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쿠팡이 20억달러를 수혈하면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판 아마존’을 기대하는 반면, 치킨게임이 격화되면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 이커머스 업체 뒤에는 투자부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모펀드들이 포진하고 있다. 기업 간 경쟁뿐만 아니라 사모펀드들의 자존심도 걸려있는 셈이다.

각 업체의 자체 조달력을 감안하면 쿠팡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쩐의 전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자본시장의 냉정한 평가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쿠팡은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로부터 20억달러를 유치했다. 앞서 소프트뱅크그룹은 쿠팡에 10억달러를 투자했지만 지난 2분기 SVF에 지분 전량을 7억달러에 매각했다.

SVF의 최대출자자는 사우디 공공투자펀드로 지분율은 48.3%(2017년 5월 출범기준 450억달러)다. 소프트뱅크는 약 28%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과거 10억달러 투자 이후 ‘추가 투자’는 아니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손 회장이 30% 손실을 본 것은 분명하다”며 “소프트뱅크의 SVF 지분율을 감안한면 SOS를 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 사모펀드의 ‘손절’이 없었다는 점은 기업가치 측면 손 회장의 ‘1라운드 패배’”라고 덧붙였다.

SVF 지분율을 기준으로 하면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재투자한 규모는 7억6000만달러(27억달러x28%)다. SVF가 새로 투자를 한 격이다.

쿠팡이 추가 자본을 확충하지 않으면 사업 지속이 어렵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손정의 회장의 명성에도 금이 간다.

▲ 쿠팡 재무제표 [출처:하나금융투자]

올해 쿠팡의 매출규모는 5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현재 취급하는 상품은 1억2000만종, 이중 400만종이 로켓배송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공급된다. 올해 3분기 기준 로켓배송 누적 배송량은 10억개를 넘겼다.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연구원은 “물류 인프라, 고객수 증가 등을 고려하면 SVF의 이번 결정은 긍정적”이라며 “신세계, SK텔레콤 등이 추진하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며 “쿠팡 경쟁자들이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꺾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쿠팡의 재무구조를 안정화하고 실적 정상화 후 매각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쿠팡의 투자유치가) 이마트몰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마트몰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식품온라인 시장의 절대적 점유율인데 이를 위협할만한 요인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자금수혈을 재무구조 개선과 운영자금 확보로 보는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유통업계가 공산품과 식품으로 나뉘는 특이성이 자리 잡고 있다. 공산품은 완전 경쟁시장이다. 그만큼 수익을 남기기 어렵다. 심지어 아마존과 알리바바도 이 분야에서 돈을 벌지 못한다. 반면 식품 온라인 산업은 진입장벽이 높다. 저장·인프라 등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e-커머스 기업 동향 [출처:KB증권]

최근 마켓컬리 인수설을 두고 ‘신선식품 산업 성장’이라는 불투명한 단어로 표현한다. 실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만큼 점유율이 높은 업체에 유리하며 여타 업체들은 출혈을 감안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쿠팡이 신선식품사업을 영위·확대하고 있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동반된다. 쿠팡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 미래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11번가의 거래대금은 7조3000억원으로 쿠팡의 2배 수준”이라며 “주 수익모델은 오픈마켓은 거래대금이 늘수록 매출이 확대되는 구조로 외형 성장을 놓고 보면 11번가의 성장세가 더 빠르다”고 진단했다.

이커머스 대전, 주판 튕기는 사모펀드

쿠팡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다. ‘적자’와 ‘성장’이라는 극과 극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탓이다. 경쟁사들의 활동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 이커머스 업체의 뒤에는 사모펀드들이 존재한다. 신세계그룹의 쓱닷컴은 어피니티 컨소시엄, 11번가는 H&Q코리아를 지원사격을 받고 있다.

▲ 국내 e-커머스 기업과 사모펀드 투자 [출처: 각 사]

이중 어피니티는 투자업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이다. 홍콩계 사모펀드지만 삼성그룹 출신 박영택 회장이 이끌고 있다는 점은 신세계그룹과의 끈끈한 고리를 배제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LG,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그룹의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면서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어피니티와 H&Q코리아의 과거 성과와 영향력을 아는 사람들은 쿠팡의 투자 유치에 놀라지 않는다”며 “기업밸류 산정부터 매각과정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그대로 실천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쿠팡의 성장에 여타 이커머스 업체들이 고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이는 업계와 투자판을 모르고 ‘쿠팡만’ 보고 얘기하는 편협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어피니티는 이미 OB맥주, 로엔엔터테인먼트, 하이마트, 더페이샵 등을 인수 후 되팔아 최대 수 조원의 수익을 올렸다. 특히 OB맥주 딜(deal)은 업계의 교과서로 꼽힐 정도로 많은 IB들이 참고하는 사례다.

H&Q코리아는 토종 사모펀드로 지난 2005년 ‘H&Q-국민연금 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H&Q PEF I)’로 출발했다. 이 펀드는 총내부수익률(IRR) 30%를 올리고 원금대비 2배가 넘는 수익를 올리고 해산했다. 또 만도를 한라그룹의 품으로 돌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또 어피니티가 매각한 하이마트를 인수해 롯데그룹에 넘겼다.

한편, 쿠팡이 경쟁사들과의 싸움에서 불리한 또 다른 이유는 자금조달 통로다. 신세계와 SK텔레콤 등은 국내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조달력을 과시하고 있다. 부채와 자본 등 자금유치가 비교적 자유롭다는 뜻이다. 쓱닷컴과 11번가 성장의 든든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자금조달 경로 측면에서 쿠팡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라며 “SVF가 향후 더 많은 투자계획을 갖고 있는지, 여타 조달경로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쿠팡에 대한 ‘자본시장’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