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부 이촌동은 매매가 10억을 넘는 주택이 부지기수였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서울 시내 부촌으로 불리는 동부이촌동은 주택재건축사업과 리모델링 사업 움직임으로 분주한 분위기였다. 이 지역 대장주로 불리는 ‘한강맨숀’의 건축심의가 지난 11월 29일 통과했다. <이코노믹리뷰>가 이촌동을 찾은 11월 30일, 오랜 기간 지체된 재건축 사업에 파란불이 켜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중개사들 사이에 있는 한편, 워낙 승인 과정이 길어 심드렁한 분위기도 있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시 건축심의위원회는 29일 한강맨숀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의 건축심의안을 조건부 가결했다. W공인중개사는 “조건부로 심의가 통과했는데, 정확한 조건이 무엇인지 조합 측도 모르고 시는 알려주지 않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조합설립 이후 사업 진척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말했다.

▲ 11월 29일 건축심의를 통과한 한강맨숀 전경.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한강맨숀은 지난 1971년 입주한 후 약 48년의 시간이 흘렀다. 통상 재건축 연한이 30년임을 감안하면 18년의 기간이 초과한 셈이다. 이에 따라 한강맨숀 입주자는 2003년 주택재건축사업조합 설립을 추진했다. 현재 한강맨숀은 5층 건물 23동에 660가구가 거주 중이다. 재건축이 계획대로 전개되면 한강변은 15층, 이외 건물은 최대 35층의 높이로 아파트 15개 동이 들어설 전망이다. 임대주택 159가구를 포함한 800여가구가 늘어나면서 총 1451가구로 거듭난다. 현재 단지의 용적률은 101%이지만, 조합의 목표 용적률은 약 259.98%다.

11월 26일 기준으로 한강맨숀의 전용면적 89.82㎡ 매매가는 23억원 선이다. 가장 평형대가 넓은 178.78㎡의 매매가는 34억원에 이른다. J공인중개사는 “입주자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지분 대비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택의 평형대가 거의 1:1로 비슷하다”면서 “재건축 후 받을 수 있는 면적이 다른 아파트보다 넓어 주택 가격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토지지분이 많으면 추후 재건축 사업에 부담해야 할 분담금도 다른 아파트에 비해 줄어들거나, 오히려 분담금이 없을 수도 있다. 또한 거래 가능한 조합원 분의 주택도 적은 것도 호가가 오른 또 하나의 이유다.

▲ 동부 이촌동의 대장주인 한강맨숀 아파트 매매가는 대지지분이 높아 적게는 23억원에서 많게는 34억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출처=한국감정원 부동산 정보 어플리케이션.

D공인중개사는 “2채까지 받을 수 있는 지분이지만 2주택자가 될 경우 대출도 못 받고 한 채는 양도세가 크게 늘어날 텐데 누가 그렇게 받으려 하겠나”라면서 “그뿐만 아니라 2주택 받기를 선택하면 이주비 집단대출에도 차질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동부이촌동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대중에 각인됐다. 한 때 1000명 넘는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일식집, 일본 식재상 등이 생겨났다. 한 중개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인 학교가 마포구 상암동 등지로 이동하면서 함께 거주지를 옮긴 일본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상암동은 거주 전용지역이 아니고, 동부이촌동의 땅값, 주택값이 많이 오르면서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고 중개사는 전했다.

▲ 이촌동 삼익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은 더딘 진척을 보이고 있다.

더딘 진척의 삼익·왕궁 아파트

동부이촌동은 4호선과 경의중앙선 이촌역을 통해 강남·북을 오갈 수 있고,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강을 끼고 있는 입지다. 또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있는 학군 밀집지역이다. 최근 미군 부지의 공원화가 결정되면서 녹지 환경도 한층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적용된 고도제한·개발제한 규제가 일정 부분 완화되면 개발여건이 나아지면서 주거 가치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부이촌동의 주거지는 한강맨숀 등 70년대 지어진 아파트 단지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재건축돼 들어선 한가람아파트 등 약 1만가구 규모로 구성돼 있다. 이촌동을 가로지르는 이촌로를 중심으로 남쪽은 한강맨숀, 삼익아파트 등 오래된 아파트가 자리한 반면, 북쪽은 90년대 재건축한 고층 아파트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40년 이상 오래된 아파트를 중심으로 재건축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고 몇몇 단지를 중심으로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조합 등이 설립됐다. 연한이 되지 않은 아파트들은 통합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 이촌동 삼익아파트의 매매가는 전용면적에 따라 13억5000만원에서 17억7000만원까지 형성돼 있다. 출처=한국감정원 부동산 정보 어플리케이션.

재건축 현실화를 눈앞에 둔 한강맨숀과 달리 삼익아파트는 조용했다. 지난해 12월 정비계획안은 통과되고, 지난 3월 정비계획의 변경과 지형도면 고시가 났지만 건축심의는 무소식이다.

한강맨숀과 맞닿아있지만 시세는 일정 부분 차이가 났다. 삼익아파트의 전용면적 112.43㎡는 11월 26일 기준 13억5000만원 정도다. 그보다 면적이 높은 145.26㎡은 17억7000만원이다.

1979년 준공된 삼익아파트는 12층 2개동에 252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재건축사업이 전개되면 용적률을 높여 최고 30층에 337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또한 맞붙은 한강맨숀 재건축이 계획대로 이행되면 기반시설을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 왕궁아파트의 전용면적 102.48㎡는 16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출처=한국감정원 부동산 정보 어플리케이션.

왕궁아파트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임종빈 왕궁아파트 재건축조합장에 따르면 “2년 전 제출한 정비계획 변경 신청에 관해 지난 7월 도시계획심의위원회로부터 자문을 받고 검토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면서 “반영한 부분을 도시계획위원회에 다시 제출하면 변경 심의를 거쳐 건축심의로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단일면적인 왕궁아파트는 전용면적 102.48㎡의 시세가 11월 26일 기준 16억원 수준이다. 1975년 준공된 아파트로, 5층으로 이뤄진 5개동에 총 250가구가 입주했다. 왕궁아파트는 지난 6월 재건축 시 발생하는 분담금을 줄이기 위해 일반분양 물량을 추가하지 않은 ‘1:1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과거 1:1로 재건축한 바로 옆 단지인 ‘래미안 첼리투스’가 좋은 전례가 됐다. ‘첼리투스’의 전용면적 124.35㎡는 재건축 직후 2016년 2월 12일 25억원에 거래됐지만, 11월 26일 현재 5억원이 오른 30억원에 거래 중이다.

▲ 왕궁아파트는 옆 단지 래미안 첼리투스와 마찬가지로 1대1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반면 주변 공인중개사는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선 삼익과 왕궁 모두 억 단위의 추가 분담금이 예상된다”면서 “한강맨숀과는 사정이 달라 진척이 느려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개사는 또한 “한강맨숀의 재건축이 이뤄지고 삼익, 왕궁 등도 속도를 내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스터플랜’에 맞춰 서빙고아파트까지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모델링 사업, 현대맨숀은 ‘순항’...통합추진위는 ‘글쎄’

반면 1974년과 1975년 입주한 이촌동 동단의 ‘현대맨숀’은 오래된 건물임에도 대규모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안전진단 심의에서 C등급이 나와, 재건축에 필요한 D등급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주택조합의 손몽호 자문위원 사무국장은 “이렇게 규모가 큰 리모델링 사업은 현대아파트가 전국 첫째다”라면서 “단계가 복잡해 속도는 더딘 편이지만, 계획대로 이행되면 2020년 1분기에 착공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맨숀 조합 측은 지난 11월 권리변동 관련 총회를 열고 사업계획 승인을 위한 신청을 준비했다. 이 자리에서 제6안 ‘사업계획 변경안 승인의 건’과 제7안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위한 권리변동 계획수립안 승인의 건’이 각각 75.1%, 74.3%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 현대맨숀의 리모델링이 추진되면 현재 지상 주차장 650대분이 지하화되면서 주차가능 차량수도 약 1100대로 늘어난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현대맨숀의 경우 안전진단등급에 따라 수직 증축은 어려운 까닭에 수평 증축과 별동 증축이 추진된다. 현재의 골조를 그대로 사용하는 리모델링 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현재 8개동 653가구는 계획에 따라 750가구로 97가구분이 늘어난다. 이렇게 생기는 신축 분양 건으로 전체 사업비 3058억원 가운데 1800억원을 충당하고, 나머지 1200억원 정도를 조합원이 부담한다. 면적별로 한 가구당 1억5000만원~2억원 수준이다. 용적률은 230.96%에서 308.64%로 상향조정된다.

용산구청은 리모델링 사업의 행위허가에 더해 신축되는 아파트가 30가구가 넘을 경우 필요한 사업계획 승인을 검토 중이다. 45일간의 처리기간이 지나고 2019년 1~2월 사이에 결론이 나오면, 조합은 내년 4월 권리변동 확정 총회를 열고 9월부터 이주를 개시할 방침이다. 조합 측은 2020년 착공과 동시에 일반분양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지상의 주차장 650대분은 전부 지하화하고 차량대수도 1100대로 늘린다. 거주용 건물 외에 휘트니스센터, 어린이집, 경로당, 독서실 등 커뮤니티센터도 신설한다.

손몽호 사무국장은 “현대맨숀을 효시로 여타 단지들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재건축에 비해 분담금도 적어 경제성도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 지은지 20년 이상된 아파트 빼곡한 동부 이촌동.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그러나 현재 한가람아파트와 강촌아파트 등이 추진 중인 이촌동 통합 리모델링 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현대맨숀 옆 단지인 코오롱 아파트, 우성아파트가 사업에서 이탈했고, 나머지 단지들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당초 5000가구 규모로 출범한 역대 최대의 통합 리모델링 사업은 4000가구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그럼에도 통합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는 남은 단지를 중심으로 사업을 이행한다는 방침이다.

주변 공인중개사들은 현대맨숀을 제외한 여타 단지들의 리모델링 사업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한 공인중개사는 “현실적으로 500가구 이상의 한 단지가 그것도 여럿씩 움직이는 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면서 “재건축 후 지어진 지 20년밖에 안 된 단지들이라 대부분의 설비가 신식이다”라면서 리모델링 사업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의 필요성이 난방 문제와 지하 주차장에 방점이 있음을 감안하면,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지하 주차장도 있고, 개별난방도 가능한데 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역시 “낭비다”라고 단언한 뒤 “적어도 50년은 쓸 수 있는 콘크리트 건물을 20년 만에 갈아엎는 건 사회적으로도 손해”라고 주장했다. 그는 리모델링에 필요한 연한이 15년임을 감안할 때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여길 수는 있지만 리모델링 업체의 수익성도 불분명하고, 시에서도 허가를 내려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개사는 “일종의 집값 띄우기일 뿐이다”라면서 “가뜩이나 가격이 폭등해서 매매와 전세거래가 뜸한데, 거래 잠금 현상을 부채질하는 꼴”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