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안경을 쓰고 무대를 보면 증강현실 렌즈 하단에 자막(closed caption)이 나타난다.  출처= 런던 국립극장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니키 이모가 런던의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우리는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다.

그렇다. 니키 이모는 귀가 어둡기 때문이다. 비록 극장 의자 컵 홀더에 노인용 보조 확성기나 자막 스크린 같은 청각 도움 장치들이 많이 있지만, 그녀는 그것들이 그리 신통치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 로얄 국립극장(Royal National Theatre)에서 새로운 ‘스마트 캡션 안경’을 써 보고는 니키 이모를 모시고 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 극장은 11월 내내 뮤지컬 하데스타운(Hadestown)과 워 호스(War Horse)를 공연하는데 모든 공연에서 ‘스마트 캡션 안경’이라는 새로운 기술 파일럿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있으며, 2019년에도 모든 공연에서 이 안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엡손(Epson)이 로얄 국립극장과 협력해 제작한 이 헤드셋은 일반 독서용 안경보다는 무겁지만,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같이 부피가 큰 가상현실 헤드셋보다는 훨씬 가볍다. 이 안경의 렌즈는 일반적인 안경처럼 보이지만, 머리 양 쪽 안경 다리에 커다란 회색 케이스가 달려 있다. 이 안경을 쓰고 무대를 보면 증강현실 렌즈 하단에 자막(closed caption)이 나타난다.

안경에는 작은 키패드가 달려 있어, 사용자는 자막의 색, 크기, 위치를 원하는 대로 지정할 수 있다. 자막의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 엡슨이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특별히 개발한 기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전경에 나타나는 자막과 렌즈 너머로 보이는 무대 공연이 가장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보이는 최적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개봉 첫 작품의 대본이 언어 인식 소프트웨어에 입력되고, 이 언어 인식 소프트웨어가 공연의 진행 속도에 따라 자막을 띄운다. 이 과정이 음향, 비디오, 조명에 대한 수화(手話) 신호와 함께 정교하게 처리되는 것이다.

국립극장의 기술 감독인 조나단 서포크는 "만일 배우가 (첫 개봉 공연 때와는 달리) 몇 줄을 건너뛰면 약 2초 정도 후에 시스템이 반응해 제 위치를 찾아 다시 자막을 표출한다.”고 말한다.

서포크 기술감독에 따르면, 일부 난청자들은 이 안경을 쓰고 자막만 읽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입술까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  

이 안경은 공연을 보는 모든 관객들이, 극장의 모든 공연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 기술은 별도의 대형 화면에 자막을 띄우는 기존의 공개 캡션(open caption) 방식을 개선한 것이다.

▲ 관객들이 스마트 캡션 안경을 직접 테스트해 보고 있다.   출처= 런던 국립극장

서포크 감독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극장에 오고 싶어하는 청각장애인 관객들에게 이 기술의 반응은 대단히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특권적 위치에 있는 국립극장 같은 기관들이 이런 종류의 시도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난청자들을 위한 공연을 하는 극장인 ‘디플란트 씨어터’(Deaflant Theatre)라고 단체에서 일하는 리차드 프랑스는, 그 동안 여러 다른 기술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스마트 캡션 안경이야말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 제품(game-changer)이라고 말한다.

"그 동안 자막을 사용하는 극장에 많이 가봤지만, 스마트 캡션 안경을 쓰고 보니, 무대 위의 배우들의 움직임을 거의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고, 공연을 더 실감나고 훨씬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은 미국에서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만 사용되며 호평을 받았지만, 이번에 런던 로얄 국립극장의 도전은 라이브 공연에 이 안경을 시도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는 단체들도 크게 환영했다. 그들은 그 동안 (정도의 차이를 불문하고) 모든 청각장애인에게 효과가 있는 단일 기기나 시스템은 없었다며, 모든 국립극장 공연에서 이러한 기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실제 그 기술 자체만큼이나 획기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영국 농아자 언어협회 회장(National Cued Speech Association)을 역임한 사리나 로페는 이 기술이 청각 장애인들에게 라이브 공연을 보다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확실한 단계라고 확신한다.

“이 새로운 기술은 청각 장애인이나 난청자들이 라이브 공연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완벽하게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얼마나 발전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청각 장애인과 난청자들의 삶의 질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다음 번에 니키 이모가 런던에 오시면 우리는 함께 쇼를 보러 갈 수 있을 것이다.