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가 IOC와 2028년까지 올림픽 후원 연장을 계약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2024년 파리올림픽, 2028년 LA올림픽까지 공식 후원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는 설명이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기업으로 입지를 굳힌 삼성전자의 올림픽 후원을 두고 '통 큰 결단'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내년 초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묘한 행보라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 고동진 삼성전자 IM 부문 대표이사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토마스 바흐(Thomas Bach) IOC 위원장, 다케다 쓰네카즈(Takeda Tsunekazu) IOC 마케팅위원회 위원장(좌로부터 우)이 2028 LA 올림픽까지 후원을 연장하는 조인식 이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어떻게 후원하나
삼성전자는 4일 IOC와 2020년까지였던 올림픽 공식후원 계약기간을 2028년까지 연장했다고 밝혔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 대표이사 사장과 다케다 쓰네카즈(竹田恒和) IOC 마케팅위원회 위원장은 서울 호텔신라에서 2028년 하계올림픽까지 후원기간을 연장하는 계약서에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현장에 참석했다.

삼성전자가 2028년까지 무선 컴퓨팅 분야 공식 후원사로 참가하는 것이 골자다. 삼성전자는 이번 계약을 통해 무선 및 컴퓨터 제품을 비롯해 다양한 기술의 권리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의 올림픽 후원사도 30년을 채우게 됐다. 삼성전자는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을 시작으로 1997년 IOC와 글로벌 후원사인 TOP(The Olympic Partner) 계약을 체결하고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로 활동했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은 "인류의 혁신을 이끌어 온 무선 및 컴퓨팅 분야 제품 기술과 미래를 열어갈 4차 산업 기술을 통해 올림픽 정신을 확산하고 전세계인들의 축제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 20년을 넘어 또 다른 10년을 삼성과 함께 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IOC와 삼성이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훌륭한 파트너십 관계를 맺어왔듯이, 앞으로도 전세계의 올림픽 팬들을 연결하며 올림픽 정신을 확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삼성전자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증강현실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올림픽 정신 함양, 중국 굴기 견제
삼성전자의 결단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도 올림픽 후원 기간을 두고 내부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인 올림픽 마케팅 효과에 물음표가 달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고민은 실체가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3110만명 수준이던 미국 내 프로그램당 시청자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2580만명으로 줄어드는 등, 올림픽 특수는 옛말이 됐다. 심지어 올림픽 기간 대형 TV 판매가 올라간다는 속설도 통하지 않는다. 올림픽 마케팅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상태에서 '후원을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 내부의 문제도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의 영향으로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으나 수퍼 사이클 종료에 대한 우려가 번지는 한편, 갤럭시 스마트폰은 입지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중국에 이어 인도에서도 샤오미에 밀려 고전하는 등 뚜렷한 반전이 보이지 않는다. 내년 폴더블과 5G 스마트폰 출시로 재도약을 꿈꾸고 있으나 당장 4분기 실적을 두고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를 둘러싼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마당에 올림픽 후원 계약을 연장해야 하느냐는 회의적인 반론이 커졌다는 후문이다.

맥노날드 등 전통의 올림픽 후원사들이 몸을 빼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1976년부터 올림픽을 후원했던 맥도날드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41년만에 후원을 끊었다. 글로벌 성장 투자 전략을 재정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올림픽 마케팅 특수가 줄었기 때문에 발을 뺀 것으로 보고 있다. IOC가 TPO 스폰서십을 늘릴 가능성이 높은 것도 후원사 이탈행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삼성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 계약을 연장했다. 올림픽 정신 함양 등 스포츠 분야의 공헌을 통해 삼성전자는 물론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의도에 힘을 실었다는 뜻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상징성을 고려해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중국 굴기에 대한 경계심도 영향을 미쳤다는 말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는 중국 ICT 전자 기업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상대가 화웨이다. 5G 네트워크 장비 정국에서 화웨이는 글로벌 시장 1위를 유지하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동일한 시장에서 시장 장악에 속도를 내며 반격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불거질 당시 화웨이의 입지가 크게 축소됐으나 최근 90일의 휴전기간이 선포된 상태에서, 화웨이는 다시 글로벌 시장 진격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5G 걱정도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아슬아슬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2위 화웨이의 '비상'이 매섭다.  화웨이가 MWC, IFA 등 주요 ICT 박람회에서 대형 부스를 마련해 좌중을 압도하는 장면은 이제 익숙한 지경에 이르렀다. 반도체로 보면 삼성전자는 중국의 직접적인 견제도 받고 있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ICT 전자 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승승장구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오히려 자국 정부로부터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그 파도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처지다.

반도체 시장에서도 중국의 대국굴기는 현재 진행형이며, 현재 치열한 인재쟁탈전까지 벌이는 분위기다. 중국 이커머스의 상징이자 마윈 회장으로 유명한 알리바바그룹도 지난해 1월 TOP 계약을 통해 2028년까지 올림픽을 후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12년간 무려 약 8억달러를 투입한다.

이 대목에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계올림픽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벤트지만 전 세계의 시선이 중국에 집중된 상태에서, 중국 기업은 대규모 마케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가 만약 후원 계약을 하지 않을경우 마케팅 측면에서 상당한 열세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올림픽을 기점으로 전개되는 중국 ICT의 독무대를 좌시할 수 없다는 정서가 강할 수 밖에 없다.

일각의 구설수
삼성전자가 다양한 정책적 포석을 마련하기 위해 올림픽 후원을 연장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시기의 미묘함에 주목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까지 스포츠 후원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정국에서 정유라씨의 승마훈련에 거액을 지원한 혐의로 구속되는 등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포츠 마케팅의 효과는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최근까지 삼성전자가 올림픽 후원에 더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2032년 하계올림픽이다. 아직 개최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공동개최를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재용 부회장의 내년 초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삼성전자가 정권의 코드에 맞춰 올림픽 후원에 나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정국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G20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대해서만 질문을 받고 국내의 경제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아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이는 역으로 현 정부의 최대 역점사업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있으며, 삼성전자가 이에 부응하기 위해 올림픽 후원 연장을 결정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올해 초 삼성이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대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2009년 이건희 회장의 특별사면을 두고 논란이 나온 바 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해명이 나오며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 삼성전자의 올림픽 후원 계약 연장도 일종의 '딜'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북한과 관련된 사업 등에 이바지하고 싶어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반론도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올림픽 후원 계약은 2028년까지다. 만약 2032년 남북한 공동개회가 확정되면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상황에 따라 추가 계약 연장을 할 가능성은 있다. 삼성전자의 결정에 달렸다. 그러나 2032년 남북한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부터 '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일종의 '사안 흐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이번 후원 계약 연장을 두고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내외부의 부담이 있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스포츠 마케팅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에 일조하는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