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이서현 삼성물산 전 사장이 최근 삼성복지재단으로 이동한 후 삼성가(家) 계열분리 시나리오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과 현대, SK와 LG의 미래 경영구도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일 사장단 및 임원인사를 마친 후 금주 중반 조직개편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장단 인사의 키워드는 DS부문장을 맡고있는 김기남 사장을 부회장으로, 노태문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한편 김기남, 고동진, 김현석 대표이사로 이어지는 3부문 체계의 유지다. ‘생각보다는 많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임원 승진은 총 158명으로 지난해 221명보다 적었다.

이번 사장단 및 임원인사는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한 결단이라는 평가지만, 이 부회장의 내년 초 대법원 선고를 의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는 2차 협력사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및 반도체 분쟁 종지부 등 다양한 상생의 방안을 내놓으며 몸을 낮추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의 최근 인사와 행보 등을 종합하면 이 부회장 중심의 체제 강화가 탄력을 받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김기남 부회장 발탁 등 스타 CEO 키우기가 본격화되는 등 조직 장악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추진되기 어려운 전략들이 다수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에 발목을 잡힐 수 있지만, 명확히 설명이 필요한 대목에서는 확실한 메시지를 내놓는 등 냉정한 상황판단을 보여주며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삼성물산 패션 부문에서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이동한 이서현 전 사장의 거취도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이 3세 경영에 돌입하며 이부진 사장이 신라호텔을, 이서현 전 사장이 삼성물산 패션 부문을 가져갈 것이라는 소위 계열분리 시나리오가 부상했지만 현 상황으로는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이서현 전 사장이 조만간 홍라희 전 관장이 맡았던 리움미술관장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서현 전 사장의 거취 변경은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체제가 굳건히 뿌리를 내렸으며, 이 전 사장의 새로운 도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최근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성과가 부진한 상태에서 이 전 사장이 공익재단으로 이동했으나, 삼성에게 공익재단은 기업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매개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지난 2015년 삼성생명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동시에 올랐을 당시,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진정한 삼성의 키맨으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재계에 따르면 이 전 사장은 공익활동에도 관심이 많으며, 이 부회장을 포함한 형제자매들과도 우애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미래 경영 구도를 그리는 것처럼, 현대차와 LG도 정의선 부회장과 구광모 회장을 중심으로 체제 강화에 나서는 분위기다. 다만 구광모 회장의 경우 LG 4.0 시대를 맞이하며 공익재단 이사장을 사상 처음으로 외부인사에게 맡겨 눈길을 끈다.

오너가 일원이 이사장을 맡아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LG복지재단, LG상록재단 등 LG 재단의 이사장에 이문호 전 연암대학교 총장이 선임된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공익재단이 사익편취의 수단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몸 낮추기’라는 말도 나왔지만, 구 회장은 체제 강화에 나서는 한편 공익재단에 최초의 외부인사를 선임해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SK는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달 23일 최태원 회장이 형제 등 친족에게 SK㈜ 지분 329만주(4.68%)를 증여한다고 발표했다.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166만주)를 비롯해 사촌형인 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가족(49만6808주), 사촌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그 가족(83만주) 등 친족들에게 SK㈜ 주식 329만주를 증여하는 것이 골자다.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도 SK㈜ 주식 13만3332주(0.19%)를 친족들에게 증여하는데 동참했다.

소위 가문경영에 나섰다는 평가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한편, 최 회장의 존재감을 지키는 선에서 친족들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일종의 집단경영체제다. 여기에 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려는 행보도 보인다. 일각에서 SK의 최근 변화를 두고 스웨덴 경제의 거목인 발렌베리 가문을 거론하는 이유다.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 투명한 경제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