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해외서 근무하다 눌러앉은 친한 친구가 잠시 들어와

긴 점심을 하며 여러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여기 어머님 걱정도 무거웠고, 하나 밖에 없는 딸 걱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십여년 넘게 해외서 자라 우리 정서를 별로 갖고 있지 않은 자식과

소통의 어려움을 얘기합니다. 한국 사람과 결혼은 진즉 기대 안했기에 유럽 청년과

진지한 교제를 하는 것은 이해하고 있지만, 그 이후가 더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자식은 안 낳고, 입양해서 키우기로 벌써 정했답니다.

둘 다 입양에 꼿혀 그걸 해보자고 한답니다. 지금 더 부딪칠 일이 아니라서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는데, 내가 해줄 말이 별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얘기에 결혼한 지 2년이 되어가는 딸애 말이 생각났습니다.

사위와 유럽으로 휴가를 다녀온 후에 인사차 와서는

중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유럽으로 공부하러 가는 걸 생각해보겠다는 겁니다.

이왕 중국에 갔으니 중국어도 능숙하게 구사하고,

무엇보다 자녀를 가질 것을 기대한 우리는 자못 놀랐지요.

유럽 공부 이후에 그만큼 효용성이 있겠는지 신중할 것을 집중 얘기한 덕인지

지금은 잠잠해졌는데, 계속 잠잠할지는 알 수 없겠지요.

마음이 심란해서 우리 애들 나이의 젊은 친구가 쓴 책을 열어 보았습니다.

신혼 삶을 꾸리면서 일회용품을 가급적 안 쓰고, 동네 시장을 이용하며,

언젠가는 농사를 지어보리라 생각하는 예쁜 젊음들이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직장 생활 6년여 차에 둘 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떠납니다.

긴 여행을 하고나면 무언가 큰 변화가 a찾아올 것이란 기대 하에

그들 표현대로 어이없는 여행을 떠납니다.

나이 들면 결혼하고, 집 장만하고, 아이 갖는 게 정답이냐며 말이지요.

여행가서 공동체 마을에 찾아가 농사도 지어보고, 공원이나 시장등을 다니다 왔습니다.

현지 가서도 지역경제에 도움 되게 프랜차이즈 기업이 운영하는 데는 안가고,

지역민이 운영하는 식당, 숙소, 가게 등을 이용했습니다.

7개월여 여행 갔다 와서는 시골로 거처를 옮겨 살아보고 있습니다.

그사이에 자신들의 장거리 여행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고,

배출한 탄소를 상쇄할 소나무 45그루를 여기 저기 심는 열심을 보입니다.

대견하지요? 그렇지만 가을까지는 열심히 농사일을 했지만,

겨울이 돌아오자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둘 다 직업은 없는 상태인데,

아직 봄은 오지 않았고, 농사가 시작되기 전의 밭은 황량하다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은 충분히 존재할 만한 사람들 아닌가?’ 라며

스스로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짠해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내 친구를 위로하고, 내 난감함을 토로하려 했는데,

이들의 분투를 펼쳐 놓으니, 위로받아야 할 이들이 젊은이들인 것 같습니다.

친구 딸이나 내 딸이나 여기 농군을 꿈꾸는 그들도

부디 굴하지 말고, 지금의 고민이 그들만의 특권이니 분투하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