중국도 손 놓고 당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홍콩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9일 중국 선전의 한 기업은 사내 지침을 통해 직원들이 애플 아이폰을 구매할 경우 상여금 삭감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대신 중국 제품을 구매하는 직원들에게는 제품 가격의 15%를 회사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미 CNBC는 “멍 부회장의 체포로 중국 정부가 반발하면 미중 무역협상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으며 일각에서는 중국도 자국에 주재하고 있는 미국 기업인을 체포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7일 시스코가 직원들에게 “중국 여행을 자제하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갈등의 골 깊어질까...기술굴기 견제, 패권주의 견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언론을 통해 화웨이 멍 CFO의 체포를 두고 미중 무역전쟁과 완전히 별도라고 주장했으나, 그가 대중 강경파가 아닌 국제협조파로 분류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악시오스>는 미중 무역전쟁 90일 휴전을 두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 등 국제협조파가 스티브 므느신 미 재무장관으로 대변되는 대중 강경파에 일시적 승기를 잡았다”고 평한 바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발언이 미국의 최근 기조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90일 무역전쟁 휴전 후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좋은 거래를 했다”는 평가를 내렸지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두 지도자가 여러 가지 합의를 했으며 적절한 시기에 상호 방문할 것”이라고 갈음한 대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90일 유예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은, 미중 무역전쟁의 갈등이 여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예고했다는 평가다. 미국도 백악관이 자국의 요구를 담은 협상의제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아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90일 후 휴전이 결렬되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앞둔 시진핑 주석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말도 나온다.

글로벌 경제계도 미중 무역전쟁이 쉽게 끝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중국이 스마트제조 2025를 포기하지 않는 한 두 슈퍼파워의 격돌은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 국무원은 2015년 양회를 통해 스마트 제조 2025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총 3단계로 이어진 중국 제조업 발전 계획이자 국가 혁신 계획이다. 1단계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양적인 제조강국에서 벗어나 질적인 스마트 제조 플랫폼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2단계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글로벌 스마트 제조 시장에서 최소한 중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며 3단계는 2036년부터 2045년까지 글로벌 무대를 석권하는 것이다. 스마트 팩토리부터 반도체까지 다양한 ICT 영역에서 중국의 기술굴기를 현실로 끌어내, 중산층의 부흥인 샤오캉 시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중국이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ICT 패권을 스마트제조 2025로 위협하는 한편,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정치군사적 패권을 노리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미국이 단행한 1차 25% 관세부과 물품 중 무려 818개가 전자와 항공, ICT 기술 전반을 포함된 이유다. 중국은 최근 첫 항공모함을 건조했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해외 군사기지 건설에도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SCMP가 미중 무역전쟁의 근간을 두고 “중국의 패권을 경계하려는 미국의 적극적인 행보”로 해석한 이유다.

미중 무역전쟁이 90일의 휴전을 무색할 정도로 치열하게 계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는 다시 시계제로 상태로 빠지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9일 언론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라는 글로벌 1,2위 국가의 대립으로 경제 심리가 위축될 것”이라면서 “산업에 있는 사람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 7위 수출국이기 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에 더욱 민감하다. 반도체와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핵심 수출 물품이 대부분 미국과 중국과 관련 있기 때문에,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