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LG디스플레이가 중국 현지 은행과 200억위안(3조2000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중국 광저우 OLED 생산법인을 중심으로 계약이 진행되며 중국을 기반으로 한 OLED 전략의 글로벌 경영 방침이라는 설명이지만, 일각에서는 LG디스플레이의 어려운 자금 사정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LCD에서 OLED로의 전환을 꾀하는 와중에 설비자금의 부족함을 메우려는 성급함이 LG디스플레이의 불안함이 감지된다는 평가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5일 중국 광저우에서 LG디스플레이 CFO(Chief Financial Officer, 최고재무책임자) 김상돈 부사장을 비롯해 중국건설은행 광저우시 은행장 등 관련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LG디스플레이 중국 광저우 OLED 생산법인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키로 합의했다.

▲ LG디스플레이 CFO 김상돈 부사장이(우측에서 여섯번째) 중국 광저우에서 현지 은행으로부터 광저우 OLED 생산법인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신디케이트론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LGD

광저우 법인 부침사
중국 광저우 법인은 부침이 많았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7월 광저우 OLED 공장 설립을 발표했으나 한국 정부는 기술 유출 등의 이유로 승인을 미룬 바 있다.

LG디스플레이의 OLED 제조 기술은 정부 연구개발(R&D) 비가 투입된 국가 핵심기술이다. 산업부는 사전 검토를 위해 2차례의 디스플레이 전문위원회, 3차례의 관련 소위원회를 열어 디스플레이 시장 전망과 기술보호 방안, 공장 설립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논의한 결과 LG디스플레이가 중국 현지에 합작법인을 세우는 것은 기술유출의 우려가 크다고 봤다. 광저우 법인은 LG디스플레이와 광저우개발구가 각각 70:30의 비율로 투자한 합작사다.

LG디스플레이는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는 없다는 점을 주장했고, 실제로 합작법인이 설립된다고 무조건 기술이 유출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지식재산권 보호가 미흡했다는 점을 강조한 지점이 눈길을 끈다. 중국 정부는 현재 기술굴기를 꾀하며 공격적인 인재와 기술 인프라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광저우 법인을 두고 국내 업계에서는 '혹시'했던 분위기가 읽히기도 했다. 최근 5G 정국에서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의 유착설에 시달리는 한편, LG유플러스가 화웨이와 손을 잡으며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대목도 조심스럽다. 범 LG 계열사들이 중국과의 협력에 나서는 장면을 두고 일각에서 다양한 이유로 우려하는 이유다.

광저우 법인을 두고 논란이 커졌으나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를 전격 승인했다. "시장 확대와 관련 협력업체의 수출과 일자리 증가 등 공장 설립으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 큰 점을 고려해 수출을 승인했다”며 LG디스플레이의 숨통을 트이게 만들었다. 이어 중국 정부가 시간을 또 끌었지만 LG디스플레이는 올해 7월 기어이 승인을 받아냈다. 업계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합작법인을 정부가 반대한 표면적인 이유는 기술 유출 우려였으나, LG디스플레이가 국내 일자리 창출 로드맵과 역행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설"이라면서 "어떻게든 성사가 됐을 딜(거래)"였다고 설명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중국 정부의 승인 결정을 환영하며, 8.5세대 OLED 공장 건설 및 양산 노하우를 총동원해 최대한 일정을 단축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제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OLED로의 사업구조 전환을 가속화 함으로써 LG디스플레이가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을 지속적으로 선도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우여곡절끝에 출범한 광저우 법인은 LG디스플레이의 체질개선에 중요한 키워드다. 현지에서는 대형 TV용 OLED를 주력으로 생산하게 된다. LG디스플레이는 월 6만장(유리원판 투입 기준) 생산을 시작으로, 최대 월 9만장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 파주 E3, E4 공장에서 월 7만장 규모로 생산중인 캐파를 더하면 LG디스플레이는 2019년 하반기 월 13만장이 출하를 기록해 꿈의 수치인 연간 1000만대 제품 출하도 가능하다.

▲ 중국 광저우 법인 조감도가 보인다. 출처=LGD

업황 악화...신디케이트론 우려
LG디스플레이가 광저우 법인 승인을 받는 한편 현지 은행과 신디케이트론을 체결하며 대규모 자금까지 확보하자 업계에서는 "체질 개선이 빨라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전반적인 업황 악화와 LG디스플레이의 답답한 행보 등을 고려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전반적인 업황 악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인 이동훈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장은 지난 10월1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제9회 디스플레이의 날’ 행사 환영사에서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기술확보를 위한 혁신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생태계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됐다. 이 회장은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와 기술 추격이 빨라지고 있다”면서 “대기업 패널 제조는 물론 설비와 제조, 부품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은 현재 디스플레이 업계 사정을 잘 보여준다. 중국 제조사들의 반격과 시장의 불황이 겹치며 업계 전반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도 심각하다. 한상범 부회장은 최근 인사에서 유임됐으나 지난 상반기 영업손실만 3246억원을 기록해 주춤하고 있다.

LCD 시장의 판세변화가 악영향을 미쳤다. 매출의 90%가 LCD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중국 업체들의 박리다매 정책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 현상이 계속되면서 패널 단가가 하락해 시장 전체가 침체기에 빠지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특히 중국의 BOE는 지난해부터 글로벌 LCD 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가 가지고 있는 시장 지배자적 위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한중 하드웨어 연구소의 송민아 연구원은 "중국 BOE가 20%에 가까운 가격 인하를 내세우며 패널 가격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당분간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박리다매와 가격 후려치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4월 생산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한편 회사 기부금 규모도 줄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심지어 LCD에서 OLED로의 전환이라는 숙제까지 받아들었다. 올해 상반기 대형 OLED 판매 실적이 130만대를 돌파했으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20조원의 OLED 시설투자를 단행했다. LCD가 90%, OLED가 10%의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상태에서 OLED로의 전략 변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자금이다. LG디스플레이가 해결책으로 선택한 것은 허리띠 졸라매기와 신디케이트론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9월21일 서울 여의도에서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NH농협은행, 중국공상은행 등 4개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대주단과 8000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현장에는 LG디스플레이 김상돈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을 비롯해 KDB산업은행 성주영 부행장, 한국수출입은행 윤희성 부행장은 물론 NH농협은행 유윤대 부행장, 중국공상은행 이택휘 부대표 등 관련자들이 참석했다.

LG디스플레이 최고재무전문가(CFO) 김상돈 부사장은 "신디케이트론 계약 체결은 우량 은행에서 LG디스플레이의 OLED 투자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OLED 투자 자금을 안정적으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신디케이트론은 다수의 금융 기관이 공통의 조건으로 일정 금액을 융자해 주는 집단 대출로 채무자 입장에서 여러 은행과 차입 조건, 융자 절차, 대출 한도 등에 대해 한꺼번에 협의할 수 있어 효율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신디케이트론 자체에 주목한다면, 역시 '피치못할 선택'이라는 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가 업황 악화, 중국 제조사 반격, OLED로의 체질개선을 위해 신디케이트론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LG디스플레이는 "자본시장이 OLED의 비전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계기로 봐달라"고 말했다.

지난 9월 국내 은행에 이어 6일 또 한번 신디케이트론 계약 체결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의 자금 사정이 심각한 상태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전자 ICT 업계에서 '중국'이라는 키워드는 현지 정부와의 밀착설 등으로 퇴색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대규모 자금을 연이어 급하게 수혈받는것 자체가 '도박'이라는 말도 나온다.

LG디스플레이는 시각의 차이는 있지만, 큰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5일 신디케이트론 계약은 엄밀히 말해 LG디스플레이가 아니라 광저우 법인이 현지 은행들과 체결한 것"이라면서 "9월과 마찬가지로 중국건설은행, 중국교통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은행 등 현지를 대표하는 은행들이 LG디스플레이 광저우 법인이 보여줄 OLED 전략에 확신을 가졌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 CFO 김상돈 부사장은 “이번 계약의 성사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역시 OLED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밝다는 방증”이라며 “LG디스플레이 중국 광저우 OLED 생산법인을 성공적으로 준비해 대형 OLED의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심각한 자본 상태를 의식해 연이어 신디케이트론을 체결한 것을 두고는 "디스플레이 업계의 특성상 대규모 설비자금이 투입된다"면서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못믿을 중국'이라는 키워드를 두고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합작법인을 설립해 글로벌 OLED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당장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큰 그림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