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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유전체학(genomics)의 혁명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의심해 왔지만 확인할 수 없었던 것, 바로 재력이 유전자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유전체 기반의 새로운 측정법을 사용해, 유전적 자질은 고소득층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거의 똑같이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 가능성은 어떨까.

유전적 재능은 타고 나지 못했지만 고소득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는, 유전적 재능을 타고났지만 저소득층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보다 대학을 졸업할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미 경제조사국(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최근 연구를 인용 보도했다.

먼저, 연구원들은 유전 지수(genetic index)에서 재능이 상위 25%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 성과를 비교했다.

부모가 저소득인 가정의 아이들의 경우, 24%만이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고소득 가정에서 태어난 비슷한 유전적 재능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 64%가 대학을 졸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대로 유전 지수에서 재능이 하위 25%에 해당되는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서는, 부모가 고소득인 경우 27%가 대학을 졸업했다. 이것은 부모가 소득이 낮은 가정에서 태어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24%)보다 대학을 졸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적 결과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여러 제한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연구원들은 우선 백인들만을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게놈 데이터는 유럽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인종간의 유전자 비교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연구만으로도 유전적 결과가 경제에 미치는 진실을 어느 정도는 말할 수 있다고 연구원들은 말한다. 위에 든 수치는, 미국에서 가장 대중화되어 있는 핵심 개념인 실력 주의를 곧바로 겨냥한 경제적 데이터를 가지고 시행한 새로운 게놈 기반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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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의 경제학자이자 이번 전미 경제조사국 연구 보고서의 저자인 케빈 톰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사이에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기존의 가정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졌다.”고 말했다.

다만 "가족의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재능 있는 밝은 성격의 아이들이라 하더라도살면서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의 공동 참여자인 존스 홉킨스 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의 경제학자인 니콜라스 파파조지 교수는 "그들(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재능 있는 아이들)의 잠재력이 낭비되고 있다. 그것은 그들 자신들에게 뿐 아니라 경제 전체에도 좋지 않다."고 말한다.

"높은 유전적 점수를 가지고 (집안이 가난해)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암에 걸리면 암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요?”

톰과 파파조지 교수의 분석은 지금까지 수행된 가장 큰 규모의 제놈 기반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바로 지난 7월, 유전자 분석을 사회 과학에 접목하려는 오랜 노력의 일환으로 12명으로 구성된 학자들이 팀을 이루어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발표한 연구가 그것이다.

이 팀은 유전자와 이수 학력 간의 상관 관계가 있는지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113만 1881개의 개별 게놈을 대상으로 수백만 개의 개별 염기쌍을 스캔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단일 점수로 합성해 유전적 요인에 따른 이수 학력을 예측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톰과 파파조지 교수는 사회 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과 국립고령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의 후원으로 시행한 장기 은퇴 조사를 위해 네이처 제네틱스 팀이 계산한 지수를 연구했다. 1905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약 2만 명의 설문 조사 응답자들이 응답과 함께 자신의 DNA를 제공해 주었고, 그 덕분에 두 교수는 개인의 학력과 경제적 형편(소득 수준)을 유전적 재능 점수와 결부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연구 덕택에 당신도 부자로 태어나는 것이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단순한 발견은, 그런 결과가 무엇 때문에 중요하며,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제약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거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행된 연구들은 그 동안 생물학에나 영향을 미치지 경제학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그러나 이 연구 결과로 경제학자들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유전 데이터가 사람이 성장하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인들의 학력과 부유층 자녀가 유리하다는 것과의 상관 관계에 대한 이전의 연구들은 주로 IQ 데스트 같은 측정 방법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부모의 교육 수준, 직업 및 소득에 의해 결과가 편향되는 성향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런 테스트는 고소득 부모가 아이들을 잘 먹이고, 책을 더 많이 읽어주고, 더 많은 활동에 참여하게 해서 그 아이들이 테스트에 더 유리한 상황이 되기 전인, 태아나 유아기에는 시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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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조지 교수는 "유전적 재능이 비슷한 두 사람이 IQ 테스트에서는 점수가 크게 다를 수 있다. 부자 부모가 자녀에게 더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유전적 잠재력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꽤 비슷하지요. 우리의 분석은 똑똑한 유전자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전자는 신비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과학자들은 유전자 코드의 개별 라인을 특정 특성에 연결하기보다는, 이중 나선(double-helix) 사다리에 있는 1천만 개 이상의 단계에 따라 상관 관계를 찾아냈다. 이것이 대부분의 인간 다양성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 기본 염기쌍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총집합에서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명확한 유전적 연관성이 있는 생물학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유전학자들은, 처음에는 개인의 학력 같은 복합한 원인에 의한 결과를 유전 지수와 관련시키는 것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지만, 외부 테스트 결과, 이 연구로 산정한 점수가 일관되게 대학 졸업률을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케빈 톰 교수는 설명했다.

개인의 유전자 코드 일부는 태아의 뇌 발달과 평생 동안의 신경 전달 물질 분비 등과 같은 특성에 영향을 미치며, 이 특성들이 각각 개인의 성취에 조금씩 영향을 미친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이 특성들이 사람들 사이의 학업 성취도 차이의 11-13%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딸이 당신이 하지 못한 박사 학위를 받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23앤드미(23andMe, 유전자 분석 서비스 기업 ‘23andMe’가 판매하는 어린이용 유전자 검사 키트) 데이터를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차이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많은 인구 데이터와 결합 활용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말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톰 교수는 "이제 우리들은, 처음으로 유전자 표지(genetic marker, 유전자 해석의 지표가 되는 특정 DNA 영역)와 사회과학 연구와의 진정한 연관성을 발견하는 시대로 접어 들기 시작했다.”고 자부했다.

톰 교수는 최근, 유전자 표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흡연의 위험을 생물학적으로 측정하게 해 주는 새로운 연구에 흠뻑 빠져 들었다. 그는 “일단 그 연구 속으로 들어가면 모든 종류의 질문과 답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톰과 파파조지 교수가 사용한 기술은 아직은 널리 적용될 수 없다. 그들이 수행한 은퇴 조사와는 달리, 대부분의 경제 데이터에는 유전적 요소가 없다. 실업률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 같은 중요한 경제 조사에는 아직 유전자 배열(genome sequencing)을 알기 위한 타액 수집 키트가 제공되지 않는다.

또 그들의 연구 작업에는, 현재 백인에만 한정된다는 것 외에도 여러 한계가 있다. 그들이 사용한 유전자 점수는 그들의 환경과 분리하기 어렵다. 그들은 각 개인이 자란 시기와 장소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유전자를 반영한다. 따라서 수십 년 전에 학업적 성공의 원인이 되었던 행동이 교육방법이 진화하면서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톰과 파파조지 교수의 유전 지수가 형제 자매에서 채취한 유전자들 사이에서 시험되었을 때에는, 점수 차이의 4분의 1만이 환경적 요인과 관련된 유전자 코드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의 성공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부모의 양육 행동에 의해 영향 받은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은 학교에서 성공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것은 유전자가 그들의 공부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로부터 유전자와 함께 성공 친화적인 환경을 모두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연구의 주요 성과는 동시에 주요 경고도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유전자는 운명이 아니며, 대부분의 성취는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소득 같은 환경적 요인은 확실히 성공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