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인스턴트식품 ‘삼양라면’을 탄생시킨 삼양식품. 삼양식품의 연혁은 국내 라면의 역사와도 같다. 50년이 훌쩍 넘은 삼양식품은 한때 재계순위 20위까지 올랐지만 1989년 우지파동과 외환위기 등으로 오랜 침체기를 보냈다. 그러다 최근 불닭볶음면의 호조로 ‘수출형 기업’으로 제2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 삼양

국내 최초 인스턴트식품 ‘삼양라면’

라면의 역사는 곧 삼양식품의 역사다. 1963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독(GNI)이 100달러를 넘어섰다. 같은 해 故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는 일본 ‘묘조(明星)식품’으로부터 라면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개당 10원짜리 ‘삼양라면’을 국내 최초로 소개했다.

당시 미국의 식량원조로 밀가루가 대거 공급되기 시작했다. 전 회장은 식량 자급화가 되지 않은 실정에서 국민들이 싼 가격에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한 끝에 라면 도입을 해결책이라 판단했다. 전 회장은 잘나가던 제일생명 사장직을 내던지고 라면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라면의 중량은 85g이었지만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삼양식품은 100g으로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꿀꿀이 죽이 5원인 점을 감안해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최대한 가격을 낮춘 10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커피가 35원, 영화 55원, 담배 25원 수준이었다.

어렵게 만들어 냈지만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쌀 중심의 식생활이 하루 아침에 밀가루로 바뀌기 쉽지 않았다. 심지어 라면을 옷감, 실, 플라스티 등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삼양식품 전 직원가 가족들은 직접 극장이나 공원에서 무료 시식 행사를 열어가며 라면 알리기에 힘썼다.

1965년 시작된 정부의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혼분식 장려 정책은 삼양라면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줬다. 낮은 가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삼양라면은 날대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에 이어 라면과자, 컵라면 등 전에 없는 제품을 줄줄이 선보이며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1960년대 라면시장 점유율 90%로 시장을 평정한 삼양식품은 1972년 매출 141억원을 기록하면서 국내 재계 순위 23위를 기록했다.

삼양식품은 베트남 전쟁 시기 파견 군인들을 위해 첫 수출의 닻을 올렸다. 1969년대 라면을 발판으로 일찌감치 베트남 수출(150만달러·약 17억원)에 나선 삼양식품은 1970년대 수출 지역을 넓혀가며 수출액 800만달러(약 90억원)를 달성했다. 1980년에는 미국에 법인을 설립해 해외 전초기지를 마련하며 외화벌이 일등 공신이 됐다.

국내에서도 사업 다각화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1970년대 ‘대관령 우유’ 등 유제품 사업, 1980년대는 라면과자 ‘뽀빠이’와 ‘짱구’등의 우유·아이스크림, 치즈 등 유가공 부문, 간강·된장 등 장류 축산업, 유통업, 농수산물 가공업 등 식품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식품기업으로 발돋움했다.

▲ 국내 최초 인스턴터식품 '삼양라면'. 출처= 삼양식품

삼양식품의 추락...우지파동 · 도덕적 해이

1989년 11월, 심양식품은 시장 개척자로서의 지위가 공업용 기름을 라면에 사용했다는 ‘우지파동’을 계기로 땅에 떨어졌다.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고 1000여명의 임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한때 90%에 이른 시장점유율은 10%대로 주저앉았다.

삼양식품은 7년 9개월 간의 법정 분쟁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양식품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화의절차(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며 내리막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5년 3월 화의에서 벗어난다. 가까스로 경영권은 사수했지만 한번 꺾인 사세를 살려내지는 못했다.

2010년 전중윤 명예회장의 장남인 전인장 회장으로 경영권이 승계된 후에도 삼양식품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신라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등 스테디셀러가 든든하게 매출을 받쳐주는 농심이나 카레, 케첩 등 포트폴리오가 탄탄한 오뚜기와 달리 삼양식품은 간판 삼양라면 외에 뚜렷한 동력을 발굴해내지 못했다. 장류, 과자, 우유 등 나머지 사업부문 매출액은 미미했다. 다각화를 위해 인수한 ‘호면당’과 ‘크라제버거’는 순익을 잠식하는 주요인이 돼버렸다.

삼양식품의 매출은 화의에서 벗어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2000억원대 후반에서 3000억원대 초반을 맴돌았다. 영업이익률은 1998년 이후 최저 수준인 2%에서 5% 사이에 머물렀다.

삼양식품은 도덕적 해이와 구설수도 끊이지 않았다. 2012년 라면값 담합으로 적발됐다. 2014년과 2015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오너 일가 소유 계열사 2곳을 수년간 부당 지원해온 점을 지적받았다. 지난해에는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집중 조명을 받은 데 이어 지주사 신고를 3년간 누락한 것이 밝혀졌다. 올해에도 약 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돼 재판중이다.

잘 만든 ‘불닭볶음면’ 하나...수출형 기업으로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2012년 출시 당시 별 반응도 없던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실적이 고공행진 했다. 2016년과 지난해 각각 연매출 3500억원, 4500억원을 기록하면서 20여년 만에 최고치를 갱신했다. 삼양식품은 내수 매출액이 제자리걸음을 했음에도 2015년 손실을 보이는 영업이익률은 올해 3분기 9.3%까지 뛰었다. 전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5%대를 넘은 것이다.

▲ 삼양식품 매출 및 영업이익.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 같은 호실적의 배경은 해외 매출이다. 삼양식품 해외 매출은 2015년 2052억원, 2016년 950억원, 지난해 2052억원으로 1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었다. 그 중에서도 ‘불닭볶음면’ 시리즈는 전체 수출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다. 2012년 불닭볶음면 출시 첫 해 1억원에 불과한 수출액은 2015년에 100억원을 돌파했고 2016년에는 660억원, 지난해는 1800억원을 달성하며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 불닭볶음면 수출액 추이.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화끈한 한국식 ‘매운맛’으로 승부를 건 불닭볶음면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각각 45%와 4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불닭볶음면은 지난해 삼양식품 전체 매출의 55%를 견인했다. 사드(THAAD · 고고도방어미사일체계)배치와 한한령(限韓令) 등 악재 속에서 일군 성과라 더욱 값지다는 평가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삼양식품은 지난해 두 차례 걸쳐 설비투자에 860억원을 투입했다. 지난해 자기자본의 48%에 해당하는 대규모 금액이다. 삼양식품이 본업에 이렇게 많은 자금을 투자한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나가사끼짬뽕이 반짝 히트를 친 2012년 소규모 자본을 투자한 이후 처음이다. 수출 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삼양식품은 대륙별로 현지화 된 제품을 선보여 불닭볶음면 이외에도 삼양식품 자체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불닭 브랜드 위주의 수출 라인업을 확장하기 위해 ‘삼양’ 브랜드를 앞세워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제품은 총 8가지로 동남아 전용 제품 4종과 미주 전용 제품 4종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미주 지역 중심으로 삼양볼을 선보이면서 앞으로 유럽과 오세아니아로 판매 지역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유정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부터 중국을 비롯한 해외 수출이 늘어나 올해 전망치보다 1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연구원은 “삼양식품의 내년 수출금액은 2496억원으로 2014년 7.1%에 불과한 수출 비중이 내년 49.3%까지 확대될 것”이라면서 “중국 총판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전 총판의 재고 소진 등에 영향을 받아 중국 수출 금액은 전년 대비 37% 줄어든 72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나 판로 확대 시 내년 중국 수출 금액은 전년 대비 50% 오른 1080억원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