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현수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가 설명을 하고 있다. 출처=경희대학교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국내 연구진이 벌침(봉독)이 치매 예방 백신, 항암제 부작용을 억제한다는 효과가 있다는 가능성을 밝혀냈다. 벌침을 직접 맞는 것은 한방에서 대표적인 치료법이지만,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나타나 사망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배현수 경희대 한의과대학, 김연섭 가천대, 김진수 한국원자력의학원 공동연구팀은 6일 벌침 성분으로 ‘알츠하이머성 치매 백신’의 심각한 부작용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최근호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독성이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 속에 쌓이거나 뇌세포 골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질환으로 알려졌다.

독감 백신 개념인 치매 백신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항원인 아밀로이드 베타 펩타이드를 주사해 면역 시스템 작동을 통해 아밀로이드 베타에 대한 항체 생산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치매 백신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 참여자의 6%에서 뇌 속에 염증이 유발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연구 진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구팀은 봉독침 주사 때 면역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PLA2'라는 성분에 주목했다. PLA2는 한때 봉침 부작용의 원인으로 잘못 알려지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다양한 효능을 낸다는 사실이 발견되고 있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질환을 일으킨 실험쥐를 대상으로 아밀로이드 베타 펩타이드 항원과 봉독의 PLA2 성분을 함께 주사하고 모리스 수중미로(Morris water maze) 검사를 통해 인지능력과 기억력을 측정했다. 대조군은 베타 펩타이드 항원만 주사한 쥐들이었다.

실험 결과 PLA2를 병행 주사한 쥐들은 아밀로이드 백신만 주사한 그룹에 비해 인지기능이 정상 쥐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또 백신요법과 PLA2를 함께 활용한 쥐는 뇌 해마 부위의 아밀로이드 플라크 축적이 9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 관계자는 “특히 아밀로이드 백신요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인 뇌 염증이 PLA2 처리 그룹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구 책임자인 배현수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뇌 활동성을 측정하는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ET)에서도 아밀로이드베타 백신과 PLA2를 함께 투여한 그룹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뇌 활동이 증가함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배현수 교수는 또 “아밀로이드 백신만 처리한 쥐는 절반이 죽었지만, 벌독성분을 함께 주사한 쥐는 모두 생존했다”면서 “이번 실험 결과는 현재까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혹은 예방 백신 개발로 이어질 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배현수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와 연구원이 물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경희대학교

배현수 교수는 지난 2015년에는 PLA2 물질이 항암제 부작용인 신장 손상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과 작용 기전을 규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대표적 항암제 ‘시스플라틴’은 항암 효과가 우수하지만, 자체 독성으로 신장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배 교수 연구팀은 면역세포인 T세포를 활용하면 시스플라틴의 부작용인 신장 독성이 감소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후속 연구를 통해 T세포의 활성을 높이는 약물을 추적했다.

배 교수는 “200여 종이 넘는 약물을 연구한 결과, 봉독에서 가장 큰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당시 실험용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시스플라틴을 투여하고, 다른 구릅에는 시스플라틴과 PLA2 성분을 투여했다. 연구 결과, 시스플라틴 단독 투여 그룹은 144시간 이내에 모두 죽었지만, PLA2 성분을 함께 투여한 그룹은 45%가량 살아남았고, 신장 손상도 억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배 교수는 “봉독의 PLA2 성분이 항암제 부작용인 신장 손상을 억제하는 작용 기전을 밝혀 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이는 약물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한의학 이론뿐 아니라 진료 역시 과학적‧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독성이 강하고, 과민 반응을 갑자기 일으킬 수 있는 봉독을 일반인이 직접 시술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제된 봉독을 사용하는 한의원에서 전문적으로 진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