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힘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한 남자가 있다. 세상의 주목을 많이 받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안될 것이라고 포기한 생명도 그가 손대면 살아난다. 그의 모습을 딴 드라마도 방영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꼬맹이도 입에 그의 이름을 달고 다녔다. ‘낭만 닥터 김사부.’ 그의 모습에서는 범인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존경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말 끝마다 현실의 벽에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뉴스에서 인터뷰에서 그리고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가 얘기를 할 때마다 업은 달랐지만 어쩐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스스로가 병원 적자의 주범이라고 했다. 항상 긴급한 상황에 처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1분 1초가 생명처럼 소중하다. 농담이나 하고 있을 새가 없다. 그 1분 1초에 생과 사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가 뱉은 마지막 한 마디가 나의 폐부 깊숙이 파고 들었다. ‘후배가 이 길을 자원하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하는 이 일을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하고 있지만, 내가 아는 그 누군가가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

 

후배가 이 길을 자원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

그가 한 말들이 갈수록 더 와 닿는다. 그는 사람을 살리고, 나는 다른 것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말이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살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재무구조가 이미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기업, 채권단에서 들어와서 좌지우지 하는, 인공호흡기를 덴 기업에서도 위기는 나가서 맞서야 했다.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회사의 건강에도 불구하고 위험 요소는 막고 기회는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도 팩트 그대로가 기사로 나가면, 오히려 내부에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온 몸으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절박하고 절박한데 그 절박함이 어디에도 가 닿지 않아 처참하기만 했다.’ 신문에 글 한 줄만 나와도 벌벌 떨고 분개해 하는 수뇌부들, 밖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눈 빛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이 서슬이 시퍼렇고, 온통 목을 죄어 오는 현실뿐인데, 회사라는 담장 안 깊숙한 곳에 있는 회의실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그렇게 비현실적인 금액들만 나부끼는 회의실 보다는 차라리 적(?)들의 품 안에 있는 시간이 나았다. 오히려 적들이 나에게 더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들은 날아오는 헬리콥터를 마뜩잖아 했다.’ 겉으론 아주 반가운 얼굴로 대하지만 회사로 찾아오는 기자들을 마뜩잖아 하기는 회사원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마치 외계인이라도 본 것인 양 슬슬 피하기 일쑤였고, 커뮤니케이터가 옆에 배석해서 분위기를 띄워주기 전까지는 CEO라 하더라도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안절부절 해댔다.

분명 인터뷰에서는 ‘어’라고 했는데, 기사에서는 ‘아’로 나오기도 하니, 잘 알지 못하는 CEO는 기자들을 앞에 두고 아무렇게나 얘기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기자들의 펜을 무슨 마법의 지팡이처럼 생각했다. 두어 시간 동안 한 얘기라고는 자화자찬 자기 자랑뿐이었는데도, 기사에서는 회사의 성장 스토리와 구비구비 넘어온 곡절들이 매끄럽게 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의석상에서 아무도 선진국형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알려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모든 면은 늘 그러했다.’ 삼성 같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부러워했다. 그런 인력풀을 부러워했고, 그들이 행하는 실적이라든지 잠재력 그런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 모두. 홈페이지도 화려하고 자료도 깔끔하게 잘 나오고 그런 바탕에서는 여론에 반영되는 결과도 좋다.

성과는 삼성처럼 올리라고 목에 힘을 줘가며 얘기하지만, 정작 실행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얘기하면 펄쩍 뛰기부터 했다. 선진적인 시스템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내부 사람들의 능력을 끌어올릴만한 티끌만큼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삼성이라는 곳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투자하는 지, 그리고 대외적인 여론을 이끌어가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얼마나 많은 비용을 쓰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한때 삼성이 해외 출장 6시간 미만의 경우에는 임원들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고 발표를 하자 그때부터 모든 출장비가 삭감되었다. 하지만 얼마 뒤 삼성이 출장을 전과 같이 복귀했을 때도 줄어든 출장비는 회복될 줄을 몰랐다. 그렇게 시스템과 투자 대비 효율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삼성이 줄이면 그걸로 끝이었다. 삼성도 줄였으니 모든 것을 줄여야 했다. 삼성이 다시 늘린 뒤에도 말이다.

 

감히 동병상련을 핑계 삼아 비교해 본다

‘나는 연간 8억원이 넘는 적자의 원흉이 됐다.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불러오는 조직원이었다.’ 어느 기업에서건 일 좀 하는 커뮤니케이터라면 가장 중요한 일이 연말에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슈가 터지고 그때마다 상황 정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협찬이며 후원 같은 물질적인 총질도 필요하다. 하지만 늘 예산 부족에 시달렸다. 어느 회사나 CEO들은 여론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강조는 하지만 실상에 들어가면 말이 달라진다.

회사가 조금 어려워지고 비용을 통제하면 가장 먼저 끊어 버리는 것이 이런 커뮤니케이션 비용이다. 늘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 내는데, 거기에 들어간 쥐꼬리만한 비용을 타박한다.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것이 사람이라지만, 예외를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코스트 센터’라고만 한다. 벌지는 못하면서 쓰기만 하는 팀이라고 수근 댄다. 정작 신문 기사 한 두 줄만 나와도 파르르 떠는 사람들이, 여론을 진화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이가 드문 판이었다. 모든 것이 지겨웠다. 환자 항공 이송이 중단되면 환자들만 죽어나갈 것이다.’ 재무개선을 한다고 하지만 부채비율은 늘어만 갔다. 입사 때 100%를 밑돌던 부채비율이 금융위기를 맞자 대번에 200%가 넘었고, 몇 년째 이어진 재무개선을 진행해 오면서는 1,500%에 육박했다. 회의실에서는 끊임없이 궁리들을 했고, 헐값에라도 자산을 처분해 왔지만, 실상 회사 살림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계열사, 부동산, 채권을 팔아서 부채를 갚았다. 부채가 줄긴 했지만, 자본도 줄어들었다. 가분수가 된 재무상태는 갈수록 대가리 보다 몸체가 더 빨리 쪼그라들며 기형적으로 되어 갔다.

언론을 포함한 주위에서는 모두가 심각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정작 회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숫자에 도취되어 그런 것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 밖에서 던지는 레이저 같은 여론의 화살들을 전선에서 온 몸으로 맞아야 하는 나와 후배들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안에서는 거기에 왕소금을 뿌려댔다.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은 사람이 사실은 아군이 아니라 적이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심각한 횡령과 배임을 저지른 죄인이었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한다.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원을 들여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었다. 그 돈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 비용을 상회하며, 소방항공대 두세 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내부자도 알기 힘든 기밀 사항들이 계속 기사화가 됐다.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내용이 버젓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안을 언론에 노출시키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고 내부에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 알고 보니 회사 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직통으로 정보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수일 전 핏발 선 눈으로 현황 보고를 하던 후배의 신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 교수님, 이제 저희는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외상센터 안에는 환자를 끌고 CT를 찍으러 갈 사람도 부족했다.’ 나도 늘 팀원들이 부족했다. 늘 팀을 신설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사 쪽에서는 팀원 숫자를 늘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일이 힘든 관계로 후배들은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질 만하면 자꾸 팀을 나갔다.

팀원들 숫자가 적어도 할 일은 해내야 하기에, 팀원에게 할당되는 업무량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 부담을 줄여주자니 팀장인 내게 돌아오는 몫이 너무 컸다. 사실은 내 일도 일이지만, 후배들이 한 일도 내가 새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두 장짜리 보도자료 정도는 순식간에 하는 일이었다. 작성보다 층층이 포진해 있는 임원들과 경영진들에게 보고하고 이해시키는 데에 시간이 더 걸렸다. 임원부터 탑까지 7명 이상에게 보여야 했다. 그런 나를 보고 후배들은 기가 질려서 제풀에 꺾어진 적도 많다. ‘도저히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고. 감히 비교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